오르골당 - 르타오본점 & 영화 <윤희에게>
영화 <러브레터>, 그리고 <윤희에게>
홋카이도의 도시 오타루는 '러브레터'를 보냈던 곳으로 잘 알려져있다. 이 영화를 통해 오타루를 추억하고, 오타루를 통해 이 영화를 추억한다. 다만, 오타루에서 온 또 하나의 편지가 있어 추억할 것이 늘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영화 <윤희에게>는 오타루에 살고 있는 '쥰', 그리고 한국에 남겨진 '윤희'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눈이 몰아치는 오타루의 장면들로 수놓아져 있음은 물론이다. 뽀득-뽀득 눈을 밟아 오타루에 방문하는 모습을 보니 지난 오타루에서의 여정이 생각나버렸다. 이제는 꽃도 지고, 연두색과 초록색이 번갈아 거리를 물들일 무렵, 다시금 겨울을 기억해달라는 편지같달까. 또다시 오타루에 가게 된다면, 이제는 이 영화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설원에서 소리쳤던 '오겡끼데스까'의 여운만큼 나지막하게 덧붙이는 윤희의 편지 속 추신,
'나도 가끔 네 꿈을 꿔'
눈을 꼭 감고 흘러가는 엔딩크레딧에서 오타루의 풍경을 생각한다.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30분쯤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운치 있는 운하를 산책하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항구도시이다. 물류 중심지로 기능한 적이 있기 때문에 운하 주변에는 붉은색의 창고 건물들이 눈에 띈다. 눈 쌓인 블럭형 건물들을 가스등이 밝혀주며 분위기는 한층 낭만적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의 나에겐 뽀얗게 덮힌 눈송이는 허락되지 않았다. 대신 파아란 하늘이 맞아주어서 다행이야.
운하를 구석구석 걷다보니 파랗게 뚫린 하늘에서 봄바람이 불 것만 같지만, 한기는 여전한지라 따뜻한 휴식처가 곧 필요해졌다. 오타루의 따뜻한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를 가질겸, 초입에 이미 눈에 담아두었던 따스한 오르골당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오르골당에서 빙글뱅글 돌아가는 딩동댕동 영롱한 소리들이 모여서, 목재 건축 공간을 한층 따뜻한 무드로 만들어주었다. 신나게 오르골을 돌려보고, 앙증맞은 것을 신중하게 고르다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시간이 오후로 가까워질수록 약간 들어차있던 구름도 걷히고, 완전히 눈시린 하늘빛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온도감은 조금씩 올라갔다. 나 혼자 르타오(Le Tao) 본점에서 테이블에 자리를 풀고 밀도 높은 쫀득한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찰나였지만 허투루 보지않았던 것이 르타오의 한 줄 태그 'Nostalgic Modern' 이다. 오래된 낙농 명가 원료와 모던한 껍데기(?)의 조화를 의도한 것일까. 단숨에 와닿지는 않아 연거푸 입에 굴려 소리내보고, 노트에 적기도 하면서 소소한 시간을 보낸다. 맛있는 모닝 코히 플레이트에 워밍업을 잘 마친 오전이다. 이런 모습이라면 봄의 오타루든 겨울의 오타루든 언제나 행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