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우라 카레 사무라이
찬 공기를 머금은 5월의 삿포로에 도착했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역에 도착하자마자 TV타워와 (구)도청, 오도리공원을 퀵하게 '미리보기' 한다. 깨끗하게 올려진 건축물과 녹지 공원, 규격을 맞춘 길들이 도시의 호감을 쭉 끌어올렸다. 하늘이 빛을 거두고, 주황색 가로등이 조금 더 존재감을 나타낼 무렵, 다소 좁은 골목길을 부지런히 비집으며 오늘의 첫 행선지로 향한다.
삿포로 최초의 한 그릇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밥상을 꼽자면 단연 수프카레(スープカレー)다. 일본에서 가장 양질의 식재료를 얻을 수 있는 북해도, 그래서 남달리 까다롭게 탄생했다는 삿포로의 수프카레 식당이 부지런한 발걸음의 종착지가 된다.
우리가 흔히 카레의 질감으로 떠올리는 인도 전통 스타일의 걸쭉한 카레와는 달리 수프카레는 묽고 깔끔한 국물의 형태이다. 1970년대부터 삿포로의 한 킷사텐에서 시작된 수프 카레는 풍부한 북해도의 먹거리들을 조합해서 풍성한 한 탕(?)이 된다. 양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와 같은 육즙의 맛으로 즐길 수도 있고, 새우와 가리비 조개 등 해산물을 베이스로 해서 즐길 수도 있다.
평소 자타가 공인하는 사라다(サラダ, salad) 덕후는 이 극진히 돌보아진 수프에 야채를 듬뿍 담궈낸다는 어떤 식당으로 향한다. 은근한 한기에 살짝 놀란 여행자의 속을 데워주길 기대해.
이 곳의 카레는 고기와 해산물을 우린 수프에 "하루 필수 채소 20종"을 듬뿍 담아 선보인다. 편의점에서 종종 손이 가다가 말곤 하는 "하루 야채"보다 훨씬 더 건강할 것 같은 신뢰감과 설렘이 넘실거린다.
약 10여가지가 되는 카레 종류가 있었지만, 20종의 필수 채소가 메인이 된 기본 메뉴를 선정한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랄까. 건강한 맛과 삿포로의 이국적 조리법, 그 이상의 의미를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자는 20여분의 대기시간 뒤에 대단한 충격에 빠진다.
카레에 얹혀진 건강 채소임에도 질서정연한 플레이팅과 그 색채가 대단히 조화롭고 '예쁘다'는 인상이 든다. 현실 육성으로 '와-아'를 내지르며 연거푸 먹기 아까운 표정으로 숟가락을 쥐고 재료를 톡톡 건드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밥상 앞에서 이미 '시장'이라는 반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금세 한 입을 맛본다.
숱한 '비주얼 사기'를 경험해왔던 지난 날을 부정당한다.
결론적으로, 보기 좋은 것이 먹기도 좋았더라.
온갖 재료들의 향연에, 오히려 볼 때보다 씹어 넘길 때 더 다양한 개성이 느껴진다. 이 풍부한 식감 탓에 먹는 시간도 느긋해지고 포만감도 오래간다. 이 카레를 앞에 둔 이들은 모두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천천히,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게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혼자서, 또는 사랑하는 이와 건강한 밥상을 찾아 온 사람들 모두 느긋하고 당당하게 각자의 저녁을 즐기는 시간.
거나하게 한 끼를 마치고 스스로의 팔짱을 끼운다. 아무래도 과식했다. 그리고 할 수 밖에 없었던 삿포로 궁극의 카레. 서늘한 느낌을 간직한 삿포로의 공기 속에서 그 역할을 더욱 톡톡히 해준 따뜻한 수프 한 그릇. 삿포로의 첫 맛은 이런 맛이구나. 이 온기로, 이 행복감으로 여정을 열었던 것은 나의 삿포로 여행이 무사히 순항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지 않았다. 담뿍 미소를 머금고 조금은 어색한 어투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한 저녁이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수프카레, 너 내 소울푸드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