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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Dec 28. 2019

삿포로, 징기스칸이 무엇이길래

스스키노 <시로쿠마>




심야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


아직 날씨가 채 풀리지 않은 5월의 삿포로. 유난스럽게 겹겹이 입은 옷은 저녁이 되어서야 제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삿포로 최대 번화가인 스스키노 구역의 교차로에서 니카상이 반갑게 여행자를 맞이한다. 오사카의 글리코상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으나, 표출하는 이미지는 뭔가 더 신비롭다. 


주머니에 손을 푹 꽂아넣고, 스산한 공기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메뉴, 다름 아닌 징기스칸이다. 이름마저 낯선 이것은 삿포로에서 꼭 먹어보아야 하는 메뉴로 꼽힌다. 정확히는 홋카이도(북해도) 지역의 향토요리로서, 양고기 요리를 일컫는다. 이 메뉴만을 위한 전용 불판에 양고기와 채소를 함께 구워서 먹는 요리이다. 한 잔 기울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애 메뉴라는 이 것. 약간 식어버린 기운을 돋워주길 기대한다. 


스스키노 거리의 야경은 니카상이 책임진다.



보통의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는 유명 요리점은 와글와글한 그 분위기가 내키지 않아서 한동안 니카상의 주위를 꽤 뱅글뱅글 돌았다. 구석에 틀어박혀서 조용히 고기를 굽고 싶달까. 그래서 '시로쿠마(백곰, 북극곰)'로 향한다. 가고시마의 유명 빙수 가게인 무쟈키의 '시로쿠마 빙수'를 떠올리게 하는 상큼한 네이밍. 이 미스매칭한 느낌에 왠지 모를 기대감도 더해진다. 방향이 정해진 이상, 걸음을 재촉한다.



밖에서 살펴보면 조용하기 그지없으나 솔솔 배어나오는 굽는 냄새
백곰, 북극곰 이라는 뜻의 시로쿠마. 취급 메뉴와의 미스매칭한 느낌이 재밌다.




구우며, 이야기하며, 취하며


일본 시리즈 < 심야식당>의 한 장면처럼, 드르륵- 문을 열고 목례한다. 금방이라도 '마스타(시리즈 속 주인이자 주방장을 부르는 호칭)'을 찾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자욱하게 피어오른 양고기 구운 연기 속에서 나의 자리가 아슬하게 마련되어 있고 빠르게 착석한다. 


삼삼오오 모여도 10명이 채 되지 않은 인원만을 허용하는 지라, 원했던 분위기를 겟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 밤이기도 해서 이렇게 소수만 누리는 이런 바이브,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럽다. 


협소한 공간임에도 극진히 꾸며둔 티가 난다. 믿음직한 모습.
야채를 간단히 올리고, 최고급 양고기를 올릴 준비를 한다.



이자카야 메뉴판을 보아도 알겠지만, 일본의 요리주점에서 대부분의 메뉴는 상당히 만족도 높은 맛을 자랑한다. 그 쟁쟁한 고기 요리 중 양고기가 '징기스칸'으로 탄생하게 된 것은, 양털 공급을 위해 기른 양들이 많아서 양모 외에 양들을 처리할 방식을 궁리한 결과라고 전해진다. 


빠르게 비계로 기름칠하고, 야채를 미리 올린뒤 직원이 직접 구워주는 양고기를 뇸뇸. 하이볼과 맥주를 골고루 주문하고, 약간은 과식하는 듯한 느낌으로 한 모금, 한 잔을 클리어한다. 알음알음 들려오는 일행들의 대화, 거나한 분위기 속에서 따뜻하게 속을 채웠다. 자글자글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기름과 묘한 향이 어우러진 이 양고기 요리, 징기스칸으로 삿포로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내 인생. 성공적이다.



얇은 양고기는 두꺼운 철판에서 쉽게 익혀진다. 많이 먹을 위험이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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