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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Sep 26. 2018

후쿠오카, 커피 마실 시간이다.

NO Coffee - 마누커피 - 우에시마커피 - 코히비미



"틈만 나면" 일본의 도시를 비집는다. 지난한 일상에 짜릿한 균열을 주는 전환의 느낌과, 동경 어린 취향에 사로잡힐 수 있는 마법같은 시간들, 그게 손에 잡히는 매력이 있어서 그렇다. 올 봄의 도시는 후쿠오카였다.

이 봄의 도시에서 커피를 마신 시간들을 하나로 꿰어본다.



벚꽃 바람이 골목마다 나부끼던 3월의 후쿠오카 야쿠인


도시 여행에서 빼놓지 않는 장르는 "카페잉(Cafe+ing)".

일본도 커피 본고장 이탈리아나 유명 원두의 산지인 콜롬비아 만큼 커피강자라는 사실. 작은 골목 어귀에서 들러보고 싶은 커피집이 두어개쯤은 발굴된다.

(개인적으로 카페보다 커피집이라는 명칭을 즐겨 사용한다. 더 아날로그틱해서 입에 붙그등)


게다가, 봄바람을 쐬려 뚜렷한 목적지 없이 대로변과 골목을 걷다보면, 쉴 공간을 찾기 일쑤이다. 어설프게 편의점이나 벤치에 자리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작은 커피집에도 귀여운 구석하나 있기 마련인지라 부랴부랴 리스트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걸음마다 커피집 체크인을 서슴지 않았다.


후쿠오카에서는 굵직하게 4개 정도의 커피집을 방문했다. 천편일률적인 메트로폴리스 서울(!!)과 달리 개성이 강하고 무엇보다 커피맛도 다양한지라 음미잼(?)이 상당했다.



첫번째. NO Coffee



야쿠인역 주변 골목길에는 조그맣지만 강력한 가게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중 당연히 쉽게 눈이 가고, 들어가게 되는 곳도 커피집이리라. 다른 커피들과 같은 종족이기를 거부하는, 본격 "커피이기를 거부"하는 No Coffee는, 브랜드 아래 다양한 굿즈들을 갖춰놓고, 커피와 관련한 식음료 매거진부터, 라이프스타일, 패션류의 읽을거리들을 비치해두었다. 마감처리 없이 칠만 막 끝낸 느낌의 인테리어도 꽤 하이캐주얼하여 개인적으로 예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보고 뒤로 보아도 예쁜 대표 메뉴 "말차 라떼(Matcha Latte with Espresso)"




두번째. 마누커피



후쿠오카의 주요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점. 그치만 재미있는 곳이었다. 사쿠라(벚꽃) 드립 등의 시즈널 아이템을 커피의 요소에 빠르게 도입해서 메뉴를 구성했다. 과감한 벽의 색감과 벚꽃 장식으로 발랄한 느낌을 뿜어냈고, 실제로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연령대도 10~20대로 다소 어린편. 나의 취향을 완벽하게 잡아낸 배색+두꺼운 머그컵은 당장 몇 개 쟁이고 싶을 정도였다.



세번째. 우에시마커피


손님의 대부분이 흑당커피(Brown Sugar Milk Coffee)가 담긴 구리잔을 앞에 두고 대화에 열중한다.


이미 꽤 유명한 우에시마의 흑당 커피. 후쿠오카 여행의 거점이 되는 하카타역과 텐진역 주변에 지점을 가지고 있어서, 늦은 저녁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흑당으로 맛을 낸 극강의 달달함과 구리잔의 차가운 질감을 결합한 곳.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다방커피의 맛을 간직하고 있지만, 브라운슈가의 달달함은 끝맛이 깔끔하다. 달콤한 음료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차가운 물 한잔을 끼우는 편이 좋았다.



네번째. 코히비미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조심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순간들


오호리 공원을 나서서 골목을 걸어나가면 조용히 존재하는 곳. 경건하게도 여기엔 존재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 1977년에 커피점을 시작한 남편과 사별하고 아내가 그 뒤를 이어가는 집이다. 융드립 커피와 비미풍 아인슈페너가 유명한 메뉴이다. 조용해보이지만, 이미 유명세를 탄 지라 평소에는 웨이팅이 필요할 정도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는 조용해서 주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주인: "여기가 여행의 오늘 일정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나요?"

나: "처음이에요. 커피가 맛있어요!" (쓸데없이 깨발랄..)

주인: (한국어로) "감사합미다"


내 여행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여주시니 일정 처음부터 아련 무드가 살아나, 길고 긴 여행메모를 이곳에서 적어내려갔다는 후문이 있다. 수기로 영수증을 적고, 손수건과 물컵을 직접 가져다 주시니 내 표정도 끝없이 그윽해졌다.






커피점 입구에서는 항상 감탄과 기대가 응축된 설렘을 가지게 된다.



감각이 넘쳐 흐르고, 유쾌하고, 달콤하며, 추억을 간직하는 커피점들을 구경하고 맛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시간들이다. 누군가 나에게 "정말 징하게 다닌다"는 이야기를 농담반 진담반으로 건낼 때가 있는데, 이런 순간들을 어떻게 잃겠어. 이 도시에서만 가능한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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