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긴 한숨. 애써 담담한 목소리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일모레 문 닫는다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인생이다. '아빠살이' 기획에 담아내야 할 이야기다. 설득했다. 당신의 이야기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다른 아빠들의 삶에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퇴사 후 창업에 도전한 마흔둘 주황 씨가 한 평 남짓한 소호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팔이 벽에 닿을 만큼 좁지만 그의 꿈은 드넓다. ⓒ철쭉이 아빠
◇ 아빠의 머스트 해브 버킷리스트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시작하는 게 직장 생활이라지만, 그 차표가 어느새 사표가 되어 심장을 찌른다. 그러나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긴 쉽지 않다. 그것도 40대 아빠라면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이날 만난 주황 씨는 달랐다. 그는 가족의 응원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야생으로 뛰어들어 QR코드 컨시어지 서비스 업체 인터스테이를 창업했다.
그의 나이 마흔둘. 인생의 하프타임에서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사업이 여행, 숙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타격이 컸다.
"요즘엔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코로나 확진자 수를 확인합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살피던 그가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니 참... 답이 없네요." 기운 없는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오전에 기본적인 업무를 마치고 나면 저희 서비스를 이용할만한 호텔을 추려서 전화로 영업을 합니다. 거의 종일 하죠. 그런데 대부분 시스템은 좋은데 지금 너무 힘들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요. 심지어 어떤 곳은 내일 폐업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에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이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예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미래를 철저하고 세밀하게 계획하는 플랜맨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외국계 회사를 여럿 거치면서 사업에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쌓았다. 목적 없이 직장을 유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난사람이다.
"회사 생활을 15년 정도 했어요. 그 시간 동안 4~5군데를 전략적으로 이직했습니다. 내가 배운 것들을 융합해서 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창업은 40대에 해야 할 저의 머스트 해브 버킷리스트였거든요."
그에게 코로나는 예기치 못한 변수였다. ⓒ철쭉이 아빠
◇ 아빠가 놀아주지 못하는 이유
'갈아 넣었다'는 표현이 있다. ABC주스 이야기가 아니다.(그건 몸에 좋기라도 하지) 항상 5시 반에 일어나 도둑처럼 출근했다. 밤 11시가 넘어야 집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무려 15년 동안 똑같은 패턴으로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이 자는 모습만 볼 수밖에 없었다. 주말만이라도 나름 아이에게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속 깊은 대화가 어려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딸아이가 자기 틱톡 영상에 '하트'를 남겨달라고 톡을 보내요. 볼 때마다 '즉각'적으로 눌러줘요. 빠른 응답도 아이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딸아이는 그냥 '하트'만 누르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표현을 해주고 공감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았어요. 전 그런 부분에서 아이와 깊은 대화를 못 나누는 점이 가장 아쉽죠. 평소에 많이 놀아줬어야 했는데 평일엔 그럴 수 없었어요. 가끔 아이가 놀아주지 않는 이유를 물을 때마다 ‘아빠는 바쁘니까’, ‘아빠는 주말밖에 못 놀아줘’, ‘아빠가 좀 더 노력해볼게’라고 말했어요. 대신 주말에 최선을 다하면 아이가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것이죠. 저 자신에게 아빠로서 점수를 매긴다면 50점인 것 같네요. 하하."
그는 자식에게 사랑을 마구 표현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철없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을 다니면서 그런 아빠가 되기는 어려웠다.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다.
◇ "어이구, 당신! 갑상선암에 걸리셨네요"
치열했던 직장 생활은 건강도 앗아갔다. 동기들보다 어린 나이 탓에 뒤처지지 않으려 더욱 열심히 일했다. 스트레스에 코피를 쏟기도 하고 누적된 과로에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 그는 회사의 부품처럼 혹사됐다. 그래도 버텼다. 이 모든 과정이 창업의 밑천이라 믿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취미생활도 포기했다. 미안했지만 가족들에게도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꿈을 위해 에너지의 8할을 회사일에 쏟았다. 열정은 커졌지만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
“결국 30대 초반에 번아웃이 왔어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났어요. 어느 날 몸이 좀 이상하고 피곤해서 검사를 했는데 갑상선암이라데요. 1.5센티 암 덩어리가 2개 있었어요. 보통은 수술을 안 하기도 하는데 저는 종양의 크기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할 수밖에 없었죠. 퇴원할 때 의사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어찌 그렇게 되나요? 회사에서 '어이구, 당신! 갑상선암에 걸리셨네요' 하고 배려해 주지 않잖아요. 그래도 그 수술 이후로 일을 단순화한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하며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냥 가정이 있는 남자의 현실인 것 같아요.”
회사는 그에게 암을 주었지만, 그는 ‘회사의 부품’이란 표현을 싫어했다.
“너무 슬프잖아요. 회사의 일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수술 후 평생 챙겨먹어야 한다는 약. ⓒ철쭉이 아빠
◇ 잉어밥 그리고 가족
책상 하나와 컴퓨터 두 대가 전부인데 금붕어 밥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아 이거요? 점심 먹고 산책을 하는데 산책길에 잉어가 있는 연못이 있더라고요. 들고 가서 매일 밥 주고 있어요.”
길냥이들 밥 주는 사람들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잉어 아빠는 처음이다. 40대 아빠가 산책길에 쭈그리고 앉아 물고기 밥을 주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짠한 마음이 들었다.
“하하. 짠하죠. 사실 외로워서 그래요. 창업은 정말 너무 외로운 일이더라고요. 예전에 회사 생활할 때 느꼈던 팀워크가 그리울 만큼요. 지금은 종일 혼자 일해야 하니까... 심지어 8~9시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일한 적도 있어요.”
잠깐 사이에 ‘외롭다’는 단어를 여러 번 쏟아낸 그는 그래서 가족에게 더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15년을 준비했지만 막상 창업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빠로서' 창업을 결심하면서 가장 먼저 설득해야 했던 사람이 아내였다. 15년간 탄탄한 회사를 멀쩡히 다니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퇴직하겠다고 말하면 딱 등짝 맞기 좋은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아내마저도 철저히 계획적으로 설득했다.
"아내에게 제안했어요. 몇 년 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아도 대체할 수단을 줄 테니 그 시간 동안 내 꿈을 실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사실 5년 전쯤 시작했던 재테크로 모아놓은 수익이 조금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돈을 주고 아내 퇴직금을 사업 비용으로 받았죠. 어떻게 보면 제 꿈을 위해 가족의 시간을 샀네요."
남편의 도전을 허락(?)한 아내는 이후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퇴직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돈 한 푼 주지 못해 그가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을 때도 아내는 "괜찮아 가능성이 있어 더 해봐, 내가 좀 더 벌어보도록 노력할게"라고 말했다.
"사실은 작년 겨울에 마이너스 통장도 다 썼어요. 제가 오랜 기간 돈을 못 가져다주니 결국 아내가 다시 취업을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아내는 가능성이 있다며 6개월 더 해보라고 말해줬어요."
한참을 아내 자랑에 침이 마르던 그가 갑자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제가 창업한 줄 모르세요. 말씀을 안 드렸거든요. 장인어른이 예전에 사업을 하셨어서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자식들에게 사업하지 말고 직장 다니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는 분이죠. 아내는 창업 이야기를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요.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하잖아요."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기사가 나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그가 긴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사업이 잘 됐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아요. 사실은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업하면서 너무 외로웠는데, 술 한잔하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내 말곤 없었어요. 장인어른은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아실 분이니 ‘그래 고생했다’라는 말 한마디 말 듣고 싶네요. 사실 지금 저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에요."
사업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가족은 그에게 위로와 활력소가 됐다. 자신의 꿈을 위해 창업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고단한 창업 과정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때문에 그는 창업을 위해 1순위에 둬야 할 것으로 '가족'을 꼽았다.
"가족의 응원이 없으면 성공 확률이 낮아질 거예요. 창업이라는 외롭고 힘든 길을 가야 하는데 뒤에서 듣든 하게 밀어주지 않고 총을 쏘면 난감하잖아요. 진퇴양난이죠. 든든한 아군이 없는데 밖에서 어떻게 싸우겠어요. 특히, 창업의 최전선에서 아내는 의무병이에요. 어렵고 힘들 때 다시 일으켜주고 치료해 주는 존재니까요."
그는 사춘기 딸아이와의 단톡방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철쭉이 아빠
◇ 트리거가 된 육아문제
아내의 응원으로 연장된 6개월도 거의 끝났다. 게다가 장모님이 건강 문제로 더는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시게 됐다. 관심을 가지고 돌봐줘야 할 11살, 6살 아이들을 보며 그는 고민 끝에 또다시 결단했다.
"자금은 떨어졌고 성과도 안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아파요. 아이 문제가 걸리면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수신제가까지 와서 치국을 하는데 치국이 어려워지고 제가도 어려워져서 다시 집을 챙기기 위해 돌아가는 셈입니다. 결국 아이 키우는 문제가 사업을 접게 만든 방아쇠가 됐어요."
◇ 실패로 배운 지혜
1년 반의 도전 끝에 컨시어지 시스템 사이트, 쇼핑몰 사이트가 남았다. 물론 그간의 경험도 남겨진 자산이다. 그는 밀알 같은 스타트업 회사가 코로나 시국을 헤쳐나가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실 호기롭게 시작한 이번 도전이 큰 울림으로 성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는 것도 큰 용기이자 결단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직 능력이 모자랐거나 이 시스템이 완벽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요. 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코로나 시국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몇 가지 요소를 다 제어하지 못한 책임 역시 나에게 있는 것 같아요."
실패의 원인을 담담하게 곱씹던 그가 자기계발서적에서 읽은 것이라며 한 줄 글귀를 들려줬다.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고, 실패한다면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성공전략/도서출판 글나눔)
"실패를 인정하되 자책하지 않으려고요. 사업하면서 더 많이 지혜로워진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정비해서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려 합니다."
◇ 아빠살이 후반전은 로버트 드 니로처럼
"창업하니 예전보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어요. 한 번은 둘째 아이 하원 시키려 어린이집에 간 적이 있는데 절 보더니 방긋 웃으며 '아빠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리곤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야'라고 자랑하더라고요.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지만 저에겐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어요. 예전에는 바쁜 회사 생활 때문에 한 번도 보지 못했거든요."
사실 스타트업은 살아남기 위해 일반 회사보다 더 치열한 하루를 보낸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이 넘쳐나지만, 그는 그 시간에서 가족을 위한 시간을 잊지 않고 챙겨놓았다. 다시 직장 생활을 할 것 같다는 그는 돌아가더라도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이들에게만큼은.
"영화 '인턴' 아세요? 저는 그 영화가 직장 이야기가 아니라 아빠와 딸 이야기 같이 느껴졌어요. 그 영화에서 70세 인턴을 연기한 배우 로버트 드 니로처럼 나이가 더 들어도 아이들에게 친구 같고 철없지만 깊이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이제 회사로 다시 돌아가겠지만 예전보다 시간을 할애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이 아빠의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