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 책을 읽고
모두의 인생을 압축해놓으면 쌩뚱맞고 난데없는 전개 같아 보이지만 그 시작과 끝 사이에 끼어있는 것들을 낱낱이 풀어놓으면 그럴만한 이유와 사정들이 끼어있다. 내 인생도 퍽 그런 편이거니와,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해가는 여성 노동자를 위한 함바집 #함바데리카와 적은 품으로 있어 보이게 차려 먹는 방법을 알려 드리는 #잇어빌리티 클래스를 꾸준히 진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무수한 이야기를 듣고 축적한 데이터로부터 도출한 결과다.
웹 디자이너였다가 퇴사하고 사진 스튜디오와 잡화점을 꾸리게 된 어떤 작가님의 이야기. 이 책에서 말하는 처음과 현재로 대표되는 끝점만 이으면 그렇게 설명될 것. 그러니 궁금해진다. 나는 흥미로운 서사의 인생을 접하게 되면 함바데리카에서 늘 하던 질문들이 마음에서 솟구친다. "어쩌다 지금 하시는 일을 하시게 됐어요?" "원래 꿈이 이 일이셨어요?" "대학 때는 어떤 분이셨어요?" "지금 하시는 일에 만족하시나요?" 함바데리카에 작가님을 초대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상상을 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마음 속으로 질문을 하면 용케도 그 해답이 이 책 어딘가에 정성스럽고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은 "에리카팕, 이게 너의 미래야. 네가 지금 알아야 하는 이야기야." 하는 것처럼 회사를 나와 독립적인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의 교본 같은 책이기도 했다. 그러니 질문하는 쪽이던 나는 어느새 작가님 자리에 앉아 나를 대입하고 있었다. 작가님이 말하는 처음의 순간들을 읽을 때는 "맞아 맞아 그렇지~" 끄덕끄덕이며 밑줄을 치거나 페이지 모서리를 접었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괜스레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인생선배의 교본을 인수인계받듯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 나갔다.
퇴사하고 단골 술집 사장님과 스튜디오를 꾸리게 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여정은 동업자와 치열하고도 치졸하게 싸우는 이야기에서 친동생과 일하며 발견하게 되는 가족과 일할 때의 재미들을 이야기한다. 일에 대한 이야기가 가열차게 이어진 다음에는 쿨다운시키듯이 지구 어딘가의 나른하고 한가로운 장면들이 영롱하게 담겨있다. 정멜멜 작가님이 직접 세계 곳곳을 산책하며 담은 장면들이다. 그리고는 좀 더 내밀하게 궁금했던 일 전의 삶과 이후의 포부들이 진솔하고 여실하게 담겨있다. 이즈음에서는 작가님과 좀 친해진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여정 안에 촘촘하게 좋은 문장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지점에서는 질투심이 느껴질 정도로.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실까!' 그리고 작가님의 필력 중 마법 같은 부분은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한다는 마음보다, 그때 나는 어땠는가 생각해보게 만드는 어떤 마력이 있다. 그래서 후루룩 읽다가도 더디게 읽어졌다. 자꾸만 찾아드는 '내 경우'들이 많아서. 이러다가는 자꾸 독서의 맥이 끊일 것 같아서 메모장에 정리해본 생각할 거리들은 대략 이렇다.
* 이 책을 읽으면 생각하게 되는 것들.
- 엄마와의 관계
- 처음 겪는 일들
- SNS
- 공간을 꾸리게 되는 일
- 물건에 대한 마음
등등...
그리고 메모장에 담긴 또 다른 항목, * 이 책을 읽으면 친근해지는 이름
- 신해수, 정수호, 택수, 한강이.
종종 <퇴사하고 월 수익 몇 천만 원, 또는 몇 억> 같은 자극적인 말들로 조직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는 광고들이 많다. 그러나 조직을 나온 입장에서는 사실 그런 결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들의 이야기가 좀 더 가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을 나와 자기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밀도 있는 증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 더없이 좋은 교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