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을 넣었으니 꿀맛이 나지요.
손님들에게 대접할 때마다 탄성과 박수갈채를 받는 메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허니 버터 문어 스테이크. 웅장한 문어 다리에 챠르르르 꿀의 윤기가 흐르는 비주얼과 달큰하고 고소한 마늘 버터의 향으로 등장부터 좌중을 압도하는 음식인 것에 비해 레시피가 워낙 간단하여 적은 품으로 있어 보이는 메뉴 레시피를 알려드리는 <잇어빌리티> 워크숍의 대표 메뉴로 자리매김한 메뉴다. 실제로 333번의 집들이 중 절반 이상은 이 메뉴를 대접했을 정도로 집에 놀러 오시는 손님들에게도 자주 대접하는 음식인데, 신기하게도 맛을 본 손님들이 종종 같은 질문을 주시곤 한다.
“지금 느껴지는 이 단맛의 정체는 뭐죠?”
시각과 후각에 압도된 나머지 이 달콤함에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주시는 모양이다. 질문하신 분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해 괜스레 죄송해지지만, 거짓을 고할 수는 없으니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그게 꿀이에요. 꿀맛이에요.”
“아~ 이게 꿀맛이구나~”
설탕과 더불어 단연 달콤함의 대명사지만 단맛을 감각하고는 쉽사리 떠올려지지 않는 이유는 대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대장금의 유명한 대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이 대사 덕분에 한국인들은 일단 느껴지는 단맛에 설탕 아닌 홍시처럼 무언가 다른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상상해보는 것 아닐까? 귀여운 한국 사람들. 나는 그 대사를 말하는 장금이의 결백함과 순진무구함을 담아, ‘꿀을 넣어서 꿀맛이 날 뿐’이라고 말한다. 넉넉히 두를수록 더 꿀맛이라는 말까지.
퇴사하고는 종종 그 질문이 귓가에 맴돈다. ‘지금 느껴지는 이 단맛은, 단맛은, 단맛은 뭐죠?, 뭐죠?, 뭐죠...?’ 동굴 속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다 보면 고드름처럼 맺혀 있다가 뚝뚝 떨어지는 꿀에 여러 장면이 겹쳐 보인다.
동이 틀 때까지 드라마를 정주행 하다가 이제 다리를 좀 움직여봐야겠다 싶으면 운동화를 신고 파란 새벽의 공원으로 뛰어드는 장면, 공원을 산책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자주 가는 설렁탕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시원하게 완탕 하고 배를 두들기며 유유히 돌아오는 장면, 평일 대낮에 프리랜서 친구들을 만나 브런치를 즐기고 한낮의 하늘을 구경하는 장면, 낮잠을 자다가 오후부터 일을 시작해서는 네덜란드 시차로 깨어 있는 장면, 춤이 추고 싶어지면 연습실을 예약해서는 언제고 춤을 추는 장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양껏 음식을 나눠 먹고는 배부름의 비명과 맛의 찬사를 나누는 장면…
남들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나의 시간대로 살 수 있는 장면들이 알알이 맺혀 있다. 떠올리기만 해도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나의 시간. 직장인이 아니라 프리랜서라 가능한 나의 단맛이다.
여기까지만 쓰면 얄미울 수 있으니 평생을 이렇게 살지는 않았다고 해명해본다. 쓰디 쓴맛 이면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7년의 세월 동안은 시체처럼 출근해서 좀비처럼 일하다가 산송장으로 퇴근하고는 했다. 더 이상 영혼 없는 생활은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남들에게는 고단할지언정 나에게는 고단하지 않은 일을 찾아 직장을 나왔다. 그리고 나만의 꿀 같은 일상을 퐁당퐁당 번갈아 채우며 살고 있다. 언제나 달콤하지는 않지만 내 나름의 꿀 떨어지는 장면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니 시금털털하고 텁텁했던 인생이 달콤해졌다.
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그 생활이 채 일 년도 안되었지만, 그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배운 것이라면 꿀을 넣으면 꿀맛이 난다는 것. 쓰면 뱉고 달면 삼키고 싶은 내 본능이자 순간의 느낌이 인생의 전부일 때가 있다. 쓴 맛의 이면 같은 것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 처참하기도 하고 반가운 말일 수도 있을 것. 만약, 이 말이 반갑게 느껴진다면 단맛을 좇아보는 것도 좋다고, 본인만의 꿀을 넣으면 꿀맛이 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넉넉히 두를수록 더 꿀맛이라는 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