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특히 혼자 떠나는 여행의 목적은 그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고 각별하다. 무언가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기 위함일 수도, 새로운 세상에 색다른 환경을 접하는데서 오는 청량감을 맛보기 위함일 수도, 아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고독한 자신을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일 수 도 있다.
내가 산을, 그것도 남한에서 가장 높다는 한라산을 찾은 이유는 뚜렷하게 없었다고 해야 좀 더 솔직할 거 같다. 굳이 없는 이유를 만들어 보자면 생애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가장 높은 곳을 걸어보겠다는 욕심이거나 어딘가 적어놓았던 버킷리스트 한 켠에 '한라산 등반'을 보고 새삼 결심한 것일 수도, 아님 그냥 휴식이 필요했었던 것일 수도 있다(휴식으로 그 험한 곳을 오르진 않을지 몰라도 말이다).
뚜렷한 계획은 없었지만 적잖이 묵혀뒀던 마일리지가 눈에 띄었고 순식간에 표를 끊고 주섬주섬 가방을 사고 제주 땅을 밟았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리듯 그렇게 한라산 등반길 앞에 서서 기지개를 크게 한번 키며 몸을 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목적을 생각하고 무언가 얻기 위해 오른 길이 아니었기에 입구부터 터벅터벅 걸어 일년 50여일 정도밖에 허락하지 않는다는 정상, 백록담에 다다랐다. 그리고 풀린 다리를 다독이며 걸어걸어 또 내려왔다. 여정은 단순했고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오르고 내려오면 끝이었다.
산행은 세찬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의 자신감과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한 발 한 발 옮길 수 있는 성실함 후에 맞보게 되는 정상 정복의 성취감이 함께 하는 고상한 과정이긴 하나, 내겐 그냥 높은 곳을 향해 걸어서 오르고 내려오는 땀 흘리는 과정일 뿐 그냥 힘들고 고된 육체 활동이다.
그러함에도 한라산이라는 거대한 자연이 허락해준 두 팔에 안겨 그 따뜻한 품 안으로 걸어간 이유가, 뚜렷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 품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과의 진정한 인간관계가 그리워서였다고 하면 지나치게 감성적일까.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오르는 중에 들려오는 "안녕하세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힘내세요~", "수고하십니다~" 건네는 정다운 말 한마디들. 힘들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가뿐 숨과 무거워진 발걸음이 가벼움으로 바뀐다. 이제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인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새 먼저 인사를 건네는 나를 발견하는 게 새삼 신기하고 낯설기까지 하다.
쉬면서 건네는 작은 초코바하나, 간식 하나에 낯선 이에게 가진 경계심도 친근함으로 다가선다. 주섬주섬 없는 말 있는 말로 경계도 허물고 따뜻한 미소에 서로의 카메라로 한순간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도 담아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오르고 내리며 가파른 길을 서로 양보하며 기다리는 마음, 정상 비석 앞으로 줄을 서서 앞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며 감사의 말을 주고받는 훈훈한 마음, 쓰레기를 고이담아 내려오며 자연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마음. 이런 선한 감정들을 듣고 느끼기 위해 그곳 산을, 자연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이만한 따뜻함을 맛본 지가 언제였나 하고 잠시 생각해 본다. 칭찬보다 시기와 견제가 만연한 직장에서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힘들고, 운전대만 잡으면 양보고 뭐고 내팽개치고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의 적대감들, 아무렇지 않게 던져져 더러워진 길거리의 쓰레기 더미들, 같은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고개 숙이고 말을 걸고 싶어 하지 않는 이웃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의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모든 모순적 행동들이 이 산이라는 자연 속으로 들어오면,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이고 선한 본성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데 어찌 산을 멀리하고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산을 찾으면 빈손으로 왔다가 가슴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갈 수 있어서 좋다.
이른 3월 봄에 찾은 한라산은 여전히 눈이 녹지 않아 한 발 한 발 내딛기 힘들고 추운 시기이지만 산 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미 봄기운 넘치는 사람 간의 여린 애정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17.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