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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Jan 08. 2020

운전, 아이슬란드 여행의 묘미

초보 운전의 아이슬란드 운전기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지 이제 2주째 돼 간다.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간 해외 여행이었고 기대가 매우 컸는데 기대보다 더 소중한 기억을 만들었다. 사실 나는 남들이 다들 동경하고 위시리스트에 적어두는 유럽 여행에 왜인지 관심이 없다. 특히 서유럽 여행. 유명하다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안 든다. 내가 그 나라에 대해 잘 몰라서인 것도 있을테고 그냥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남유럽은 가보고 싶고 옛 구소련 연방에 속했던 국가나 발칸 반도 쪽은 조금 호기심이 가는데 정말 익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 관심이 안 간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달랐다. 처음 아이슬란드 여행을 생각한 것은 한 2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같은 공간에서 일했던 친구가 나와 다른 친구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며 아이슬란드를 이야기했다. 사실 그때는 아이슬란드 돈도 너무 많이 들고 멀다고 생각한 데다 우리 셋 중 제대로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둘은 무면허, 한 명은 장롱) 그대로 포기, 라오스로 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일랜드에 오기로 결정할 때부터 나는 아이슬란드를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아일랜드와 헷갈리는 나라, 설명할 때마다 명백히 다른 나라라고 일러두는데 정말 웃기게도 아일랜드에서 비행 2시간 거리 밖에 안 돼서 헛웃음이 나는 나라, 아이슬란드 여행을 꼭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일랜드 상륙 약 9개월 만에 아이슬란드에 다녀왔다.


여행 기간이 너무 짧아서 그리고 미디어에서 익히 본 장대한 오로라를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운전하고 다니는 그 길과 장면과 순간과 공기 모두 하나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4박 5일의 일정이었지만 마지막 날은 이른 아침 비행 시간 때문에 사실상 4일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왜 새해를 그곳에서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후회한다. 짧은 시간 때문에 북부를 가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하지만 애초에 운전이 두려워서 북부는 생각하지 않았긴 한데 한번 해보니 할 만하다. 다음에는 북부까지 모두 여행해 링로드를 완주할 예정이다.


시간 순서대로 나열식 풀어내기는 하기 싫어서 포스팅당 하나의 키워드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주자는 바로 운전이다.


운전


크리스마스 아침. 정오가 된 시각인데 해가 뜨고 있다. 사실 해는 저 상태에서 더 올라오지 않고 오후 3~4시가 되면 그 자리에서 다시 떨어진다. 일출을 본 것은 행운이었다.


운전은 아이슬란드 여행의 묘미 중 하나였다. 사실 여행 전에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딴 이유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비롯해 해외에서 렌트하기 위함이었는데 면허를 딴 지 약 2년 밖에 안 지났고 실제 운전 경력도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새로운 것을 빨리 익히고 실제 운전할 때는 나름 잘한다고 자부하지만 경험 부족은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는다. 심지어 지역은 한국도 아닌 해외, 아이슬란드였다. 눈길, 빗길이 많다는 곳에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여행 동료 4명 중 나를 제외하고 2명이 운전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조금 안도한 것도 있지만 다들 경력이 긴 친구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렌트카를 빌리고 추가 보험 살펴보는 등 모든 일을 내가 다 했기 때문에 여행 동지들을 믿어도 되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같은 나라 사람이었으면 싸웠을지도 모르는데 모두 다른 나라 사람인데다 설명을 해도 별로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내가 혼자 다 했다.


첫 날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첫 숙소가 있는 호프까지 가야 하는데 6시간 장거리 운전을 필요로 했다. 공항 도착 시간은 2시경. 3시경 공항에서 렌트카 직원을 만나 공항 근처 사무실까지 간 뒤 그곳에서 차를 받고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시간 보내고 실제 출발을 위해 운전대를 잡은 시각은 4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휴대폰 거치대를 어떻게 장착할지 몰라 헤매면서 렌트카 직원한테 물어보고 했던 때가 생각난다. 에어컨디셔너 날개에 끼우는 건데 내가 해봤어야 알지 하하...


사실 첫 날 운전은 정말 무서웠다. 하필이면 케플라비크에서 셀포스까지 구간이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았다. 눈과 비바람이 매섭게 차량 앞을 향해 돌진했고 길바닥도 얼어 있었다. 아직 열려있다는 정보를 얻고 찾아간 식료품점인 보너스는 이미 영업이 끝난 상태여서 멘붕이 오기도 했다. 게다가 라운드어바웃에 익숙하지 않아 41번 국도를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더 북부로 가기도 하면서 정말 운전하는 내 몸과 마음 모두 긴장 최고조에 이르렀다. 얼음길 운전 때 한번은 차량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핸들 제어하느라 식은땀을 흐르기도 했다.


눈 비바람이 불 때 운전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겠더라. 일단 맞바람을 받으며 운전하니 눈과 비가 내 앞으로 돌진하는 모양새를 하는데 그게 하나의 점이 되면서 시야를 흐리게 했다. 흐리멍텅해지는 눈을 꽉 붙잡고 집중하느라 고생 좀 했다. 게다가 차선이 하나 밖에 없고 반대 차선과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눈에 덮혀 있어서 더욱 구별하기 힘들었다. 오른쪽으로 잘못 빠졌다간 차량이 눈길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조언은 눈이 뚫어지도록 찾아본터라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운전하는 것도 꽤나 집중을 요구했다. 애꿎은 구글 GPS만 몇 분 간격으로 쳐다보며 나는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데 도대체 왜 시간이 빨리 지나가지 않는지 한탄했다. 조금만 잘못 움직였다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칠흑 같은 그 순간이 악몽 같았다. 다시는 아이슬란드에 여행오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무서운 눈바람을 맞으며 가는데 정말 한순간에 날씨가 변했다. 마치 눈에 안 보이는 장벽이라도 존재하는 듯이 미친 듯이 내리던 눈이 갑자기 뚝 그치고 빙판길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깐 없다가 다시 눈이 내리거나 빙판길을 만나겠지 싶었는데 그냥 그렇게 악몽 같은 길은 그 길로 끝이었다. 그때부터는 운전이 수월했다. 도시를 벗어났기 때문에 길에 차도 없는 데다 차가 와도 수십킬로미터 멀리에서부터 이미 볼 수 있어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비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가까운 주유소에 들렀고 그와 동시에 다른 동료들도 모두 긴장을 풀었다. 주유소에 내려서 바깥 공기를 맡으니 그제야 아이슬란드에 왔구나 싶었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팔을 쭉 펴며 스트레칭을 했다. 어릴 적 가족들을 데리고 늦게까지 운전하던 아버지가 생각나 고맙다는 생각과 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찾아왔다. 비크까지 왔으면 이제 절반 정도 온 거였다. 사오리가 운전대를 잡겠다는 것을 그냥 내가 잡았다. 반대인 운전대를 밤에 잡게 하는 것보다는 계속 운전해온 내가 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운전하는 동료의 모습.


그 다음부터는 재미있는 운전이 시작됐다. 수다도 떨고 노래도 부르고. 나는 운전하느라 주변 경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친구들은 종종 창문을 열고 하늘에 별이 매우 많다고 감탄했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빠르게 달려 밤 10시가 채 되기 전에 첫 숙소인 Hof 1 Hotel에 무사히 도착했다. 사실상 인생의 첫 운전을 아이슬란드에서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초반의 난코스 운전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고 그 운전을 무사히 마쳐서 정말 다행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 같은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참 고맙다.


지나치는 풍경. 대부분 시간을 운전을 해서 주변 풍경을 담을 순간이 적었다.


이후부터는 정말 운전이 쉽고 재미있었다. 사실 아이슬란드 운전이 서울 시내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도로에 차는 없지, 길은 또 일직선이지, 사람들은 양보를 잘하고 규정 속도 준수하며 달려도 압박 주는 차량 없지. 무엇보다 운전하는 풍경이 모두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점,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점. 이 모든 것이 아이슬란드에서의 운전을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조금 해봤다고 라운드어바웃도 부드럽게 들어서고 올바른 도로로 잘 빠져 나왔고 상향등도 제때 켜고 끄며(사실 까먹고 앞차 오는데도 못 끈 적 있었다) 적재적소에 잘 사용했고 앞과 뒷창문 청소도 필요할 때 잘해줬다.


물론 잘못 운전하다가 사고난 차량도 종종 봤다. 막판에는 차량 두 대가 부딪힌 모양새였는데 차량 하나는 들판에 나가 떨어졌고 다른 하나는 앞 범퍼가 아주 아작이 났더라. 그 장면을 보며 다시 한 번 운전대를 잡는 것은 많은 목숨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운전할 때 나는 종종 내가 지금 내 목숨은 물론 함께 차량에 탑승한 세 친구들의 목숨도 손에 쥐고 있다고 상기하며 운전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버지 생각이 사무쳤다.


마지막 날 Garður Old Lighthouse에서 간신히 본 작은 오로라. 육안으로는 하얀 구름띠만 보일 뿐이다. 넘실대는 오로라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아이슬란드에서 사고나면 돈 몇 백은 깨질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나 추가 보험 없이는 견인차(towing car, wreck car) 출동비가 포함이 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또 도로 쉽다고 신나게 규정 속도 어기며 달리다가 과속 카메라에 적발되면 수십만원 깨진다. 참고로 아이슬란드는 규정 속도를 어느 정도나 어겼냐에 따라 벌금이 매겨지는데 그 차이가 커질수록 벌금이 비싸진다. 어떤 사람은 7만5000 ISK, 한화로 약 75만원 되는 벌금을 냈다고 한다. 나는 마지막 날 오로라 보러 등대 가는 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과속 카메라를 봤는데 몇 백미터 전에 카메라 있다는 표시가 있긴 했다. 속도를 줄여서 다행이지 그때 카메라 보곤 흠칫 놀랐다. 참고로 Garður Old Lighthouse에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등대 진입 직전 작은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카메라가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카메라 있다는 사인이 있기 때문에 사인만 잘 보고 규정 속도 지키면 된다.


내가 아이슬란드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그곳에서의 운전이 매우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1인당 GDP가 7만이 넘는 고소득 국가라 약 4일 운전 주유비가 20만원 넘게 나온 점은 가슴 아프지만 그만큼 값어치가 있었다. 올해 여름에 다시 가고 싶다. 같이 갈 사람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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