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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Jan 23. 2023

아일랜드서 본격 여자 축구 시작

다수의 스패니시, 백인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해외에서 살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운동을 많이, 자주하게 됐다는 점이다. 일단 걷기를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유럽 내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는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아서 오히려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빠르다.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대중교통, 특히 버스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 문제가 있다. 리얼타임 시스템으로 버스가 해당 정거장에서 몇 분 남았는지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도대체 어떤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다고 예정된 버스가 안 오는 경우가 잦다. 


이 문제 관련해서 작년에 기사도 나왔었는데 하도 오래 전부터 이래와서 요즘엔 그냥 적응하고 산다. 그래서 보통 도보 20~30분 거리면 충분히 걸어 다닌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내 낙이었지만 몇 달 전 누가 훔쳐가서 이젠 그것마저 없다. 아일랜드는 지하철도 없고 오직 버스만이 유일한 교통 수단이다. 물론 더블린에는 루아스라는 트램이 있지만 내가 사는 곳에는 없다는 거... 차를 사야 하나...


어쨌든, 자주 걷게 되다보니 활동량은 한국에서 살던 때보다 훨씬 많다. 헬스장에 다닌 지도 벌써 1년이 넘었고 운동을 하루라도 안하는 날에는 좀이 쑤신다. 여기에 요즘에는 일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한다.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골때녀 영향이 크다. 작년 어드메쯤 우연히 골때녀를 보게 됐는데 이 언니들이 못하는 발재간으로 축구에 울고 웃고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감정이 북받치곤 했다. 특히 국악소녀 송소희의 축구 실력에 완전히 마음을 뺏겨 버렸다.  


처음에는 3~ 4명의 회사 동료들이랑 간간이 동네 공원에서 하는 정도였는데 매번 쪽수도 채워지지 않고 날씨 탓도 있다보니 자주 안하게 됐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접을 순 없어서 회사 퍼블릭 챗창에 여자 축구 모임이 있는지를 물었고 그렇게 이 스패니시 언니들을 만나게 됐다. 


글랜 파크에 있는 축구 피치. 

나를 초대해준 사람은 로라. 매주 1~2회, 수요일이나 금요일 혹은 주말에 게임을 하는데 이번주에는 사람이 다 차서 다음번에 로스터가 올라오면 함께하자고 하며 나를 왓츠앱 채팅창에 초대해줬다. 주말에는 보통 남자들이랑 같이 한다. 이 챗창에 83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여자. 회사 동료들끼리 할 때는 매번 3:3이라도 하게 구걸하듯이 와달라고 부탁했던 상황에서 축구를 하겠다고 모인 여자들이 이렇게나 많은 방에 들어가다니 정말 신나고 놀랐다. 물론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창에서 실제로 축구를 하는 사람은 전체 인원 대비 많지 않지만 적어도 10명은 넘는다. 항상. 로스터가 올라와 선착순으로 10명이 차면 서브로 이름을 적어둘 순 있지만 빠지는 사람이 없으면 그 주 게임은 아쉽지만 참여 못한다.


게임은 5 a-side로 진행한다. 미니 풋볼인데 5:5로 하는 게임이다. 특별한 룰은 없다. 골대 라인 안으로 공이 들어갔을 때 아웃되는 것 이외에 특별한 규칙은 없다. 오프사이드도 허용. 같은 편이 우리 골키퍼에게 공 줬을 때 손으로 잡는 것도 허용. 


대부분 스패니시 문화권 출신이다. 모두가 스패니시를 할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이 공용어로서 영어만 쓸 줄 아는 사람은 소수다. 지금까지 만난 언니들 국적은 스페인, 브라질, 에콰도르, 미국, 폴란드, 터키, 프랑스, 네덜란드. 나라를 적어놓고 보면 다양하지만 다수는 역시나 스페인과 남미. 나는 여기서 홀로 아시안으로서 팀 내 다양성을 담당하고 있다.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첫 날에는 조금 당황했다. 오가는 스패니시 사이에서 나만 붕 뜬 느낌. 아직도 난 이 모임에서 적응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얼굴도 익히고 자주 오는 언니들이 내 이름도 외우고 있는 것 같고 해서 친해지려면 더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놀랐던 것은 이 언니들, 축구를 정말 잘한다는 점이다. 매번 나오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데 다들 진짜 잘한다. 공도 잘 차고 패스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고 거침없는 느낌. 특히 나를 모임에 초대해준 로라는 어릴 때부터 오빠의 상대역을 해줘야 해서 축구를 접했고 이후에는 팀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어서 정말 잘했다. 내 목표를 로라가 가진 공을 언젠간 뺏어보는 것인데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모임은 3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여자들끼리 어떻게 서로 알게 되면서 이렇게 커졌다고 한다. 


처음 신어본 축구화.

한 시간 정도 뛴 뒤에는 보통 근처 펍에 가서 맥주 한 두 잔 정도 하면서 뒤풀이를 한다. 술 좋아하는 한국인으로서 난 이게 참 좋더라. 물론 가면 스패니시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다 같이 이야기할 때는 영어를 쓴다. 빨리 더 친해져서 이들 사이에 끼고 싶은데 이들도 날 어려워하는 건지, 역시나 가장 빠른 방법은 내가 매주 축구를 하러 가는 것뿐일듯 하다. 내가 모임에 합류한 것은 작년 10월이지만 11월에는 한국에 가 있었고 12월에는 연말이라 축구를 거의 안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어색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굉장히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는 언니들이다. 올해 5월에는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축구 대회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처음에 난 내 실력이 좋지 못해서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 싶고 축구 연습에 동기를 부여하자는 차원에서 나도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엊그제 비행기표도 예매해버렸다. 문제는 내가 이들과 좀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하는 점.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서로 아직 모르니까, 그리고 이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온 시간이 있으니까 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시안이라서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마요르카에서 5월에 축구라니 정말 좋을 거 같다.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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