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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14. 2024

이해와 허용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너 때문에 행복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우연히 하늘을 찍었는데 재밌는 걸 발견했다.

형광펜으로 그려진 부분을 달걀형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구름의 빈 공간이 눈의 움푹 파인 부분 같아서 수염 많은 할아버지 모양새다. 그런데 가로로 타원형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구름의 공간을 두고 사람이 애틋하게 마주 보고 있는 모양새다.

안 보여도 괜찮다. 다른 사람들도 잘 모르겠다고 했으니까. 창의적인 그림에 몰두한 나의 과도한 상상인지도 모른다.


오늘 이 사진이 다시 생각난 건, 누군가와의 대화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달라진 나를 표현하면서 한번 썼던 내용이고,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데, 잘못된 행동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 사람의 차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가서 물걸레와 마른걸레로 그 차를 닦아줬다. 난 원래 착한 사람이 아닌데 그날따라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 진짜 사랑이 어떤 건지 알면 그렇게 안 했을 텐데요' 단지 그 마음이었다. 그 마음으로 며칠을 더 했었고, 그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했다.


나의 그 행동이 죄를 허용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누군가에게는 참아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로 다가왔다는 얘기를 오늘 처음 들었다. 생각지 못한 상황이라 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다면 난 관계를 유지했고, 그 마음으로 대했다. 난 그게 신이 원하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마음으로 살아왔으니까, 나와 가까운 이들은 나에게 그런 식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난 어딘가에서 죄에 대해 혀용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방조혐의와 가까운 이들가스라이팅하여 희생을 강요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친구의 손을 못 보고 실수로 문을 닫았는데, 손이 낀 친구가 아파하는 게 재밌어서 계속 그 장난을 쳤던 아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아이가 사이코패스일까 생각했는데, 엄마가 와서 잘못한 내용을 듣고도 그 아이의 감정을 먼저 물어보는 것을 보면서 엄마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아이에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인식시키고 다시는 할 수 없게 단호해야 한다고. 물론 사람들마다 생각이 달라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때 난 이 말을 듣고 동의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엄마랑 방향은 다르지만, 나의 문제점자기중심적인 사고다. 다른 사람들도 죄에 대해 나랑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죄를 지었을 나만큼의 죄책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사랑을 위해 감내하는 스트레스를 나 정도의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점은, 나의 사소한 사랑이 언젠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이건 좀 더 무운 죄, 오만에 해당한다. 물론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신이 준 마음이라고 믿었기에, 신이 개입하시면 신의 때에.


죄에 대한 허용이라는 말에 지난 삶 전체가 흔들리는 거 같았다. 그래서 신을 떠났다는 말에 더욱...

죄에 대한 기준이 흔들리고, 다수의 참여가 죄가 아니라고 우기는 지금의 때. 오늘 대화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사진은 고정되어 있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처럼 나의 행동이나 말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의 글은 누구를 위한 사랑이고 누구를 위한 위로일까?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내가 다니는 약국 뒤에는 시장이 있다. 주일 오후 갑자기 염색을 하느라 시장 안 미용실에 가게 됐다. 미용실이라고 쓰여있는 낡고 허름한 가게, 그 앞에 놓인 파는 호박, 70쯤 되신 미용사 어르신과 친구분, 머리를 덜 상하게 영양까지 넣은 염색 가격이 만오천 원. 처음엔 시골 풍경 같은 모습이 낯설었고 그분들도 나름 젊은 고객이 어색하셨지만 이내 수다로 친해졌고 만족하며 나왔다.

다음 달, 다시 그곳에 갈까 하다가 그 옆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 지나가다 보면 파마보자기를 쓰신 할머니들이 많이 앉아계셔서 신기했던 곳이다. 하신 분들이 친구분들을 데리고 오셔서 손님이 많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다음 달 그 옆의 미용실에 갔다. 이번엔 머리 다듬고 염색을 해서 이만오천 원을 냈다. 젊은 미용사가 5분 만에 뚝딱 자른 머리가 그분에겐 익숙하지 않은 형태였는지 머리를 다듬는데 한참 걸렸고 염색까지 다 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내 머리에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분을 처음 봤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는지 조금 자라면 다음번엔 더 예쁜 머리가 될 거라고 하셔서 한번 더 갈 예정이다.


첫 방문이었던 세 곳의 미장원은 나에게 추억으로 남을 거 같다. 어릴 적 놀던 시장, 그 시절에 다녀온 여행처럼.

난 머리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머리를 감고도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지 않는다. 물론 게을러서가 크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미용실을 이용하고 나서 난 드라이로 머리를 말린다. 드라이로 머리를 말려야 좀 더 나은 머리형태가 나와서다.


그분들은 알지 못하지만 '그분들의 손길이 닿은 나'가 신경 쓸수록, 그분들은'멋진 너를 만든 나'가 될 거다.




내가 관계를 유지하고, 믿어주고, 사랑을 전하고 싶었 그분들도, 그래서 죄를 허용한 것처럼 느꼈던 그분들도 언젠가 느끼게 되길 기도한다. 그건 복을 대하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다고. 


그냥 보기만 한 거 아니고 기도하는 마음이었다고 했을 때 누군가 그랬다.

언제 알게 되는 거냐고. 못 견뎌서 뛰어내린 후냐고.


난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난 여전히 꿈꾼다.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힘든 그 누군가에게도 지금의 걸음걸음이 예쁜 그림이 될 거라고.


사랑'이라고 이름 붙인 일들로 오히려 상처받은 분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다.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면, 나도 같이 아파서 잠이 깨고 같이 울었다고.


그분들과 더불어 사랑과 희생으로 상처받고 마음 아픈 이들에게 이 글로 마음을 전한다.


산과 강을 지나며 걸어온 길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기쁨에 반짝이는 눈도, 슬픔에 지친 어깨도,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이들 웃음 담은 비눗방울처럼, 사랑 담은 우리의 눈물도 햇살로 빛나길 기대하며, 힘내서 걸어가는 걸음걸음의 흔적 고스란히 마음에 담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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