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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Mar 26. 2024

바라봄

딸 같은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며칠 전 내게 딸 같은 아이가 전도사님과 결혼했다. 이제는 전도사님 사모님이다.


아이의 결혼 전날까지, 난 결혼을 앞둔 아이에게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해주고 싶어서 고민을 했었다. 제목도 정했었다. 내일이면 결혼식장에 들어설 아이에게. 


'오늘 아침 우연히 반쯤 피어있는 진달래를 봤어. 아직 펴지지 않은 분홍 꽃잎이 갓 태어난 아이의 쪼글거리는 피부 같아서 놀랐어. 처음 시작은 예쁘지 않을 수도 있어. 함께 생활하는 게 처음엔 서로 어색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좀 이상하다. 지웠다. 

'삶은 꽃이 피어있는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꽃씨를 뿌리며 꽃을 상상하며 가는 거야.' 이건 중년의 아줌마에게나 다가올 이야기다. 내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느낀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나온 길은 꽃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꽃길은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편 닮고 나 닮은 아이들이 내 눈엔 별같이 빛난다. 내겐 아이들이 꽃이다. 나의 아이들과 교회에서 만난 아이들. 그래서 이것도 지웠다.

'결혼은 온전히 선 두 사람이 만나는 거고 남편은 부모가 아니야. 남편을 너무 의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독립된 한 사람으로 끊임없이 너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노력해. 그러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같이 성장하게 될 거야.' 이건 너무 전투적이고 낭만이 없다. 그냥 혼자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지웠다.


결국 난 글을 쓰지 못하고 컴퓨터를 꺼버렸다. 


아이의 결혼식에 가서 난 예식이 끝나고 아이가 식장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친구들과 함께 서서 아이를 바라봤다. 내가 아이의 결혼에 한 일은 바라봄, 그게 다다. 

난 예식이 끝나고 알았다.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바라봄이다.


난 한동안 오해받았고 쑥덕이는 소리를 들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난 관련된 누군가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했었다. 난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나와 같은 상황이 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어느 상황이건 진심의 웃음을 웃으라고. 그러면 다른 상황을 바라보게 될 거라고. 한참 바라보면 봄처럼 따스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오랜 바라봄은 봄이다. 


바라봄


난 그저 바라본다


지나가는 한숨을

떨어지는 눈물을

귀에 쟁쟁한 웃음을

무의미한 쑥덕임을


난 이제 바라본다


한숨을 흩는 바람을

눈물로 핀 꽃들을

진심 담은 웃음으로

문을 여는 마음을


바라봄은 봄이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다.

난 내 이야기를 할 때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라고 이야기한다. 교사의 직분을 잘 수행해서가 아니라 내 행동에 문제가 있다면 그 기준으로 비난받겠다는 의지다. 

아이의 결혼식에, 전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던 아이들이 왔었다. 10년이 지났어도 아들 같고 딸 같은 아이들이다. 몇몇 아이들은 자연스레 날 안아준다. 살다 보면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난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고 싶고, 신의 선한 도구이길 소망하기에 금세 내 자리로 돌아올 거다. 

난 아이도 당당히 전도사님의 사모임을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맘껏 웃고 맘껏 재능을 발휘하기 바란다. 웃는 모습이 예쁘고 애교 있는 아이는 어디서나 사랑받을 거다. 이제 다른 교회로 가지만 난 언제까지나 교회 엄마로, 아이가 신의 사랑 안에서 신의 능력으로 당당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할 거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사도행전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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