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겨울이 흰 눈을 펄펄 날리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렸다. 얇게 덮인 흰빛의 사물들. 날아갈듯한 흰빛의 가벼움을 묵직한 마음으로 채우나 보다. 냉랭함에 맞서 자신의 온기 내어주고 여기저기 상처 입고 떠나는 내 사랑 겨울. 난 겨울이 날 걱정하지 않게 가벼운 웃음으로 겨울을 보냈다.
미처 맞서 싸우지 못한 냉랭함이 남은 듯 유난히 추운 오늘, 난 겨울을 생각한다. 겨울이 남기고 간 사랑을.
겨울의 사랑은 나도 겨울 닮아 저력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갔다. 속에 간직하고 있는 든든한 힘, 저력(底力). 내겐, 우리에겐 그 힘이 있다. 냉랭함에 맞설 수 있는 힘, 인내하며 버틸 수 있는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힘.
그 시기를 지나고 봄을 맞는다.
계절이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면서 손을 담근 연둣빛 물은 아마도 살얼음이 있는 차가운 물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담대히, 유유히.
삶의 계절도 같지 않을까? 내 삶의 방향을 잃지 않고 조용히, 담대히, 유유히.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난 영화를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작품성은 몰라서 평가할 수 없지만, 이태신, 김진기, 정병주 등 그런 분들이 계셨다는 것을 알게 하고 기억하게 해 줘서 감사하며 봤다.
옳음을 향해 소신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분들 안에 저력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눈이 많이 온 날 자동차에 여러 가지 경고가 떴다. 레이더가 가려져 자동시스템이 작동을 못한다고. 우리는 편하려고,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애쓴다. 어쩌면 그건 자동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동시스템이 망가졌을 때를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그건 굉장히 위험하다.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눈물과 고통 안에서 성장과 성숙을 기대하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지만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은 그냥 생기는 건 아닐 거다.
불안정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혼돈과 마찰, 상처 등 많은 사람들이 삶의 겨울 한복판에 있다.
저력을 키우는 마음으로 지금의 눈물과 고통을 바라보며, 덜 아파하고 덜 두려워하고 눈감아버리지 않길 바란다.
태극기를 내 나름의 상상으로 표현해 봤다. 여러 나라의 개입과 침략으로 분열되고 방향을 잃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옳음을 향한 소신으로 지키려 애썼기에 지금도 우린 꿈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에겐 저력이 있고 눈물이 있고 바라봄이 있다.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지켜진 이 나라가 더 옮음을 향해 나아가길, 그분들의 희생이 앞으로 더 빛나길 바란다. 아울러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