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Aug 01. 2024

나도 너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싶어

함께라서 참 좋다.

제목의 사진은 소금산 스카이 타워를 향하는 길에서 찍었다.


소나무가 위를 향하지 않고 옆을 향해 있다. 왜 그렇게 자랐을까?

위를 향하려는 본성을 누르고 아래를 향하려는 의지가 옆을 향하게 했을까? 아님 뿌리의 기반이 옆으로 되어있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내 눈에 이 나무는 '지나가는 이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이 나무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너처럼 삶의 폭염을 지나는 이들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싶어.


나는 왜 내가 그늘에 거하길 원하지 않고 그늘을 드리우고 싶을까?

오늘 언니와 나들이를 다녀와서 알았다. 난 이미 언니의 그늘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언니 이외의 누군가에게 그런 그늘이 되고 싶은 거다. 그런 그늘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동생들이 엄마를 모시고 나들이를 간 김에, 언니와 나도 오늘 하루 나들이를 계획했었다. 엄마가 안 계시니까 엄마랑 같이 못 가는 곳을 가자고 했지만, 딱히 우리가 튼튼한 것도 아니다. 발바닥 염증이 걱정돼서 오래 못 걷고, 언니는 허리가 아파서 약을 먹고 있었다.


안면도 휴양림을 추천받아서 가볍게 다녀올 생각이었데, 오늘 아침 갑자기 해수욕장도 들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라 낮시간에 물에 들어가는 건 아닌 거 같아 언니랑 통화를 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물에 들어가려면 여별옷도 있어야 하고 씻을 준비도 해야 하고... 갑자기 챙길게 많아졌다. 게다가 난 수영을 못한다. 언니네서 구명조끼까지 챙겨서 8시쯤 바로 출발을 했다.

그런데 조금 못 가서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서해안 물은 마음에 걸려. 물에 들어가려면 동해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계획형 인간이 아니다.

"그래? 그럼 동해로 가자."

오늘 저녁에는 수요예배를 드려야 하고,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지만, 난 망설임 없이 동해로 목적지를 바꿨다. 그리고 생각난 곳이 원주였다.


원주가 생각난 건, 몇 년 전 가족들이 모여 여행을 갔던 곳이기 때문일 거다. 요즘 언니랑 난, 가는 곳마다 보이는 진분홍빛 배롱나무를 보면서 아빠 얘기를 했었다.

아빠는 배롱나무를 좋아하셔서 수목장을 한다면 배롱나무를 심어달라고 하셨었다. 돌아가신 다음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우린 그냥 납골당에 모셨다. 그런데 우리가 돈이 많았다면 아빠가 원하시는데 그까짓 것 하며, 수목장을 했을 수도 있다

암튼 우리는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아빠를 생각한다. 오히려 아빠는 수목장을 하지 않아서 한그루의 나무 아래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배롱나무와 함께 하신다.


우린 아빠와 함께 했던 원주 여행 얘기를 하면서 숙소 근처에 있던 소금산 출렁다리로 목적지를 정했다. 당일여행으로 원주는 좀 멀긴 하다. 처음 목적지를 설정했을 내비가 알려준 시간과 달리 가는데만 3시간 정도 걸린 거 같다.


도착해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챙겨준 물을 들고 출렁다리로 향했다.

내 발바닥이 신경 쓰여서 출렁다리까지 가는 것도 걱정했던 언니는, 제법 걷는 보면서 출렁다리 저편에 보이는 울렁 다리 도전을 제안했다. 전엔 출렁다리에서 돌아왔었다.

멀리 보이는 스카이타워와 울렁 다리를 돌아 주차장까지 가는 게 얼마나 힘들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전코스 소요시간 2시간' 안내를 믿고 일단 시도하기로 했다.


'넘 잘 왔다.'는 언니의 감탄과 수다로 지루한 줄 모르고 내디딘 한걸음 한걸음은, 우리를 자연스레 모든 코스를 돌고 주차장을 향하게 했다. 그 덕분에 우리가 누린 자연은 폭염의 열정만큼 아름다웠다. 우린 그저 자연을 누렸을 뿐인데, 뭔가 대단한 것을 해낸 사람들처럼 뿌듯함도 안고 돌아왔다.

2시간 반 이상을 걸으며 폭염에 땀을 흘렸지만 그것마저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고, 코스를 다 돌고 들어간 화장실의 시원함은 입장료 9천 원이 아깝지 않았다.


우린 주차장 근처에 있던 족욕탕 수준의 물에 발을 담가 물놀이를 대신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돌아와 조카가 해준 저녁을 먹고, 수요예배를 드리러 갔다.




언니와의 나들이에서 난 언니가 불평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너무 좋다고, 오길 잘했다고, 기대 이상이라고. 그 말들은 우리 귀에 맴돌고 정말 그렇게 만든다.


그동안 어두운 얼굴이었던 날 바라보면서 언니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저 기도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대신 맛있는 밥을 먹이겠다고 처음으로 보리굴비에 도전했다. 난 그 덕분에 보리굴비를 왜 녹차물에 말아먹는지 검색했다. 녹차는 보리굴비의 비린내를 없애고 풍미를 더하고 영양을 더한다. 언니의 사랑은 보리굴비를 적신 녹차 같다. 보리굴비의 가치를 높이는 녹차처럼 나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든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효율적인 것이 좋은 것도 아니다. 못해줘서 너무 안타까울 필요도 없다. 아빠의 배롱나무처럼 안 한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물놀이 준비한 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오면서 난 언니에게 당당히 말했다. "구명조끼 등 사용했음 정리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당당함을 한번 더 사용해도 된다면 난 이 말을 하고 싶다. "즉흥적인 여행을 하는 건 예기치 못한 삶을 대비하는 연습이야." ^^


외로운 듯 당당히 피어있는 한 송이 꽃을 발견하면 언니는 날 부른다. 네가 좋아하는 꽃이라고.

멋진 구름을 발견하면 난 언니를 부른다. 언니가 좋아하는 구름이라고.

이적의 노래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린 매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우린 그렇게 서로를 위해 뭔가를 발견하고 나누고 의미를 부여하며, 함께 하는 순간을 감사와 행복으로 만들어 간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들의 의미를 쌓아간다. 그래서 사진의 문구처럼 함께해서 참 좋다.


질책과 불평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해서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사랑이 그늘 되어 그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그늘을 경험하고 그늘을 드리우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렇게 폭염이 계속돼도 끄떡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수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