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넘어지시던 날에서 시작된, 뇌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기록
그동안 우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관과 그 고유 기능,
그리고 전자약의 연관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부터는 구체적인 질병을 중심으로
전자약이 줄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질병을 바라본다는 건,
환우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까닭입니다.
이번 글은,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며 쓰게 되었습니다.
암과 싸움을 시작하시기 전,
아빠는 유독 자주 넘어지셨습니다.
“머리는 멈추라고 소리치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가더라.”
피투성이가 된 얼굴과 무릎보다
제 마음에 깊이 남은 건,
자신의 몸이 처음 낯설게 느껴졌을 때 아빠가 느끼셨을 당혹감과 슬픔이었습니다.
아빠의 경우 걸음을 멈추지 못해 앞으로 쏠렸지만,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반대로 발이 바닥에 붙은 듯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얼어붙는다’는 표현은
이렇게 움직임이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고,
의지대로 제어되지 않는 모든 순간을 가리킵니다.
멈추지 못하는 순간도, 시작하지 못하는 순간도—
모두 리듬이 끊긴 몸의 이야기입니다.
나의 의지가, 나의 몸에 가닿지 못하는 순간.
생각과 움직임을 연결하는 투명한 실이 끊어지는 순간.
아빠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전신의 움직임이
서서히 얼어붙는 병, 파킨슨병을
아프도록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파킨슨병은 근육이나 뼈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 깊은 곳에서 우리 몸이라는 오케스트라의 핵심 선율을 연주하던 '연주자'가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근본 원인
뇌의 흑질–선조체 경로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파괴됩니다.
움직임의 윤활유이자, 우리 몸의 연주자였던 도파민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뇌 회로의 불균형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운동 조절 회로가 균형을 잃습니다.
그 결과, 움직임을 억누르는 느린 리듬이 지나치게 증폭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주요 증상
움직임이 느려지고(서동), 근육이 뻣뻣해지며(경직), 가만히 있어도 손이 떨리고, 자세가 불안정해지는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질환의 진행과 치료의 한계
병이 진행됨에 따라 신체와 정신의 리듬은 점차 무너집니다.
효과적인 약물조차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늘어나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복합적인 질병에 맞서기 위해, 의학과 과학은 세 갈래의 길을 함께 걷습니다.
1. 약물치료
레보도파, 도파민 작용제, MAO-B/COMT 억제제 등으로 부족한 도파민성 신호를 보강합니다.
2. 재활치료
물리·언어·음악치료를 통해 균형과 보행을 훈련하고, 낙상을 예방합니다.
3. 수술·시술
뇌심부자극술(DBS), 집속초음파(FUS), 장관(LCIG)/피하(아포모르핀) 펌프 등으로 신경회로 활동을 직접 조절합니다.
전자약의 속삭임: 새로운 박동을 불어넣다
약물이 전신에 전하는 ‘방송’이라면, 전자약은 필요한 곳에만 전하는 ‘속삭임’입니다.
뇌심부자극술(DBS): 뇌에 전극을 이식해 비정상적인 뇌파를 조절하는 기술로, 현재 약물로 조절이 힘든 환자에게 활발히 사용되는 표준 치료법입니다.
웨어러블 센서: 스마트 장치로 진전·보행·동결을 감지해, 의사가 약물이나 자극을 최적화하도록 돕습니다. 상용화되어 임상 현장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습니다.
보행 큐잉 장치: 레이저/메트로놈/진동 등 외부 단서로 뇌가 잊은 걸음의 리듬을 되찾게 돕는 보조기구입니다.
기능적 전기자극(FES): 근육에 자극을 주어 재활·보행을 보조하는 기술로, 파킨슨병 적용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전자약은 병을 없애는 '완치의 열쇠'는 아니지만
멈춰가던 몸의 연주를 다시 이어주는 소중한 기술입니다.
머리의 명령이 발끝까지 닿는 순간,
떨리는 손으로 가족의 이름을 다시 쓰고,
함께 산책하는 기쁨이 가능해집니다.
이 글을 쓰며, 희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더불어, 상실 후에야 알게 되는 일상의 귀함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훗날 우리는 지금의 순간을 간절히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때로 삶의 걸음에 눈물이 나더라도,
지금 여기를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움직임이 얼어붙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많은 환자들이 온몸 깊숙이 스며드는 만성 통증과 싸우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과학과,
전자약이 그 불씨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는지를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