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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둥새 Feb 03. 2020

독일에는 몇 명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을까?

독일의 한국인 #1


"마누라 마누라, MTK가 뭐의 약자인지 알아?"


하루는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한다.


"음, K는 Kreis*의 약자일 거고... M은 Main, T는 Taunus 아니었나?"

"땡. 그건 옛날 버전이고, 요즘엔 MTK가 Middle-East, Turkey, Korea를 뜻한대. 독일 직원들이 그러더라. ㅋㅋㅋ"

"ㅋㅋㅋ 맞네 맞아. 여기 외국인들이 많이 살긴 하지. 한국사람들도."


*Kreis(크라이스) - 독일 행정구역 단위 중 하나. 우리나라로 치면 군(郡)이나 구(區) 정도로 볼 수 있다.


낄낄거리며 대화를 주고받다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이 지역에는 오리지널(?) 게르만인보다 다른 민족들이 더 많이 목격되는 듯하다. 


이미 2016년에 독일 인구 8천2백만 명 중 20%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통계가 나온 바 있으니 터키, 중동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프랑크푸르트는 이민 배경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의 비율이 51.2%로 독일 사람들이 '레어템'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기서 왜 이렇게 많이 보이는 걸까? 독일엔 과연 몇 명의 한국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독일은 16개의 연방주(聯邦州, Bundesland 분데스란트)로 나뉜다. 


그중 독일의 중서부이자 유럽 중앙부에 위치한 헤센(Hessen) 주는 그 유명한 경제도시, 프랑크푸르트*가 소재한 곳이다. 훌륭한 지리적 조건에 힘입어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은 유럽 항공 화물 1위, 여객 3위 성적을 자랑한다. 


*정확한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마인강의 프랑크푸르트라는 얘기다. 폴란드 국경 근처에 프랑크푸르트 오데르(Oder), 즉 오데르강의 프랑크푸르트라는 동일한 명칭의 도시가 또 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럽 중앙은행, 독일 중앙은행, 독일 최대 증권시장도 있어 런던과 함께 유럽의 금융 중심지 역할도 하고 있었다. 브렉시트 덕분(?)에 이제 명실상부한 금융 도시로 우뚝서게 됐다.


이밖에도 명불허전 자동차/부품/타이어 관련 기업들을 비롯해 전자기기 등 제조업, 마케팅/광고, 서비스/판매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체들이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헤센주에만 약 13,000개의 글로벌 기업이 진출해있고,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기업들도 700여개나 된다. 




주(Land)는 또 현(縣)/군(郡)/구(區) 등으로 나뉘어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MTK는 헤센주의 26개 군(郡, Kreis) 중 하나다.


지리적 이점(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차로 15분, 중앙역에서도 약 15분이면 갈 수 있다!) 및 시내보다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이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다. 삼성, LG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독일법인/지사도 여기에 사무실이 있다. (보통 '프랑크푸르트 지사'라고 해도 실제 프푸 시내에 사무실이 있는 기업은 몇 개 안된다)


실은 MTK는 미들이스트, 터키, 코리아가 아닌, Main-Taunus-Kreis의 약자다. 앞으로는 마인강(Main)을 내려다보고, 뒤로는 타우누스산(Taunus)을 등진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태의 명당이다. 


그래서 그런지 MTK에 속한 슈발바흐(Schwalbach), 에쉬본(Eschoborn), 밧조덴(Bad Soden), 리더박(Liederbach), 호프 하임(Hofheim). 그리고 인근한 또 다른 지역구인 호흐타우누스크라이스(HG; Hochtaunuskreis)의 밧홈북(Bad Homburg), 오버우어젤(Oberursel), 쾨닉슈타인(königstein), 크론벡(Kronberg) 등은 독일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전통적으로 살기 좋은 동네들이다.


일터와의 거리, 주요 생활시설과의 접근성과 편의성, 학군(김나지움 및 국제학교), 주거 환경, 수질 등 선호되는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한국 기업 뿐만 아니라 한인마트, 한인식당, 한인병원 등 한국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 인프라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갖추어져 있다. 한국사람들이 이 곳에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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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에 살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독일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는 총 44,864명이다.(외교부 재외동포현황 2019)


*재외동포는 1)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2)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 거주·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현재 한국인이거나, 한때 한국인이었거나, 한국인의 혈통을 가진 자들이 모두 포함된다는 것. 
따라서 외국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외교부 통계상으로는 모두 '재외동포'로 지칭된다. 프랑크푸르트 주재원 가족들은 독일 동포, 프랑스에 입양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사람은 프랑스 동포, 하버드에 유학 중인 엄친딸은 미국 동포, 사할린의 고려인들은 러시아 동포. 물론 시민권자를 제외한 재외동포는 '재외국민'으로 구분하고, 이를 또 영주권자/일반체류자/유학생으로 구분한다.


미국(255만 명), 중국(246만 명), 일본(82만 명)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이나 러시아(17만 명)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동포수를 자랑한다. 


바로 뒤를 이어 영국에 4만 명가량의 동포들이 살고 있는데, 2015년까지는 영국 동포들이 월등히 많았다가 2017년부터 그 수를 독일이 역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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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한국인 / 외교부 재외동포현황 2019





헤센주에는 가장 많은 독일 동포들이 살고 있다. 


독일동포 전체의 1/4 수준인 11,009명이다. 


이 중 시민권자를 제외한 '재외국민'은 8,685명이다. 재외국민 중에서도 '일반 체류자'는 5,675명으로 영주권자(2,335명)와 유학생(675명)의 수를 훌쩍 뛰어넘는다. 


외교부 재외동포현황 2019, 2017에서 발췌 (발편집 죄송ㅠ)



내가 처음에 독일에 올 당시인 2017년(4,729명) 보다도 20%나 더 늘었다. 2년 남짓한 기간에 1천 명이나 더 증가한 것이다. 외교부는 이처럼 높은 증가율에 대해 투자/취업 이민자 및 자녀 유학 동거인의 증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16년, L전자의 독일 법인이 뒤셀도르프에서부터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한 것도 증가세에 한몫한 것 같다. S그룹 전체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파견 나온 주재원만 약 80명 정도라고 하니 L그룹, H/K차 그룹 등도 비슷한 규모라고 가정하고, 그 가족들까지 감안하면 1천 명 이상의 주재원 및 가족들이 이 지역에 거주 중일 것으로 추측된다.


현채인(현지 기업에 채용된 한국인들)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유학생 신분이었다가 현지 기업에 자리 잡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예 한국에서부터 기술 이민을 오거나 사업을 시작하러 오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이 살기에 그만큼 매력적인 곳인가도 싶은데, 워라벨만 따진다면 딱 이만한 곳도 없긴 하다.





한국인들의 증가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당장 큰 아이가 다니는 국제학교의 한국 아이들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2년 전, 한 반에 3~4명 정도 있던 한국 학생들이 지금은 5~6명 정도다(한 반 정원은 약 22명이니 약 1/4 을 차지한다). 한 학년에는 총 25명정도가 있다. 학년마다 한국 학생 수는 다르지만 단순 계산 시 학교 전체(1~12학년)에 한국 학생이 약 600명 정도 된다는 말이다.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덜 인기 있는) 다른 학교를 다니며 대기하다가 다시 전학을 오는 경우도 많다. 다른 국제 학교 상황도 별반 다르진 않다.


생활 반경 안에 있는 한국 마트는 2017년 당시 약 3개 정도에 불과했는데 그 사이에 5개나 더 생겼다. 규모도 커지고 상품들도 다양해졌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비록 영세한 수준이지만 국과 반찬을 전문으로 파는 반찬집들도 몇 군데 더 생겼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덩달아 늘어난 것이다. 처음 반찬집이 생겼을 때는 이게 장사가 되겠나.. 싶었는데, 역시 남 걱정은 하는 게 아니었다. 


신규 오픈하는 한국 식당들도 많다. 

설렁탕, 갈비탕, 감자탕, 비빔밥, 제육볶음 등 사시사철 인기 있는 메뉴는 물론, 미리 예약만 한다면 한국식 광어회와 홍어삼합 등 별미도 즐길 수 있다. 우리 시어머니가 극찬하신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판매하는 한국식 중국집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한식 뷔페도 있고 치킨집도 있다. 


한국 카페도 세 군데나 새로 생겼다. 시큼털털한 독일빵이 질릴 때쯤 한 번씩 방문해 단팥빵과 꽈배기로 미각을 살려준다. 


말해 뭐하랴, 한국 학원도 있다. (한국 학부모가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데 학원 하나 없으면 말이 안되는 소리다.) 중고등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종합 학원들은 물론, 초등학생을 위한 눈높이 공부방, 논술학원도 있다. 


한국인 과외선생님들도 많은데, 인기 있는 과목(ex. 수학) 과외 선생님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일 년 넘게 대기해야 수업을 받을 수 있다. 기존 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경우에만 자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아는/친한 엄마'에게 알음 알음 소개를 받아야 한다. 좋은 건 남 주기 아까운 법이거늘.


영어나 독일어 대신에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 유치원도 있다. 생각보다 대기 기간이 긴 독일 현지 유치원이나 비싼 학비의 영어유치원이 부담스러운 학부모들을 위한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미술,음악, 체육 등 예체능 분야는 유학생 출신 선생님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공급이 많으니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고퀄리티의 레슨을 받을 수 있다.


아프면 한국인 의사 선생님이 있는 병원에 가면 된다. 독일인 의사만 있는 병원에서도 한국인 간호사나 코디를 채용해 통역을 돕는 곳이 종종 있다. 한국인 약사가 상주하는 약국도 물론, 있다. 자동차가 아프면 한인 카센터로 간다. 


한인 미용실도 서너군데 있다.(우리 동네에 있는 한인 미용실은 최순실 단골로도 유명하다!) 남자머리 커트 비용이 22유로 정도니 우리나라 시내/강남 미용실과 비교하면 그다지 비싼편도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초기 거주자를 위한 길라잡이 앱. 웬만한 업체 연락처는 여기에 다 있다



외국에 나가면 중국인은 식당을 차리고, 유태인은 장사를 하고, 한국인은 교회를 세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낯설고 팍팍한 외국생활에 마음의 쉼터도 되고 친목도 쌓으면서 정보도 교환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외국에 나오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부러 교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프랑크푸르트 근방에 10곳이 훌쩍 넘는 한인 교회 목록이 뜨는데, 이 중 MTK지역에 있는 H교회는 독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신도수가 1천 명에 육박한다. 헤센주에 거주하는 한인 10명 중 1명은 이 교회 신도라는 말이다. 이 교회는 2018년에 늘어나는 신도를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성전'을 지어 이전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아지니 이래저래 살기는 더 편해졌다.


미국, 중국, 일본 등지의 코리아타운과 비교하기에는 점조직 수준에 불과하지만, 독일어를 배우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고프고 정이 고픈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리 가장 많은 동포들이 살고 있다 한들,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 수 있는 작은 동네이므로 몸(말)을 사리는 경우가 많다. 지역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가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떠나야 할 사람들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이별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안전지대를 확보해 놓는 것이랄까? (꼭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이별에 마음이 아픈 건 매한가지다.) 돌아갈 날을 받아놓은 나부터도 이 곳에서 동고동락했던 몇 안 되는 지인들을 먼저 떠나보낼 때마다 입는 데미지가 결코 작지 않다. 


타향살이가 원래 다 그런 거라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설사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닐 거라는 위로도 스스로 해본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중



사람들을 떠나보낸다는 건, 또 떠나와야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왔다가 가는 일이기에.




* 커버 사진 출처 : [올림픽] 독일 국기와 태극기/ 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참고 글>


재외동포현황 2019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 2017 / 외교부

국가/지역정보(독일) / 코트라

독일의 군 목록 / 위키피디아

KOTRA Frankfurt, 독일 진출기업 경영지원 세미나 열려 / 교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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