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직은 다니던 조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사를 떠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리더가 어떠하냐가 조직이나 개인의 성과와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이 구글 산소 프로젝트의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더 나은 리더가 되기 위해 리더는 어떻게 스스로 성장을 일궈나갈 수 있을까? 임원의 70%가 자신의 역량을 상위 25%로 본다는 맨프레드 켓드브리 교수의 연구가 있다. 유능한 리더일수록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크다. 리더의 성장은 자기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인식이 리더의 효과성과 연관 있음이 많은 연구에서 증명되면서 리더 개발에 다면평가의 활용이 부쩍 늘고 있다. 어렵게 진행된 다면평가, 그다음이 중요하다. 어떻게 옥석을 가려 변화와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것인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 중, 과연 누가 나를 더 잘 알까? 30여만 건을 연구한 한 메타분석에서 자기 평가와 타인 평가의 상관관계가 유의미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특히 피드백을 얻기 어려운 역량에 대해서는 그 연관성이 더욱 낮다. 유정식저 <당신들은 늘 착각 속에 산다>에 실린 내용으로, 사이 민 바지르의 실험에 의하면 잘 아는 영역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자존감, 불안, 신경증과 같은 개인 내면과 관련된 영역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창의력과 지적 능력 같은 알아차리기 어려워도 측정하기 쉬운 특성은 타인이 더 정확했으며, 겉으로 드러나고 알아차리기 쉬운 리더십, 스피치, 통솔력 같은 영역은 자신이나 타인의 평가 정확도가 비슷했다고 한다. 다면평가의 대상이 되는 항목이 대부분 리더십 역량이나 인지적 능력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다면평가에 나타난 타인 점수는 눈 여겨볼 가치가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떠한가? 리더의 시각과 조직원의 시각을 비교하는 드문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받으면 우선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누구야” 하며 범인 찾기에 나선다. 누구나 자신이 최선이라 믿고 있는 것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고 나면, 충격은 분노로, 부정으로, 회피로, 결국 상처(SARAH, Shock-Anger-Rejection-Avoid-Hurt)로 남고 학습은 사라지기 쉽다. 이런 상처가 두려워 아예 자기 점수를 낮게 주는 이도 있다. 자기 착각이 큰 사람이라는 평보다 리더십 없는 솔직한 사람이 더 낫다는 심산에서 전략적 겸손을 선택한 것이다.
어쨌거나 불편한 감정과 조직의 피로감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이왕에 시행된 다면평가이니 많이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데이터를 읽어보자. 우선 최고치와 최저치 항목을 훑어보고, 역량군 별로 비교하고, 전년도와 올해를 비교하고, 평균과 더불어 표준편차도 살펴보지만 역시 제일 눈여겨봐야 할 것은 나의 관점과 타인 관점의 갭이다. 주관과 객관의 차이는 어디서 올까? 역량의 발현 과정에서 오는 갭과 인간의 인지적 한계로 인한 갭, 두 가지로 살펴보자.
각자 역량에 대한 눈높이와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리더 자신은 약간의 재량권을 주며 던진 업무 지시를 위임이라 여기고 바쁜 시기에 올라온 휴가 신청 승인을 존중이라 생각하는 순간, 구성원은 위임과 존중의 부족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행동이 미흡했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다. 결정적 행동의 부재 또는 절대 량의 부족으로 구성원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이다. 즉 역량은 있으나 발휘되는 과정에서 비효과적이었던 것이다. 또는 리더는 자신의 암묵적 지식이나 내재된 스킬 등 잠재된 영역까지를 역량으로 보는 반면, 구성원은 행동으로 드러난 발현 차원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역량의 주체냐 객체냐에 따라 역량의 기준이 다르게 작동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구글 리워크 자료에 의하면, 초당 주어지는 정보 1100만 비트 중에 우리는 40비트 만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99.999996%의 데이터가 우리의 의식에 잡히지 않은 채 사라진다고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대로 보는 선택적 지각, 심지어 눈뜨고도 보이지 않는 무주의 맹시 (Inattentional blindness) 현상이 일어난다. 리더의 특정 역량에 대해 구성원이 기대나 관심이 없다면 행동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조직 문화 조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리더들은 대체로 구성원보다 더 긍정적으로 조직문화를 보고 있다고 한다. 액센추어 2020년 조사 자료에 의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혁신할 수 있다’에 대해 직원은 36%, 리더들은 68%가, 유연한 근무환경에 대해서 직원은 29%, 리더들은 76%가 그렇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각자 입장이 다르고 가용한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갭이 생길 수 있다. 리더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배경, 의도, 취지 등 맥락 정보를 다 갖고 있지만, 구성원은 리더의 겉으로 드러난 최종 표현을 볼뿐이다. 내 행동은 풍부한 정보 속에서 긍정적 잣대로 이해하고 상대는 적은 정보 속에서 인색하게 이해한다.
이렇듯 우리의 인지 과정은 “나”와 관련될 때와 “타인”에 대한 것일 때 다르게 작동한다. 행위가 내 소유일 때 즉 내가 행위 주체자일 때는 그 행동의 가치를 높이는 정보에 집중하게 된다. 이른바 소유 효과 (Endowment effect )가 발생하는데,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냐 아니냐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를 탐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10%를 크게 기억하는 리더, 리더에 대해서는 불만족스러운 10%를 크게 기억하는 구성원이 있게 마련이다. 자신은 적어도 평균 이상은 되지 않을까 하는 느슨한 자기 인식과 자기 고양 편향 (Self- enhancement bias)이 더해진다면 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포착해야 할 신호는 이것만이 아니다. 평균은 웬만한데 평가자 간 편차가 큰지, 역량 점수는 높으나 리더 만족도나 NPS가 낮은지, 역량 간 균형이 맞는지 등등 한 둘의 수치에 매이지 말고 종합적으로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측정과 체계적 관리를 위해 역량이 하위 단위로 쪼개져 있지만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평상시 느낌을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구성원의 몰입을 결정하는 기본 심리적 욕구의 충족 여부를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다면평가 결과는 조직 전반에 대한 더 큰 진실로 들어가는 문이다. 한 때는 효과적이었던 행동이 더 이상 유효기간이 지났다거나, 겉으로는 잘 돌아가는 듯하나 구성원들의 깊은 내면에서는 심리적 불안전을 느끼고 있거나, 현재 조직적 맥락에서 요구되는 것이 방치되고 있는 등 조직 픙토에 관한 중요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면평가 결과를 너무 리더 개인에 대한 피드백으로만 한정하여 이해하지 말 것이다.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때 특히 각종 방어가 나타난다. 켓드브리 교수는, 계산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자기 식의 다른 합산 법을 제시하거나 (수학적 방어), 안 좋은 시기에 평가가 실시되었다고 시기 탓을 하거나 (배드 타이밍 방어), 평가자들이 바빠서 대충 무성의하게 답변한 것으로 보거나 (게으름 방어), 한두 명의 악질적인 직원이 점수를 깎아먹었다고 보는 희생양 방어 등이 있다고 한다.
리더는 담당 조직의 A에서 Z를 책임져야 하지만, 한 조직의 모든 문제를 리더의 개인적 역량 개발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리더에게 슈퍼맨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 나은 수행이 되도록 리더가 노력하고 개발해야 하는 부분과, 가용 자원을 동원해 환경 조성해서 해결해가는 부분이 있다. 다면평가의 결과를 리더 개인에 대한 피드백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팀과 개인이 더 나은 수행과 성장을 위해 개별적으로 또는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현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 생각하는 개인 또는 조직의 성장 마인드셋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팀이 가야 할 방향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가고 있는가? 상시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열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가? 피드백으로부터 새로운 학습 루프가 시작되는 진정한 학습조직이 되기 위해 이제 대화를 시작할 시점이다.
본 아티클은 월간 HR Insight 2020년 5월호에 기고한 "다면평가, 인기투표인가 성장의 발판인가" (인재육성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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