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피치 못할 상황으로 학교까지 결석하고 싶었던 민호는 마땅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등교를 한다. 그런데 민호의 책상 위에 아직 깍지 않은 빨간색 연필 한 자루가 놓여있는 게 아닌가. 반 친구에게 주인을 물어보지만 임자가 없다. 무심히 책상 서랍에 빨간 연필을 던져둔 채 수업 시간을 기다렸다. 어제 일로 결석할 것이라 생각했던 유리 천사의 주인인 수아를 보니 민호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아뿔싸! 책을 꺼내려보니 필통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칼을 빌려 책상 서랍에 던져둔 빨간 연필을 꺼내어 깎는다. 담임 선생님이 검사를 마친 일기장을 보니 여지없이 그저 그렇거나 못했다는 표시인 파란 도장이 찍혀 있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 꺼내 놓으라고 했다. 아직 유리 천사를 가져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다. 민호와 반 친구들 모두 '도둑질이 왜 나쁜가?'에 관해 글짓기를 시작했다. 민호는 잘하지도 못하는 글짓기까지 해야 하니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민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빨간 연필을 종이로 가져갔다. 그때, 빨간 연필이 신들린 무당처럼 글을 써내려 가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종례 시간에 글짓기한 것을 돌려받았을 때 민호의 종이에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고, 처음으로 글짓기 발표까지 하게 되었다. 민호가 반에서 글짓기 슈퍼스타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