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열두발자국 01
마시멜로우 챌린지
서로 처음 보는 사람 네 명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그들에게는 스무 가닥의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 그리고 마시멜로우 한 개가 주어진다.
그들은 이 재료들을 이용해 탑을 쌓아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18분.
탑의 모양은 어떻게 만들어져도 상관없다.
이 탑이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을 때 가장 높은 탑을 쌓은 팀이 승리한다.
이 게임을 통해 우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미국 경영대학원 학생들이나 변호사처럼 소위 가방 끈이 길다고 하는 명석한 사람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일단 가방 끈이 긴 명석한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세션이 시작되면, 그들은 먼저 자기소개를 한 후에 어떻게 이 과제를 수행할지 계획을 짠다. "우리 이렇게 해볼까요?",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되지", "이렇게 하면 더 잘될 거 같아요" 등등 다양한 가설과 나름의 원리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운다. 계획이 확정되면 거기에 맞춰 탑을 쌓아간다. 17분 50초까지 열심히 계획에 맞춰 탑을 쌓다가 마지막에 탑 위에 마시멜로우를 올려놓으며 '짜잔!'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하지만 유치원생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18분을 보낸다. 우선 유치원생들은 서로 인사를 하며 명함을 주고받지 않는다.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바로 말을 놓는다.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일단 재료를 가지고 그냥 탑을 만들어 본다. 그래서 성공하면 다음에 좀 더 높은 탑을 쌓는다. 다리를 붙이고 가지를 뻗고 안테나를 올리는 방식으로 탑의 높이를 올린다. 그래서 18분 동안 적게는 세 개, 많게는 여섯 개의 탑을 완성한다.
우리 모두는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을 가지고 마시멜로우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탑을 쌓아본 적이 없다. 처음 시도하는 일에 좋은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이 계획을 세워 봤자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계획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면 다시 회복할 기회도 사라진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이다.
김어준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 하는 것 중에 제일 멍청한 짓이 계획을 세우는 거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계획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이 있다면 그는 아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인간을 골탕 먹이는 재미로 살 것 같다"
1등 상금의 함정
마시멜로우 챌린지를 할 때 10개의 팀을 만들고 가장 높은 탑을 쌓은 팀에게 1만 달러(약 1200만 원)의 상금을 준다고 해보자.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과는 과히 충격적이다. 성공하는 팀이 사라진다. 탑을 무사히 쌓은 팀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여러 번 실험을 해 보았지만 매번 결과는 유사했다. 이 경우에 유치원생이 탑을 10센티미터 높이로만 쌓아도 상금을 받아갈 수 있는데, 아무도 성공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1등에게 우승상금을 걸 경우 2등이나 3등은 의미가 없어진다. 가장 높은 탑을 쌓기 위한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금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지고 조급해진다. 이것을 '터널 비전 tunnel vision' 현상이라 부른다. 그래서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온건히 서 있을 수 있는 때'라는 당연한 원칙을 무시하게 된다.
가정이든 대학이든 사회든 잘하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못하는 사람에겐 처벌을 내리는 현상이 많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생기면 사람들은 목표와 성취 그 자체를 위하여 달리지 않고 보상과 처벌에 따라 일을 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마시멜로우를 높이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1등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급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하고, 1등을 하기 위해 무리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