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열두발자국 04
새해 결심은 얼마나 지켜질까?
인생을 새로고침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돌아보면 후회뿐인 인생,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망은 당연해 보인다. 매년 1월 1일에 우리는 이런 다양한 새로고침의 욕망들을 담아 '새해 결심'을 한다, 그리고 설날에 한 번 더 한다. '아, 그동안 못 했구나' 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곤 한다.
'새해 결심은 왜 그토록 지켜지지 못하는가'를 연구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약 77%의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1주일 정도 지킨다. 약 19%의 사람만이 새해 결심을 나름대로 지키면서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새해 결심 중 많은 부분이 '남자 친구 만들기' 같은 유의 결심이 있으므로, 냉정하게 본다면 약 10%의 사람들만이 새해 결심을 지키게 된다.
새해 결심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 뇌가 그렇게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새로고침 하고 싶으면 결국엔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하고, 그것의 중추인 뇌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뇌의 두 가지 활동 : 목표지향 vs 습관
우리가 행동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길 때, 뇌의 두 영역이 특히 활발히 작동한다. 하나는 '목표지향 영역(goal-directed system)'이다. 내가 지금 이것을 해서 뭘 얻을 수 있는지 그 목표를 생각한 다음에 가장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른바 '습관 뇌 영역(habit system)'이다. 일상적인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할 때에는 목표의 결과 값을 높이기보다는 인지적인 노력을 줄이려 애쓰게 된다. 내가 이것을 선택할 때 어느 정도의 보상이 오는지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고민은 하지 않고 이미 경험했던 선택을 하면서 선택의 고민을 줄이게 된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택일수록, 처음 해보는 과제일수록 '목표지향 영역'이 활발히 활동한다. 그래서 뭔가를 선택을 하고, 그것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자꾸 반복되면, 이데 더 이상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제부터는 선택하는 데 에너지를 별로 들이고 싶지 않게 된다. 그래서 '습관 뇌 영역'은 아주 최소한의 노력으로 예측 가능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습관이라는 행동 패턴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가볍게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사람들은 중국집에서 음식을 고를 때마다 뇌를 쓰고 싶어 하지 않으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장 빠르고 편한 경로를 찾기 위해 매번 고민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습관의 힘'이다. 우리는 선택의 가능성이 매우 많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선택하는 개수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우리 뇌는 모험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일상적인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진폭을 늘려라
에너지를 적게 쓰는 방식으로 뇌가 활동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청소하고, 가구를 옮기고,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생활할 수 있는 이유는 에너지를 쓰면서 '행복: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옷장을 열어보라. 색상의 진폭이 어느 정도인가? 그다지 넓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다양한 색상을 입는다면 색에 대한 삶의 진폭이 넓은 경우이다. 패션에 특별한 관심이 있고, 옷을 입으면서 각별한 보상(행복, 쾌감)을 얻고, 그래서 습관보다는 목표지향 시스템이 계속 작동해서 옷을 고르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색 선택에 있어서 너무 진폭이 좁구나', '만나는 사람의 진폭이 너무 좁구나', '취미가 너무 뻔하구나'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예측가능하게 하고, 안전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 나와 경제적 여건이 다른 사람, 나와 미적 취향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점점 불편해한다.
새로고침을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해보면 나쁜 습관, 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나와 다른 분야에 있는,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불편함을 견디면서 ㅅ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살지 않으면, 내 삶에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절박함이 새로고침을 이끈다
새로고침을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 내 삶에서 새해가 더 이상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단 1년의 삶만 주어진다면, 그 1년의 삶은 완전히 새로고침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주변에 새로고침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라.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다 살아난 사람이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등산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절박함은 대개 불행한 일이 생겨서 발생한다. 그런 불행한 경험이 없이 절박함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방법을 시도해 보시라.
후회, 인간의 고등한 능력
지금까지 뇌구조상 삶의 리셋이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우리는 인생을 리셋할 능력이 있다. 바로 '후회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망과 후회의 차이가 뭘까?
실망이란 내가 선택을 하기 전에 기대한 것에 비해 결과 값이 못 미칠 때 우리가 겪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은 실망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많은 동물들이 기대라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후회는 다르다. 내가 A를 선택할 수도 있고 B를 선택할 수도 있을 때, A를 선택한 결과를 얻은 상황에서 '내가 만약 B를 선택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한다. 그래서 B를 선택했을 때 얻게 될 예상 결과와 실제 선택한 A를 통해 얻게 된 결과물을 비교해서 자기 선택의 겨과물이 더 작으면, 우리는 '후회'라는 것을 하게 된다.
후회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선택했을 때 벌어질 일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주 고등한 능력이다. 오랫동안 '후회'라는 감정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다고 알려져 왔으나, 몇 해전에 '원숭이도 후회를 한다'라는 논문이 나왔다. 여전히 대부분의 동물이 실망은 하지만 후회는 하지 못한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건, '나는 내 뇌의 전두엽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표현이다. 자기가 선택한 것 외의 다른 선택지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겠다는 건 어리석은 태도이다. 인간은 이 시뮬레이션 능력을 통해서 다음에 유사한 선택 상황이 왔을 때 더 나은 결정을 하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후회의 기능이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후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성찰하며 점점 후회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적절한 태도이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는 태도는 상당히 부적절한 것이다.
후회라는 기능을 통해 절박함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삶의 새로고침을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