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애초에 기대도 없었으니, 그가 장관을 해서 뭐 잘 하면 좋고, 못 해도 실망할 게 없었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모펀드 10몇 억 투기했다는 것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억지스러움 뿐이었다. (그건 정말 놀라웠다.) 임명을 지지할 순 있어도, 사모펀드까지 옹호한다는 건 그냥 그들의 진보가 내가 알던 진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는 방증이다.
나는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조국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술에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판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청와대 자신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리석게도 이 임명안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버렸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기 계급의 정치, 자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어떤 사안에 대해 사고할 때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 근거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김어준이나 유시민의 말을 듣고 입장을 정하고,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정치인이 유리하냐 아니냐로만 사안을 판단해 버린다. 사상 없는 여론 난투극의 시대다.
조국편이냐 아니냐, 문파냐 아니냐, 황교안팬이냐 아니냐, 박근혜지지자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양분되는 정치적 입장은,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민주주의라는 체제에 큰 기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오늘날 이데올로기가 이런 식으로 양분되는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상태에 빠져있는지 증명한다.
여러 모순들에 대해 두루 고민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조국이 임명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뼈아프게 결론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사유했느냐이다. 예컨대, 내가 아는 한 페친은 조국을 둘러싼 여러 모순들, 학벌사회에서 다수 청년들이 느낄 박탈감, 사모펀드 투기의 이중성...이런 사실들에 대해 인정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검찰공화국'으로 전락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는 검찰 놈들을 가만 내버려둬선 안 되기 때문에 조국이 임명되는 게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그 정도의 사유와 번민을 거쳤다면, 그 자체로 입장으로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페친처럼 '어떻게'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만 묻고 반복적으로 외칠 뿐이고, 결론들에 대해 편을 나누고는, 제각각 누군가의 반론에 대해 아무렇게나 선언해버리고 욕지거리를 할 뿐이다.
당연히 토론은 불가능하며, 사유란 것도 정지해버린다. 이 난투극에 사상이 들어올 틈은 없다. "사상의 분단"인 셈이다. 이런 식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세상이 경멸스럽다. 특히, '386'의 대표적 이론가라든지, 정치인, 혹은 운동가로 분류되던 이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논거로 조국을 비호하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우습다. 그들의 특징은 위악과 위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조국을 둘러싼 논란 중 여러 합리적 비판들을 인정하면서도, 형세와 싸움의 구도, 검찰의 역겨움에 대해 논한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런 형세를 볼 시야도 없다. 억지로 옹호하려고 애쓸 뿐이다.
물론 반대편의 조선일보나 자한당류의 역겨움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를 상실한 조국-지지-인터넷행동주의자들의 검색어 폭격과 조선일보류의 공격들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이번 사안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검색어 폭격에 대한 10~20대의 전반적인 생각은 "대체 왜 저러는거야"인데, 심지어 저 행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행동에 대해 설명할 차분함도 없이 그냥 행동하고, 비판하면 자한당편이라고 욕을 한다. 그들 눈에 이 세상엔 자한당과 자신들, 기레기와 자신들이라는 구도 밖에 없는 것이다.)
절망적이다. 사유의 행로가 저토록 가파르게 추락할 수도 있구나, 싶다. 그래서 다 포기했고, 그냥 슬픈 마음으로 이 사회가 얼마나 더 망가지려고 하는지 지켜보고 기록하려고 한다.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정치 좀비가 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책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