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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 lim Jun 24. 2024

산후조리원에 안 간 이유

남편과 아빠의 입장에서


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아빠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었다.

그중 가장 먼저 했던 것 중 하나는 산후조리원 예약이었다. 임신 7주에 예약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예정일 근처만 예약가능했다. 저출산이 맞나 싶었다. 며칠 간의 검색 끝에 맘에 드는 신축 프리미엄 산후조리원을 찾아내 예약했다. 가격은 구체적으로 기억 안 나지만, 뷰까지 좋은 방으로 해서 마사지 포함 4~500 정도였던 것 같고, 아마 2년쯤 지난 지금은 더 비싸졌을 것이다. 고생한 아내를 위해서 쓰는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 6개월쯤 되며 출산, 모유수유, 육아, 몬테소리 등을 공부하다 보니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고 직접 출산 후 첫 2주 동안 아기와 아내를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으로서 아무리 노력할 예정이어도 내 몸으로 낳는 출산 당사자는 아니기 때문에 처음엔 고민과 걱정이 됐고, 아내도 처음엔 망설였다. 주변에 산후조리원을 안 간 경우는 본 적도 없을뿐더러, 출산방법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막 출산한 아내, 그리고 탯줄도 안 뗀 아기를 과연 내가 케어할 수 있을까 겁도 났다. 


결국 아내를 설득해서 수수료도 60만 원 정도 내고 취소해 버렸고, 아기가 태어난 지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매우 옳은 선택이었다.

출산으로 약해진 아내와 3킬로 아기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빠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해냈고, 아내도 힘든 몸을 이끌고 아기와 계속 모자 동실하며 수유도 성공했다. 이 기간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행복하고 힘들었던 추억이 되었다.


산후조리원을 안 갈 이유, 예약취소했었던 이유를 다시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아기의 입장 :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엄마, 아빠의 목소리만 들으며 세상에 나올 날만 기다리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산후조리원에 가게 된다면 신생아실부터 쭉 분리되어 다른 아기들과 합숙을 하게 된다. 아무리 서툴러도 엄마는 엄마고 본능이 있다. 아기의 생후 2주는 부모에겐 그냥 2주이지만, 아기에겐 태어나서 평생이다. 


2. 산후조리원의 신빙성 : 산후조리원이 아무리 아기를 많이 보고 전문가라고 해도 1대 1도 아니고 자기 아기도 아니고 다대다 단체생활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무리 서툴러도 부모보다 더 아기한테 잘해줄 수는 없다. 민간에서 신생아 케어에 진짜 공부 많이 하시고 잘하는 분들도 있겠다만, 우리가 산후도우미 이모님과 함께 예약했던 모유전문가의 마사지 방문서비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효과도 없고 과학적이지 않았다. 


3. 모유수유 : 모유수유의 장점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당연한 사실인데, 분유회사의 마케팅들과 잘못된 상식(분유가 영양가 있다. 엄마 몸상해 등)으로 인해 요즘엔 모유수유 하는 경우를 보기가 정말 어렵다. 조리원에서는 모유수유를 도와줄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실패확률이 높아진다. 가장 큰 이유는 모자동실을 하기 어렵다. 모유수유의 핵심은 모자동실이다. 아기가 24시간 옆에 있고 배고플 때마다 물려야 호르몬에 의해 모유가 생성된다. 모자동실이 되는 곳도 있긴 하지만, 그럴 거면 조리원을 가는 이유가 별로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조리원 입장에서는 모유수유콜 하기도 귀찮고 배부르게 주면 한 번에 오래 자기 때문에 분유를 많이 먹인다. 주변의 조리원 경험들을 들어보면, '애가 잘 못 무네', '엄마 젖이 물젖이라 안 물리는 게 나아요' 등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기도 입만 대도 나오는 젖병이 모유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에 분유 수유를 점점 선호하게 된다. 새벽에 분유를 주면 모유는 아기 먹는 양의 100%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양이 점점 줄어든다. 엄마 입장에선 모유수유의 의지가 강했더라도 출산 후 아픈 몸을 이끌고 외로이 방안에 혼자 있는 상황에서, 어찌어찌 물려보지만, 아기는 잘 안물고 아프고 젖도 안 나오니 자신을 잃어가고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하게 될 수밖에 없다.


4. 베이비 시그널 : 아기의 작은 시그널들을 엄마가 계속 1대 1로 지켜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기는 점점 표현을 강하게 한다. 배고플 때 조용히 입을 뻐끔거릴 때 밥을 주지 않으니 결국 울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소변을 보거나 졸리거나 속이 답답하거나 똑같이 크게 울게 된다. 모자동실을 하게 되면 아기가 울기 전에 부모가 시그널을 읽고 많은 것들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아기 입장에서는 ‘세상이 낯설지만 내가 원하기만 해도 나의 불편함이 해소가 되는구나'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사람 사이의 일(말을 못 하는 아기와의)에는 당연히 눈치가 제일 중요하다.


5. 조리원 천국 : 위의 베이비 시그널들이 무시되면 결국 조리원 퇴소할 때쯤 아기는 거세게 우는 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2주 조리원 기간 동안 모든 아기가 무조건 우는 아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천국 나온 후에 육아가 힘들어질(지옥으로 느낄) 확률이 증가한다.


6. 산후우울증 : 출산 후 대부분이 겪는 산후우울증 시기에 가장 힘이 돼주어야 할 남편이 옆에 없다. 게다가 포유류(일부 조류 파충류도)는 태어난 새끼를 옆에 두고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 강제로 떨어뜨린 상태에선 본능적인 불안과 죄책감이 우울증을 가중시킨다.


7. 아빠의 육아참여 : 이제 육아모드로 바뀌고 막 출산한 엄마를 옆에서 지켜줘야 할 아빠는 출산휴가를 받았지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다. 아내, 아이, 아빠 모두 따로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하고 술을 먹거나 게임을 한다. 조리원을 안 가게 되면 아빠가 초반에 모든 걸 해야 하는데 그때 시작하면 훨씬 능숙해질 수 있고 책임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8. 각종 사건사고 : 조리원 사고를 검색하면 합의금 내고 기사화 안된 사고들은 빠졌다고 해도 정말 다양하고 속상한 사고들이 많다. 특히 낙상으로 인한 두개골 골절 사례들은 평생의 장애로 남을 수 있다. 


9. 베이비캠 : 많은 조리원은 하루에 몇 시간만 공개하는 곳이 많다. 24시간 캠을 켜놓는 있는 곳도 있다 곤하지만, 여러 부적절한 행동(분유 거치대로 수유하거나 쪽쪽이 강제 물림, 낙상이나 강하게 흔들기 등)을 할 때 캠에서 벗어나게 된다.


10. 전염병 : 여러 명의 직원들, 다른 산모와 가족들이 전철과 버스로 출퇴근하는 조리원은 당연히 전염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갓 태어난 약한 영아에게 외부 접촉은 위험하다. 


11. 산후풍 : 출산을 하게 되면 산후풍이 오기 때문에 조리원에 꼭 가야 된다고 한다. 애초에 산후풍은 실제로 존재하는 질병이 아니다. 병명이 없고 한방에서 쓰는 말이다. 출산 시 릴랙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대 근육 뼈 사이가 늘어나니 무거운 것을 들거나 비트는 운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근데 조리원을 안 가고 집에서 걸어 다니거나 수유를 하는 것과 비교해서 조리원에 있을 때 산후풍이라는 것이 더 예방되는 건 아닐 것이다. 


등등 많은 이유가 있지만 사실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내 주변에서 아직 조리원을 안 간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조리원을 가게 되는 이유는 


1. 양가 부모님이 반대하는 경우 : 우리 딸, 우리 며느리 고생했는데 조리원 좋은 곳 가라고 돈을 보내주시거나 무조건 가야 한다고 잔소리하면, 나이 불문 부모의 입김이 센 한국에선 거절하기 어렵다.


2. 남편이 출산휴가를 낼 수 없는 사정 : 아직도 공무원, 공기업이 아닌 대부분의 사기업의 경우 출산휴가를 쓰기 눈치 보인다. 출산율이 0.6명대를 찍어가는데 나라 전체가 아직도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네가 아기 낳았냐' 핀잔을 듣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3. 주변 눈치 : 주변에서 조리원을 안 갔을 때 후회했다거나 조리원이 너무 좋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조리원을 엄청 행복했다고 느끼게 되는데, 환경이 좋아서 일 수도 있지만, 아기를 낳은 부모들은 어디에 있어도 그 기간이 행복할 수밖에 없다. 조리원 안 갔어도 엄청 행복했다.


4. 그 밖에 첫째 아이가 집에 있어 여러 명을 돌보기 힘들거나 등 환경이 열악한 이유일 수도 있다.           


가게 되는 이유는 많고 고작 2주 조리원을 간다고 앞으로의 육아를 실패하거나 아기가 잘못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조리원을 무조건 안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환경에 의해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도 조금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면 갔을 것이고, 조리원을 갔어도 나보다 훨씬 쉽고 행복하게 육아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조리원 이후 해야 할 육아는 길고, 2주 먼저 시작한다고 엄청 힘든 것도 아니다. 조금 더 쉽고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는 확률을 올려보자는 의미로 임신 출산 예정인 친구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조리원 갈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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