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날이 좋아 더욱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아기와 꼭 동네 산책이라도 두 번씩 하게 된다.
어제도 집에만 있기 아쉬워 어딜 갈까 하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원에 가보기로 한다. 광교 호수공원이 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아 가보았는데, 너무 좋은 공원이어서 놀랐다!
호수공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체험행사도 하고, 근처에 수원시가 운영하는 공공시설도 있고, 갤러리아 백화점도 있었다. 이 호수를 바라보며 근처에 살면 참 아이 키우며 살기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와 놀러 오기 좋은 곳이었다. 이렇게 멋진 공원이 지척에 있다니,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기랑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이렇게 매일 어딜 놀러 갈까 고민했을까? 물론 열심히 밖에서 노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아기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놀러 다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광교 호수공원처럼 훌륭한 시민의 공간이 20분 거리에 있는데, 이렇게 가볼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저께는 또 다른 근처 공원인 분당 율동공원에 갔었다. 고즈넉한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아기와 함께 뒹굴뒹굴하며 따뜻한 햇볕을 한껏 누렸다.
내가 아이가 없었다면 아마 집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거나, 나가더라도 동네 영화관 정도 갔을 것 같다. 이렇게 시월의 좋은 날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바깥 공간을 향유하기보다는, 매년 오는 가을날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아기를 낳으니 삶을 더욱 풍요롭게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냥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던 많은 것들이 '구경거리', '가볼 만한 곳'이 된다. 집 근처에서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이 보이고, 아기와 함께 가니 별거 아닌 일상이 하루하루 재미있다. 세상에 나온 지 나보다 한참 얼마 안 된 아이는 세상이 새롭고 재미있다. 매일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일 것이다. 나도 그와 함께여서 매일이 새로워진다.
세상 사람들에 대한 공감의 폭도 넓어졌다. 나도 분명 무력한 아이였을 때가 있었지만,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가 비교적 지적 능력을 가지고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었던 청소년기부터다. 청소년과 청년의 삶만 기억 나기에 약자의 삶이 어떠한지 잘 모르고 지냈다.
이제는 임신하여 거동이 불편한 몸도 되어 보고, 항상 도움이 필요한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이 꽤나 고단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 누군가를 돌보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조금 더 공감하게 되었다.
몸집이 훨씬 작고 행동이 서툴며 집중력도 부족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도 한다. 어린이들도 어른에게 맞춰진 세계에 맞춰 사는 것이 참으로 피곤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모든 덕분에 약자를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 삶에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내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온전히 키워내야 하는 존재가 생겼다. 지금껏 좀 설렁설렁 살았더라도 이제 누군가의 삶이 온전히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어엿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고,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되어 아이를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다. 그래서 더 잘 살아야겠다,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항상 지켜보고, 내가 하는 것을 그대로 배우는 존재가 있으므로 더 바른 삶을 살게 된다. 내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나부터 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부터 누군가에게 나는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된다. 스스로 별것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있다. 혼자 있을 땐 그렇게 느낄지 몰라도, 적어도 아이에겐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유일무이한 존재다. 이 아이를 이렇게 큰 사랑으로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와 남편밖에 없는데,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뽐낼 수 있다.
물론 아직 나는 아이를 8개월 남짓 키워본 것이 전부다. 이게 지금까지 느낀 것이고, 앞으로 아이가 커갈수록 더 시간이 많이 들고 힘든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에겐 아이를 낳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부분이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