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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26. 2018

자원봉사, 아름다운 이름 건너에

직장다니기 바쁘고 두 아이 건사하며 아내 노릇 며느리노릇하느라 몸을 둘이나 셋으로 쪼개어 나눠 쓰고 싶을 만큼 처절하고 정신없던 시절이 미국생활의 시작과 함께 끝이 났다.


낯선 땅에서 낯선 것들 투성이인 험난한 삶이었지만 새로 알아가기만 하면 될 뿐, 내게 요구되어지는 것들은 이전보다 훨씬 줄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이 더이상 새롭지 않고 낯설었던 것들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공허해졌다.


남아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분출하고 활용하느라 우리 도시의 공립도서관은 물론, 재미교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최대 학력 고교중퇴인 미국성인들의 교육기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남의 나라에서 이리 열심히 봉사를 하는데 내 나라 돌아가면 내가 가진 작은 것이나마 불꽃처럼 불살라 나누어 보리라 처음으로 다짐했던 때다.


불꽃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핀란드로 이주한 나는 초기 정착에 필요한 적응기간이 지나면서 무언가 할 일이 없으려나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왕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니 돈을 벌면야 좋겠지만 직업교육도 받아야 했고 핀란드어 능력시험도 치루어야 했으니 손쉽게 자원봉사나 하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 내가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언어의 문제도 아니고 내가 외국인이어서도 아니고 이곳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 시스템때문에...


내가 선의로 봉사를 하려는 그 자리는 누군가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돈을 번 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 자리였다.


시립도서관 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은 자원봉사 신청에 관하여 묻는 나를 그네들 특유의 무표정하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의아한듯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자원봉사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자원봉사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우며 가치있는 일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나의 가치관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 때이다.


사진출처 한국일보 기사


신학기가 되면서 학부모들,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는 엄마들의 학교 봉사가 화제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직장일을 하면서도 봉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전전긍긍해야 했고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들은 직장맘몫까지 봉사를 도맡을 지도 모른다는 불편함을 감추고 너무 많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담임선생님이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많은 봉사를 담당해야 했다.


그러면서 다들 자조섞인 탄식을 내뱉는다.


이게 다 내 새끼 좋으라고 하는거지...



학교봉사야 말로 봉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 봉사를 신청하고 행하는 상당수 엄마들의 마음가짐이 봉사 본연의 아름다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자율이 아닌 반강요의 문제라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실업문제 일자리창출문제와 학교봉사를 연관지어 사업을 구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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