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어떻게 써야해요?"
나이도 비슷해 가깝게 지내던
한 중견기업의 홍보팀 직원이 어느날 물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고민을 털어놓은 겁니다.
회사가 크지 않다보니
보도자료를 거의 혼자 도맡아 쓰는데
가르쳐주는 선배도 없고,
기사가 어찌어찌 나오기는 하는데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몰라
답답하다는 겁니다.
사실 전부터
'이런 보도자료는 좀 고쳤으면 좋겠다'
'보도자료를 이렇게 쓰면 좀 더 효과적일텐데'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어 나름대로 이런저런 얘길 들려줬습니다.
사실 보도자료야 각 기업 홍보팀이 가장 전문가일테지만, 문서의 '소비자'이자 수백여 기업의 보도자료를 접했던 개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글을 써봅니다.
기업을 담당하는 산업부 기자 시절,
하루에 100건이 넘는 보도자료를 받았습니다.
특히 기사 발제를 하는 아침 8~9시 사이에 집중적으로 쏟아지죠. 1분에도 수차례 스마트폰이 울립니다.
좀 시시콜콜하다 싶은
아래 '10가지 바람'에는
그런 시간적 특징이 반영돼 있음을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메일이 100여개씩 쏟아질 때는
우선 제목을 쭉 훑으면서
경중(輕重)을 판단하게 됩니다.
가장 난감한 것은
'OO기업 보도자료 입니다'
'[보도자료/OO기업] 안녕하세요, 7월 13일자 보도자료입니다'
와 같은 제목의 메일입니다.
저의 경우, 미안하지만 이런 제목은 거의 열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험상 제목이 이러면 내용도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보도자료를 보냈다고 알리는
문자메시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녕하세요, 보도자료 보냈으니 참고 바랍니다. OO기업 OOO 대리'
'안녕하세요, 기자님. 좋은 아침입니다. 보도자료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무의미한 문자메시지는
서로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제발 보도자료의 제목을 알려주세요!
보도자료 이메일을 열어보면
문서 파일만 첨부된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요약 몇 줄에
'자세한 내용은 보도자료 파일을 참조해주세요'란 경우도 있죠.
네, 물론 첨부파일을 열어서 읽어야 하죠.
다만 시간에 쫓기다보니
전문(全文)을 복사해서 이메일 본문에 써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읽는 단계를 줄여야 읽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언론사, 부서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제가 속한 신문사의 경우
아침보고 마감은 9시30분입니다.
조간 신문을 훑어보고
보통 마감 한 시간 전부터
보고 준비를 합니다.
이메일에 들어와있는
보도자료를 읽고 선별하고,
의미있는 자료라면
어떻게 해야 좀 더 굴려서 크게 쓸 수 있을까
생각도 하죠.
문제는 마감시간 임박해서 혹은 지나서
도착하는 자료입니다.
이미 보고를 한 상태면 웬만한 자료는 '킬(kill)'하고 중요한 자료일 때만 따로 회사에 전화를 합니다. 마감 전에 도착한 것보다는 채택될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죠.
어차피 전날 미리 컨펌받은 보도자료라면
'출근한 다음 보내야지' 생각하지 말고
되도록 빨리 보내주세요.
(늦어도 오전 9시 이전이 좋습니다.)
어떤 기업 보도자료는
담당자가 주제보다 앞서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죠.
'[OO기업] OO기업 OOO 과장입니다. 보도자료/ 제목..'
이렇게 이메일 제목을 달면, 가장 중요한 자료 제목이 잘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기업이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하지,
누가 보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자메시지도 그렇습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OO기업을 홍보하는 OOOO의 OOO 입니다.(중략)'
인사만 문자메시지 너댓줄을 차지합니다.
매번 스마트폰 알림 화면에는
'기자님, 안녕하세요. OO기업을 홍보하는 OOOO' 라는 대행사 이름만 보입니다.
문자메시지 수십여개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팝업창만 흘낏 보게 되는데
내용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는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OO기업 보도자료] OO기업, 어떤어떤 제품 출시'와 같은 식으로 보내주세요.
개인 소개는 이메일 본문, 메시지 제일 뒤에 붙여도 됩니다.
기자는 해당 기업의 담당자만큼 잘 알지 못합니다.
보도자료에 밋밋한 '스트레이트'만 담지말고
왜 이런 자료가 나오게 됐는지(배경 설명),
업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업계 동향),
해외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국내외 시장 상황) 등을 충분히 알게 해주시면 좋습니다.
기자가 보도자료에만 갇히지 않고
보다 큰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전 읽으면서 공부가 되는 보도자료가 좋았습니다.
독자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단신에 그칠 것이
박스 기사가 되고, 톱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좀 더 취재해 종합면 기획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죠.
보도자료와 별개로 지속적으로 업계 동향을 담아
뉴스레터를 보내주는 곳도 있었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단순히 보도자료 몇 줄만 보냈을 때와 비교하면
기사 내용이 한층 깊어지고
기사 크기도 달라진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보도자료의 1차 소비자는 기자지만,
최종 소비자는 결국 일반 독자입니다.
해당 업계에서 잔뼈굵은 전문가들만 알 수 있는 용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IT 업계 보도자료에 그런게 많습니다.
어려운 용어는 각주로 풀어주시고
개념이 어렵다면 알기 쉬운 비유로 부연해주세요.
자료가 이해하기 쉬우면 문의 전화도 크게 줄어들 겁니다.
'몰라요, 사업부에서 이렇게 보내왔어요' 하지 말고 홍보 담당자가 중간에서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작업을 해주세요. 그렇게 공들인 자료는 기자가 기사 발제도 보다 길고 적극적으로 하게 됩니다.
무조건 '컨트롤 + C, V'하는 기자가 아니라면, 결국 본인이 이해한만큼 쓰기 마련이니까요.
말로만 줄줄 설명하는 것보다
꼭 숫자를 챙겨주세요.
물론 분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특히 산업, 경제부 기사에선 숫자가 필수입니다.
기사 본문에도 그렇고
톱 기사에 필수로 따라오는
그래픽에서도 숫자가 필요합니다.
실적 추이, 시장 규모 추이 같은 자료가
무난하게 쓰이는 듯 합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라면 '숫자로 보는 OOO' 식의 그래픽을 만드는 것도 좋죠. 점차 긴 글보다는 시각화 자료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사진 없는 보도자료는
'사이다 없이 고구마 먹기'와 비슷합니다.
꾸역꾸역 먹다보면 목 막힙니다.
방송기사에 영상이 필수이듯
신문기사는 사진이 그렇습니다.
전문 사진 작가가 없는 기업이라면
비슷한 행사 혹은 제품의 보도를 포털에서 검색해
다른 기업들은 어떤 장소에서 어떤 구도로
사진을 찍었는지 참고해보세요.
어떤 '공식'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A컷을 보내지만,
B컷도 항상 준비해 주세요.
내가 고른게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특히 줄줄이 일렬로 서있는 사진, 싫어요 ㅠ)
증명사진이나 로고는 해상도를 신경 써주시고요,
주요 임원이라면 사진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게 좋습니다. 사진이 올드하면 기업도 올드해 보입니다.
사진을 보낼 때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과 같은 6하 원칙의 캡션을 꼭 달아주세요.
등장인물이 여럿이면
'(왼쪽부터) OO 사장, OO 전무, OO 상무' 등으로 쓰거나
한 명만 부각시켜야 할 경우엔
'OO 사장(왼쪽에서 두번째) (가운데 안경쓴 이)' 식으로 명확히 표시해 주세요.
간혹 이메일에도, 보도자료 파일에도
회사 번호만 남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추가 질문도 나올 수 없는
100% 완벽한 자료를 만들었다 자신해도
항상 담당자와 접촉 가능한
개인 연락처를 남겨 주세요.
회사로 전화하면 동료가 대신 받아
'지금 회의 중인데요' '외근 중인데 메시지 남겨드리겠습니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속이 터집니다. ㅜ
특히 주말에 월요일자 보도자료를 보내놓고
회사 번호만 남기는 분들은 정말 너무합니다.
물론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 보내고 기자들 전화받느라 휴일 망치고 싶지 않은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아예 개인 번호를 넣지 않는 식으로 연락을 피하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전화도 좋고, 만나도 좋습니다.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서로 '번쩍'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관심사도 알게 되고요.
단순히 자료만 일방적으로 던질 때와는
다른 소통을 하게 됩니다.
그런 배경들이 좋은 보도자료를 쓰고,
기획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p.s.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기자가 '떠먹여주는' 보도자료로만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보도자료는 모두에게 공유됐다는 특징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 발제는 언론사 내부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합니다. 매번 보도자료만 올리는 기자는 그만큼 인정받지 못합니다.
다만 보도자료는 기사거리를 찾는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외부자인 기자가 해당 기업, 기관의 이야기를 만나는 하나의 중요한 접점입니다. 요즘은 기업들이 기자를 통하지않고 곧바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도 하지요.
기업이 던지는 메시지를 나름의 지식과 시각을 바탕으로 걸러내고, 또 다듬고 연결해 독자에게 의미있는 정보로 만들어내는 것이 산업부 기자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