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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태모의 포랍도 Aug 24. 2021

민주주의와 뻔뻔함

[탐구: 정치 감정] 선거철을 맞이하는 하나의 태도


정치와 정치인 이야기가 우리 생활을 지배하는,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정치영역에서 순전한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는 여러 집단과 세력이 서로 맞부딪히는 장이기에 그렇다. 우리가 정치적이 된다는 것은 그중 어느 누구의 편을 든다는 말이다. 한쪽 편을 든다는 것은 당연히 다른 쪽(들)을 거부하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이와 같은 거부는 때로는 무관심과 무시로, 또는 비방과 경멸로 나타난다.


우리가 상대에게 적용하는 잣대는 보통 공정하지 않다. 상대의 잘못은 침소봉대하기 쉽고, 우리 편의 허물은 아전인수 격으로 정당화 하기 십상이다. 중립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태도는 대부분 부당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참 뻔뻔하다.


중립의 시각이 아무리 고상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에 정치적으로 모호한 결단 유보 상태의 표현일 뿐일 때가 많다. 우리가 정치의 장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뻔뻔함을 마주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뻔뻔한 적수를 상대하는 일은 곤혹스럽다. 더욱 곤혹스러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정직하다면) 이따금 확인하게 되는 우리 자신의 뻔뻔함이다.


뻔뻔함은 실존의 문제이자 지성의 문제요, 또 태도의 문제다. 좀 더 현학적으로 말하자면 존재론의 문제이자 인식론의 문제요, 또 도덕-심리의 문제다. 예를 들어, 내가 이번 선거에서 모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는 것은 그 후보의 무능을 지적하고 과장하고 매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경쟁 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실존적인 투쟁 구도 속에서는 만약 후보 가족과 친인척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모든 사실을 찬찬히 또 꼼꼼하게 고려하여 나의 입장을 세우고 수정하기보다는 기왕의 내 믿음을 뒷받침해 줄 정보를 찾게 되기 일쑤다. 뜻을 같이 한 이들끼리 서로 동의와 동감을 구하고, 청렴한 내 후보에 대한 믿음을 뒤 흔들고 조롱하는 '불쾌한' 사람들을 자연스레 적대시하기 쉽다.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희망하는 것이야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지만, 그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이상적인 시각에 대한 환상만을 키울 뿐이다. 서로 간에 지키면 좋을 공손한 매너와 상호 존중 역시 훌륭한 덕목일 수 있지만, 여러 덕목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는 보통의 우리들이 이 선거의 계절에 상호 존중과 이해에 기반을 두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열린 대화와 심도 깊은 토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치 참여의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을 비판적 지성으로 철저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거의 자기-기만에 가까운 일이다.


오히려 문제는 상호 간의 뻔뻔함을 제대로 자각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따져 보는 일이 아닌가 싶다. 모두에게 해가 되는 심각한 수준의 적대감과 상호 불신을 고무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상대를 무시하고 경시할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민주 정치의 진정한 기술과 기예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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