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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태모의 포랍도 Apr 22. 2022

막스 베버 노트

[사람과 사상] 4월 21일

1864년 4월 21일 프러시아의 에어푸르트에서 막스 베버가 태어났다. 지난 1월 그의 유명한 "직업으로서의 정치" 강연에 대해서 여기에 짧게 쓴 바도 있지만("직업 정치 실패자의 직업 정치론?"), 베버는 부유한 사업가/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가와 처가의 부 덕택에 그는 먹고살기 위한 "직업"을 가져야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부인인 마리안네[Marianne Schnitger]가 백부의 외손녀였기 때문에 처가의 부는 넓게 보면 친가의 부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직업" 학자 노릇을 한 것은 대단히 짧다. 건강 상의 이유였지만 말이다.  


베버는 뛰어난 학자였다. 스물다섯이었던 1889년에 중세 북부 이탈리아 지방의 무역 회사들을 주로 다룬 법학/역사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년 뒤에는 로마 농업사를 주제로 교수자격 논문을 썼다. 그 논문을 쓰는 와중에 따로 진행해서 1892년 출판한 <도이칠란트 동 엘베 지방의 농업노동자 상황>이 학계의 주목을 끌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서른 살이 되던, 1894년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취임했다.


1897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지만, 바로 그 해 6월 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지게 되고, 그렇게 소원해진 아버지가 8월에 돌연 사망하고 여러 일이 겹치면서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1899년이 되면 모든 강의를 중단하게 되고, 1903년에는 공식적으로 대학을 떠난다.





마리안네 베버와 막스 베버
미나 토블러(왼쪽)와 엘제 폰 리히트호펜(오른쪽) |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베버와 연인 사이였다.




한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 베버를 전공한 지도 교수님 덕에 막스 베버 학술판 전집을 처음 구경했었다. 도서관에서 구입한 전집을 제본한 복사본이 그 연구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언제 전권이 다 출간될 것인가 궁금했는데, 지난 2020년에 결국 출간이 완료되었다. 도서출판 길에서는 작년부터 학술판 전집에서 주요 저작을 추려서 10권짜리 선집을 번역 출간하고 있다. 현재 1-2권이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에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집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참고 삼아 아래에 붙여 본다.



막스 베버 학술판 전집과 한국어판 막스 베버 선집


J.C.B. Mohr/Paul Siebeck이 처음 막스 베버 학술판 전집 (Max Weber Gesamtausgabe: MWG) 출판 기획을 발표한 것은 1981년이었다. 3년 뒤인 1984년에 1부의 3권인 <도이칠란트 동 엘베 지방의 농업노동자 상황>이 가장 먼저 나왔다. 그리고 기획안이 발표된 지 약 40년 후인 2020년에 3부의 2권인 <실천적 정치 경제>가 출간되었는데, 이를 끝으로 애초에 계획된 전집이 마침내 완간되었다. 참고로 MWG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저술과 연설문(총 25권), 2부는 서신(총 11권), 3부는 강연(총 7권)이다. 여느 학술판 전집처럼 각 권의 편집을 맡은 편집자가 따로 있고, 출간 일정이 들쑥날쑥했다.


얼마 전에 도서출판 길에서 출판한 한국어판 막스 베버 선집 1권 <문화 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의 목차를 보니까(책 자체는 아직 구해서 보지 못했다), 이 책은 2018년에 출판된 MWG 1부 7권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에 대하여>에 수록된 주요 논문들 중 몇 편을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MWG 1부 7권은 처음 계획에 따르면 1984년에 나왔어야 했지만, 결국 출판된 시점은 2018년이다. 어떻게 1984년에 나왔어야 할 책이 34년 후에야 출판되었을까? 최종 학술판으로서의 MWG 편집 기준의 엄밀성이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원래 편집을 맡았던 사람은 의사이자 사회학자였던 호스트 바이어(Horst Baier)였는데, 바이어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아도르노 사후에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던 사람이다. 어쨌든 바이어는 이 책의 편집 책임을 게하르트 바그너(Gerhard Wagner)에게 넘겼고 책 출판을 보지 못한 채 2017년에 세상을 떠났다. 특히 베버 학자들은 베버가 남긴 "방법론"에 관한 여러 저작들이 애초에 어떤 잘 짜인 체계 하에서 저술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 각 저술의 형식과 용도도 제각각이라는 점을 종종 강조한다. 때문에, 편집자로서는 모든 저술의 문헌학적인 고증을 잘 마치고 꼼꼼하게 주석을 다는 것이 대단히 까다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베버는 또한 "방법론"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당대 학자들의 논의를 대단히 폭넓게 분석하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동료 경제학자인 빌헬름 로셔, 칼 크니스, 프리드리히 고틀을 비롯하여 역사학자 에두아르트 마이어, 법학자 루돌프 슈탐러와 구스타프 라트부르흐, 철학자 빌헬름 빈델반트, 하인리히 리케르트, 에밀 라스크,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빌헬름 분트, 그리고 가까운 사이였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  등이다. 당시 학문 공동체의 상황과 대표 학자들의 주의주장을 섭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편집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역시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저 편집을 맡은 분이 수많은 다른 일을 하느라 이 일을 계속 미뤘을 수도 있지만.


MWG 1 7권에 수록된 논문들은 대부분 이미 다른 독일어 편집본에 출판된 적이 있었고, "로셔와 크니스, 그리고 역사학파 정치경제학의 논리적 문제들"이나 "사회과학적,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같은 글들은 이미 오래전에 영어와 한국어로도 여러  번역, 소개된  있다. 2018년에 마침내 MWG 1 7권이 출판되었을 , 베버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책에서 거의 처음으로  보인 몇몇 글들이었다. 대표적으로 베버가 1902 후반에서 1903 초반까지 이탈리아의 네르비에 머물  남겼던 소위 "네르비 노트"라고 불려 왔던 자료들이 주목을 받았고, 또한 베버가 부인인 마리안네가 피히테의 사회주의에 대해  글이 자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세간의 주장을 부인하는 짧은 노트도 눈길을 끌었다. 김덕영 선생님 번역으로 길이 출판한 선집 1권에는 위의  노트와 같이 이전에 선보인  없는 베버의 원고들이 수록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판 막스 베버 선집 2권 <가치 자유와 가치판단>은 MWG 1부 12권 <이해의 사회학과 가치판단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세 편의 논문을 뽑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MWG 1부 12권의 책임 편집자는 요하네스 바이스(Johannes Weiß)며, 원래는 1987년에 출판 예정이었는데, 역시 지난 2018년에 이르러야 비로소 출판되었다. 여기에는 짧은 논문을 포함 18편의 글과 함께 몇몇 보고서와 토론문, 노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목차를 보니 한국어판 선집 2권에는 그중에서 "생산성의 개념"과 "사회정책학회 위원회에서의 가치판단 토론을 위한 기고", 그리고 "사회학과 경제학에서의 '가치자유'의 의미" 이렇게 세 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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