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이 시려워보여서 털부츠를 산 날
2022년 12월 31일, 그해의 마지막날.
온유, 시온이를 데리고 갈 데가 마땅히 없어서 우리 부부는 평소 자주 가는 대형 쇼핑몰에 갔다.
연말이라 많이 붐빌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예상보다는 사람이 없어서 무척 다행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타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시온이.
처음에는 동전을 넣어주고, 몇 번 태워줬지만 시온이의 욕구가 끝이 없어서(?) 최근에는 그냥 앉아서 핸들만 돌리게 했다.
이 자동차, 저 자동차로 시온이는 늘 1분도 안되어 계속 바꿔 태워달라고 한다.
계속 옮겨서 태워주다 보면 약간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때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뛰어다니는 시온이를 잡으러 나도 같이 숨차게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시온이의 발목을 보게 됐다.
그날따라 나는 시온이에게 목 짧은 양말을 신겼다. 발목이 너무 추워 보였다.
늘 신는 더러워진 꽃무늬 운동화에 훤히 드러난 발목..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른 아이들 차림새와 비교도 되는 듯했다.
에휴, 나는 늘 주변사람들에게 춥게 입고 다닌다는 구박을 듣는데, 아이도 춥게 입히는구나.
순간 괜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서 무작정 근처 신발 매장으로 향했다. 비싸더라도 일단 신겨나 보자는 생각으로..
대형 쇼핑몰이라 모든 가게들이 다 가까이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매장에 들어가서 기웃거리며 신발을 보는데, 아기상어가 그려진 분홍색 털부츠가 눈에 들어왔다.
시온이가 좋아하는 아기상어에, 분홍색 털신발이라니! 이거다. 한번 신겨라도 볼까.
시온이의 양 발에 신겨주니 자기도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안 벗겠다고 짜증을 부렸다. 150 사이즈가 시온이에게는 딱이었다.
가격은 29000원. 두툼한 털부츠인데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
예산에 없는 돈이긴 했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 겸, 1월에 있을 시온이의 생일선물 겸 그 신발을 덜컥 사버렸다.
“포장 다시 해드릴까요?”
직원분이 친절하게 물으셨다.
시온이는 신발을 안 벗겠다는 완강한 외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포장은 필요 없었다.
새 신발을 바로 신고 신나게 걸어 다니는 시온이. 너무 좋아했다.
그날 이후에, 내가 출근하느라 친정에 맡겼을 때, 시온이는 그 부츠를 신고 집 안에서 계속 돌아다녔다고 한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온유 등하원 시킬 때도, 그 신을 신겨서 늘 나갔다.
추운 날씨 속에 시온이 발과 발목을 지켜준 그 신발..
시온이가 천국으로 떠나기 하루전날에도 그 신발을 신고 병원을 다녀왔다.
더 많이 신기고 싶었는데, 결국엔 열흘도 못 신겼구나.
지금생각해 보면,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다.
그날.. 시린 발목의 시온이에게 저 신발을 사주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후회했을까.
새 신을 신고 팔짝 팔짝 뛰어다니던 시온이의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보내줬다면 나는 얼마나 슬펐을까.
아직 때도 많이 안 탄 그 신발을 차마 못 버리겠어서, 시온이 소지품을 영원히 보관할 가방에 넣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