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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Jan 13. 2023

할머니의 온돌방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매년 겨울 할머니 댁에 방문을 했었다. 혼자 계시는 할머니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차가 없는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탈 기차표를 예매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마치 여행을 가듯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가다 보면 예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간식 카트다.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객실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승무원이 간식 카트를 밀며 간식을 판매했다. 그 당시 나에게 기차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을 수 있는 식당과도 같았다. 


“엄마 나 배고파” 


지나가는 간식 카트를 놓칠 새라 나는 잠들어 있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는 나와 언니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하나씩만 고르라고 했다. 신이 난 우리들은 세상에서 제일 신중한 손놀림으로 가장 맛있는 간식을 각자 집어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기차 안에서 먹는 김밥이었는데, 흔들리는 열차에 리듬을 맞추어 김밥을 먹고 있으면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몇 번 더 타고 가면 할머니 집에 도착한다. 먼 길이지만 가족과 함께 가는 여정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할머니 집을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는데, 시골의 많은 집들 중에서 연기가 가장 피어오르는 바로 그 집이었다. 매년 가는 곳이었지만 어린 나는 갈 때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웃으며 반겨주시는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못난 손녀였다.


할머니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방은 아궁이가 가까운 온돌방이었다. 한 겨울에도 그 방에 있으면 세상 모든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방문할 때마다 그 방은 따뜻하다 못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는데, 아마도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셨던 할머니가 아궁이에 수도 없이 장작을 넣어 오래도록 불을 지폈기 때문일 것이다.


온돌방 한가운데 깔아 놓은 이불 밑으로 들어가면 추운 겨울 얼었던 몸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뜨거운 온돌방에 있으니 얼어서 딱딱했던 다리가 봄을 만난 듯 부드러워졌다. 온몸에 막혀있던 피가 순환이 되면서 온몸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몽글몽글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 너무 좋다.” 


하고 입 밖으로 속마음이 툭하고 튀어나오기도 했다. 4시간 넘게 기차와 버스를 타고 오니 또렷했던 눈이 반쯤 풀린 체 피곤한 나는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몸을 누였다. 한숨 자고 나면 할머니가 우리를 부른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밥상에는 잔뜩 할머니의 손맛이 들어가 있다. 이곳에서는 국이 담겨야 할 그릇이 밥그릇이 되어버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다 먹거라.” 


밥이 이게 뭐냐며 너무 많다고 투정을 부렸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밥그릇을 비워 낸다. 밥을 먹을수록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 비록 추운 겨울이지만, 할머니와 함께하는 그곳은 언제나 따스한 봄이었다. 


지금 할머니는 아궁이를 피우실 일이 없는 생활이 편리한 아파트에 살고 계시지만, 가끔은 얼음장 같은 물을 아궁이에 데워 머리를 감던 일, 온돌방에 하루 종일 누워서 손톱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던 일들이 그립기도 하다. 매년 겨울이 오면 나는 어렸을 적 할머니 집에서 지냈던 장면들이 떠올라 웃음을 짓곤 한다.'






22년 12월. 포레스트웨일 출판사의 공동작가로 참여한 글입니다.

[눈이 온다 쓸쓸한 겨울이 왔다]에서 작가의 다른 글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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