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by 순록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짝사랑과도 같았지요. 그것은 나에게 있어 영원히 넘지 못할 산. 커다란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극복하고 싶다. 극복할 수 있다. 해봤지만 아직은 너무나 높아요. 매일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실력이 는다고 말했거든요. 유명한 사람들이, 글은 실력이 아니라 엉덩이가 쓰는 것 이랬습니다. 어쩌죠. 저는 엉덩이 힘도 없는 사람 인가 봐요. 좌절감이 가득 차고 마음의 소재도 고갈되었습니다. 길어 올 것이 없어, 끌어올 것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현생을 살자. 희망에 머무르지 말고 현재를 살아보자. 그리하여 현재. 현실을 꿋꿋이 살아낸 덕에 예쁜 두 생명이 와주었습니다. 갑자기 이왜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러게요. 이렇게 글을 쓸 거리가 생겼습니다. 현실을 살며 다양한 조각을 가득 모아 왔습니다. 길어올 단어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두 개의 삶이 제게 와주어서 벅차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기쁨입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육아는 정말 어떤 것인지 기록하고 싶습니다. 내 눈에는 소중한 삶의 조각을 하나씩 표시하고 싶어요. 지금의 저는 과거의 저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옷도 머리스타일도 몸매도 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전에는 생각해 봤어요. 왜 그 힘든 길을 걸어갈까? 자신의 인생을 살기도 바쁜데 왜 희생이라는 것을 할까? 가치 있는 일인 건 알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어요.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일어난 일들, 글을 쓰고 싶어 해서 글을 쓰고 그것으로 모자라 학교를 들어가고 또 새로운 가족이 생긴 일들까지. 순리라고 부를까요. 누군가는 팔자라고 할지도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지만 인생을 더 살아보면 정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이 자고 있어요. 졸린 기운에 애타게 울다가 지쳐 잠든 녀석들의 모습은 새삼 평화롭습니다. 아기들은 스스로 자는 법을 모른대요. 바닥에 누워서 자는 방법도 하나씩 알려주어야 합니다. 자는 것, 먹는 것, 씻는 것까지 부모가 다 해줍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부모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내가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줘야 하는데 힘들다. 너무 힘들어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해요.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요.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가면서 제가 가르치지 않은 것을 합니다. 엄마는 매일 놀랍니다. 어떻게 이런 걸 하지? 눈을 맞추고 옹알이를 하고 뒤집기를 하고 저를 향해 웃어줍니다. 하나씩 성공했다는 기쁨의 웃음. 엄마를 향해 그렇게 웃어주기에 눈물이 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웃음으로 다 잊어버려요. 엄마들은 그래서 바보 같습니다. 언제 힘들고 슬펐는지도 모르게 또 힘을 냅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로 마음이 가득 차서 결국 또 퍼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씁니다. 하나씩 기록하고 기억하다 보면 영원한 제 짝사랑도 극복할 날이 오겠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네가 날 모르고 내가 널 모르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