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표시형 Mar 13. 2021

이제 무엇을 하면 될까 ?

젊음이라는 생기 넘치는 에너지에, 우수와 우울을 끼얹고

어제 중요한 결정을 하나 내렸다. 크리에이터 클럽 멤버십의 환불.

환불을 하지 않고 열심히 버텨볼 이유는 충분히 많았고, 환불을 하고 나서 이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했다. 


그러한 결정을 하고 나니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싶었다. 

술을 먹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싶었다. 


그걸 다 했다. 

실컷 부르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낄낄 거렸다. 

감상에 취하지도 않았고, 회상을 하지도 않았으며,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았다. 

대화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주변인을 신경쓰지도 않았으며, 의미에 관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난 정말 부르고 마시고 추고 웃고 싶었다. 그것만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머리를 자르고 싶었다. 며칠 전에 갑자기 '처피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운펌을 하고 앞머리를 바보 같이 잘라달라고 했다. 


머리를 자르고 나니 정말 바보 같이 생긴 내가 있었다.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좀 사랑스러워 보였다. 


왕가위 감독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가 만드는 색체와 풍경 그리고 음악, 미장셴이 그리웠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작은 꿈을 하나 꾸곤 했었다. 


홍콩에 가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는 것이었다. 

일층 상가가 있는, 작고 낡은 오래된 방을 하나 빌려서 술을 마시며 시간을 버리고 싶다는 꿈이었다. 


밤이 되면 술에 취해 비척거리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을 붙잡고 생각나는 대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뱉어내고 싶었다. 시덥잖은 이야기나 털어내면서 앞에 있는 상대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고 위로 받으면서 20대의 일부분을 망치고 싶었다. 


아비정전을 봤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시각적인 음악에 가깝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며 흠뻑 적시는거다.

주인공들은 이미 멸망해 있다. 멸망 직전에서 멸망까지의 과정에 집중한다. 


집은 대낮에도 어둡고, 표정은 우수에 차있고, 패션은 화려하다. 

젊음이라는 생기 넘치는 에너지에, 우수와 우울을 끼얹고 뚜렷한 원인 없이 빠져든 늪 같은 우울이 지속된다. 나중에는 원인인지 과정인지 결론인지도 헷깔리는 상황 속에서 길을 잃고 쓰러진 젊음은 낭만적이다. 


작년부터, 나는 내리막과 싸웠다. 매번 잘해보고자 최선을 다했다.

홍콩에 가서 이십대의 일부를 망치고 싶었던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빛을 바라보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되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상처 뿐이었다.  지독한 외로움 밖에 없었다.   

집에 누워 영화를 보는 것 말고는 도무지 마음이 평안한 순간이 없었다.


언제서부터인가 나는 공을 언덕 위로 굴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공을 언덕 위로 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예전에는 분명 무엇인지 알았던 그 공은, 점점 커지고 복잡해졌다. 

분노와 애정과 사랑과 감사와 질투와 복수심과 동정심과 부끄러움과 자부심이 뒤섞여서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왠지 이러한 내 감정 상태는 탄생부터 지속된 것 같았다.


더 이상 빌어먹을 공을 언덕 위에 올리고 싶지 않아졌다. 

어제 나는 올라왔던 길 그대로 공을 굴렸다. 


떼굴떼굴 굴러가겠지, 생각보다 올라온 길이 많지 않아서 금방 바닥에 부딫혀 다 깨져버릴 것이다. 

후회하고 마음 아파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는 그 밑바닥에서 오르막을 찾고 공을 만들고 점점 무겁게 키워가며 오를 것이다. 


알고 있다. 알면서 선택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내리막이다.  


짧은 이 순간 나의 파멸을 온몸으로 즐겨야겠다. 

여전히 이십대도 적응 안되었는데 삼십대가 된 걸 보면, 젊음은 참 짧은 것을 알고 있다. 


내 젊음에 빛나고 찬란한 것들을 끼얹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면, 왕가위 감독의 풍경으로 들어가야겠다. 


집에 검은 소파를 놓고 싶어졌다. 붉은색 카페트를 깔아야겠다. 커다란 거울을 놓아야겠다.

텐테이블을 사야겠다. 좋아하는 째즈 리듬을 틀어두고 샤워를 하고 나와, 알몸으로 춤을 추며 순간을 살아야겠다.  나한테는 냉장고와 침대 에어컨보다 이것들이 더 필요하다.


외로움에 몸서리 치지 않겠다. 외로움과 함께 춤을 추겠다. 

추락에 떨지 않겠다. 낙차감을 즐기며 소리를 즐기겠다. 

사람에게 떨지 않겠다. 더 이상 눈치 따위 보지 않고 살겠다. 


표시형 추락한다. 즐겁고 기쁘다. 가는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실한 사람은 새벽에 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