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표시형 Oct 24. 2023

서울 중산층을 상상해보았다.

벤처캐피탈 스프링캠프에서의 프로젝트가 끝났다. 

올해 4월 사업을 때려치겠다고 말한 뒤, 일주일 정도는 후련했고 그 다음부터는 앞으로 뭐하고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보이지 않던 현실들이 보였다. 난 내가 세상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내 시간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 세계가 사라지자 세상의 시간은 내 현실이 되었다. 

그제서야 공감되는 것들이 많았다. 이해 되지 않던 친구의 현실적인 선택들과 세상 사람들의 시시콜콜하게 보였던 고민들이 

용기였음을, 시시콜콜한 고민이 아니었음을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에게 투자한 심사역이기도 했던 균우형이 집에서 자꾸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사무실 나와서 일이나 도우라고 했을 때

그 곳 사무실의 풍경은 생경했다. 사람들이 웃는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풍경은 내가 갖지 못한 여유를 가진 사람들의 풍경 같아서 좋았다. 

종종 상상을 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번듯한 직장에 뾰족한 명함을 들고,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주말에는 골프를 치고, 세단을 끌고 다니며 매주 금요일엔 미식을 즐기며 살아가는 삶. 

그렇게 살다보면 나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겠지. 

그게 엄마가 말했던  제주도에서 공부 열심히해서 서울로 대학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말했던 그 삶. 

서울 중산층의 삶이 아니었을까 ?

즐거운 상상이었고 어쩌면 멀리 있지 않은 현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살 수 없었다. 

머릿속엔 문장이 떠다니고 눈을 감으면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이 상상되며 종종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이 뭔지, 왜 자꾸 생각 나는지 원망스러웠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대표님들의 발표를 듣고 팀을 보고 있으면 난 피로에 찌들어 있지만 

빛나는 눈으로 뭔가를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면 자꾸 다시 도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함께 상상해버리는 내가 싫었다.  

이십대 초반부터 날 괴롭혔던 우울증은 사라졌다. 나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우울할 땐 뛰고, 이유 없이 죽고 싶을 땐 웃긴 생각을 한다. 그럼 다 괜찮아진다. 

불면증도 사라졌다. 지속적으로 꾸던 악몽도 사라졌다. 미워했던 사람도 사라졌고 사랑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자기 혐오도 사라졌고 자기 연민도 줄어들었다. 

10월과 11월쯔음 되면 난 이유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었는데, 그것도 사라진 것 같다. 

참 오래 걸렸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을 한다면 그녀와 낡은 트럭 한대를 빌려서 유라시아를 횡단하고 싶다. 

서로의 사진을 남기며 너무 마음에 들어서 또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고 싶다. 

표현하고 싶다. 머릿속의 이미지를, 멋진 문장을, 세상에 영감을 주고 싶다. 

웃으며 일하는 따뜻한 스튜디오와 아침마다 기분 좋게 출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뭔갈 만들고 싶다. 

날 괴롭혔던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두려움은 여전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완벽히 하기에, 용기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 현실적인 사업을 생각하게 된다. 

돈으로 동기부여를 받으면 되지 않을까 ?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맞나 의심하기도 하다, 그게 쉽나 ?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스프링캠프에서의 프로젝트가 끝났다. 난 다시 무언갈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두려움은 여전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는 막막하다. 

다만 슬픔은 없고, 오후의 햇빛은 사랑스럽다. 

뭐가 되었든, 가장 나답게. 

후회 하지 않을 도전을 해야한다 결심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