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난 왠지모를 흥분에 휩쌓여, 3개월 넘게 지켜왔던 루틴들을 모두 깼다.
금연, 커피, 야식. 우울하고 힘들었다기 보다는 그냥, 내가 이것들을 왜 지켜야 되지? 지금은 더 텐션을 올려야될 때가 아닌가 ? 하는 생각에 휩쌓였고 그토록 괴롭게 끊어냈던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니 커피 한잔 정도 괜찮잖아 ?라는 생각에 커피를 마셨고 그날 저녁, 배가 고프다는 생각에 햄버거 두개를 먹었다.
나한테 실망했다거나 , 우울했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후련했다.
루틴이 깨졌다. 스마트폰을 쥐고 침대에 누웠다. 실컷 넷플릭스를 봤다. 뇌를 혹사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빡빡 머리만 아니었다면 당장 클럽으로 달려가, 완전히 망가지고 싶었다. 그러다 지쳐 잠들었다.
오전 눈이 떠졌다. 루틴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번 실수 한거다. 어렸을 적 술에 취해 에라모르겠다 저질러버렸던 실수들이 내 인생을 무너트리지 않았듯 그냥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에너지에 취해, 헤어진 여자친구와 실수로 술을 마셔버린 날이었다고.
그 생각이 들자 난 눈을 부릅뜨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광인 회관 동생들을 불러 모아 다 같이 뛰자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요새 내 기록에 자신이 있었다. 최근 5KM를 5분 초반 페이스로 거뜬히 뛰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동생들과 달렸다. 3KM까지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호흡소리들이 들려왔다. 헉헉 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난 분명히 괜찮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호흡이 내게 영향을 미쳤다. 갑자기 내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300M를 남겨두고 멈췄다. 같이 뛰던 동생이 나를 밀어주며 달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난 손을 뿌리치며 그냥 멈췄다.
호흡이 돌아오고,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같이 뛴 친구들 중엔 평소 3km 이상을 뛰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난 작년부터 꾸준히 5~10을 달려왔는데 정작 내가 먼저 무리를 멈춰세운 것이다.
조금 멈춰 호흡을 가다듬어보니 난 더 뛸 수 있었다. 내 다리와 호흡이 문제가 아니었다. 포기한 멘탈이 문제였다. 주마등 같이 지난 과거와 후회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올해 들어 내가 초기로 돌아가 다양한 아이템을 실험하면서 느꼈던 점은 과거 내가 너무 쉽게 던저버렸던 우리 회사의 다양한 아이템들이 초기 스타트업들에게는 가장 간절한 성취였다는 점이었다. 내 멘탈이 멈춰섰던 것이다.
난 너무 빨리 흥행에 성공했었기 때문에 그걸 몰랐고, 그래서 그 당시 내가 쥔 카드들을 너무 손쉽게 던졌던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시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포기를 바로잡고 싶다. 나는 조금 더 할 수 있다.
우리는 물을 들이키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그리고 뒤에서 뛰는 동생의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신기하게 난 다시 그 호흡에 매몰되어 템포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그때 웃긴 선택지를 골랐다. 이어폰을 끼고 평소 내가 러닝하며 듣던 템포의 음악을 틀었다. 제일 크게.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난 다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달렸다. 내가 포기한 300m. 3km 더 달릴 수 있다 생각했다.
지치지 않고 돌아오는 달리기를 완주할 수 있었다. 멘탈 싸움이다. 내 멘탈이 포기하면 포기하는 거고 내 멘탈이 더 달릴 수 있다그러면 육체적 한계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내 육체적 한계가 도달하지 않아도 멘탈이 먼저 포기하는 마음의 태도를 취하면 몸도 따라 지쳐버리곤 하는 것이다. 충분히 쉽게 해낼 수 있는 육체적 도전도 할 수 없어란 생각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어제 포기한 내 마음이, 다른 것도 하나 하나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다리가 털린 것인가 내 멘탈이 털린것인가.
달리기를 마친 후, 집으로 가는 길 난 오늘의 깨달음을 우리 회사로 대입해 보았다.
혹시 멘탈 문제로 인해 멈춘것들이 있었나.
우리팀의 올 상반기의 도전들은 멘탈이였나 다리였나. 이건 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의 빠른 성취를 바라며 포기한 것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분명 그 시장에 조금 들어가 봤을 때 이 시장이 우리의 가치를 극대화 시켜줄 수 있냐는 질문을 무의식적으로 던지곤 했었다.
오히려 2주간 몰입감 있게 일을 해내고 깨달은 점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포기하는 액션이 사실 더 힘들다. 이건 내 코파운더 덕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주변에서 수없이 얘기했다. 아이템 싸이클을 왜 그렇게 빨리 돌리냐고 어느순간 밈처럼 "시형이는 요새 뭐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다행인 점은 남의 호흡에 우리 호흡을 뺏기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때로는 귀를 막고, 오롯이 나의 호흡에 집중하며 나의 달리기를 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 법이다.
또 때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내 생각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인지 정말 내 피지컬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멘탈이 터져 아직 털리지 않은 다리가 있음에도 멈춰서는 실수를 저질렀다면, 깨달은 순간 다시 뛰어도 늦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가 오지 않는 장마기간 토요일의 달리기에서 난 이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