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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시형 Sep 10. 2024

서른넷, 인생이 망했다.

내 인생은 망했다. 시원하게 한번쯤 이렇게 공개적으로 뱉어 내고 싶었다. 망했다는 기분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 그것은 끝도 없는 미로에 인생이 빠져 있는 기분이다. 어떻게든 벗어나야겠는데 방법을 모르겠고 강제로 희망을 장착한채 최대치의 노력을 해보지만 좌절이 반복되는 기분이다. 희망을 찾고 싶어 미치겠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갖혀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5년을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들을 만나는게 쪽팔려지고, 순수한 친구의 성공을 축복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 인간관계를 줄이게 되었다. 부모에게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는 내가 부끄러워 연락을 끊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런 기분이 들면 서점에 갔다.찾아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망한 인생의 생생한 수기를 찾고 싶었다. 벗어나는 방법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들을 발견하고 싶었다. 가급적이면 한국 사람의 이야기이며, 비교적 최근에 쓰여진 책이었으면 했다.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하더라도 살아있고 싶었다. 그래서 난 서점을 헤메며 망한 사람의 책을 찾았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성공기였다. 여자친구나 있거나, 그 전의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아와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거나, 강인한 의지와 긍정적 사고를 장착한 채 일어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의 잠깐 동안의 좌절이었다. (난 아무것도 없다 느끼기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한다. 있다 없다를 떠나 내겐 없다고 느끼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수백 수천이었다)  그건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 같이 망해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없었고 그래서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만약 내가 10년 뒤에도 살아있다면, 만약 10년 뒤에도 망한 기분으로 생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그때 책을 써야지. 망한 사람들에게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상세한 지침서를 써야지. 


최근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운동이었다. 달리고 들고 탔다. 친구가 없어도 괜찮았다. 혼자 달리면 되기 때문이다. 매번의 노력이 날 배신해도 괜찮았다. 근육은 배신하지 않고 자랐기 때문이다. 차가 없고 돈이 없어도 괜찮았다. 자전거는 나를 언제나 자연으로 데려다 주었기 때문이다. 


때가 누렇게 진 베개를 배고 다 헤진 이불을 깔고 자더라도 괜찮았다. 우울증은 없었기 때문이다. 

깊은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준 것은 돈도 약도 아니었다. 운동이었다. 머릿 속에 슬픔이 밀려올 때면 난 반사적으로 땀을 흘렸다. 그리곤 골아떨어져서 잤다. 그래서 새벽 두시에도 달렸고 오후 세시에도 헬스장에 가곤 했다.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처일 수도 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거라도 있어서 숨 쉴 수 있었다. 


지난 일요일은 아주 성공적인 도피를 마친 날이었다. 항상 약점이었던 가슴운동이 매우 잘 되었고, 성공적으로 남산 달리기를 마쳤다. 맥주 한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골아떨어져 잤다. 


다음날,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발등이 터질듯이 아팠다. 자세히 보니 고름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과거 교통사고로 피부이식을 한 부위였다. 머릿 속에선 발등 걱정보다 오늘 저녁 운동 못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섬세하게 표현하면 퇴근 후 그 공허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내지? 에 대한 두려움이 일었다. 


주변의 피부과와 정형외과에 갔지만 소독 말고 다른 치료는 받을 수 없었다. 피부이식 부위는 다뤄본적이 없고 수술부위인터라 자세한 증상을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납득 가능했고 11년 전, 수술을 했던 병원에 전활 걸었다. 다행히 다음날 (시간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진료가 가능하다 해 진료를 예약하고 오늘 진료를 다녀올 수 있었다. 


진료 내용은 이렇다. 수술 부위에 아주 앏은 상처가 났고 그곳으로 병원균이 감염되었다고 했다. 고름이 굳어 발가락이 안움직이는 것이고 상처부위 염증이 커지면 수술 부위가 썩을 수 있으니 주사치료부터 해야한다. 그 이후는? 추이를 보아야 한다.  심플하게 말하면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괜찮은척 했지만 지하철에서 흐르는 눈물을 숨기느라 바빴다. 겨우 겨우 내 모래성 하나를 지었는데, 오년 동안 찾은 유일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지평선 끝까지 사막이 펼쳐져 있는 마음 유일한 오아시스였는데. 말라버리고 말았다. 


다리 걱정보다 난 그 걱정을 했다. 잠긴 계좌보다, 말라가는 전재산보다 난 오늘 밤이 걱정이었다. 

유튜브로 도망갈 수도 없다.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알고 있어도 하지못하는 나를 마주하면, 많이 아는 것은 지옥이 된다. 잠에 들 수도 없다. 우울한 생각이 밀려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 밤이 일 주 정도 지속되면 아파도 술을 찾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침에 일어날 수 없게 되고, 강제로 꿈을 꾸는 낮 시간이 사라진다. 그리곤 그때부턴 내 아주 못된 친구가 찾아온다. 우울증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해

아무렇지 않은 척 사무실에 앉아 생각을 했다. 다리고 나발이고 어떻게 하지 ?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글을 쓰자. 무슨 글이든 쓰자. 브런치에 글을 써서 하나 올렸다. 그랬더니 브런치북 연재 공모가 떴다. 


신이 또 내 유일한 삶의 낙을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잃어버린 나의 도피처를 글쓰기로 해야겠다 결심하고 정신없이 뭐라썼는지도 모를 글을 쓰고 게시했을 때. 브런치북 연재공모가 내게 알람이 왔다. 


그래, 10년 뒤가 아니라 한 달 뒤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 내 인생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써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34살, 인생이 망했다" 연재를 시작해본다. 시원한 기분이 든다.


미리 공지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연재일 수도 있다. 매우 감정적인 상태에서 결심하고 써낸 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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