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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의 서랍 Mar 18. 2016

hiver '16 . 허벅지에 칼을 꽂은 동양 여자

2주간의 프랑스 체류기

프랑스에 온 뒤로 계속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TV를 틀어보니 프랑스 전 지역이 빗줄기로 두드려 맞고 있었다. 이 넓은 땅을 적시느라 비구름이 고생이  참 많다. 프랑스 니스에서 여행 중인 친구 하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지인들의 안타까움이 실시간으로 카운팅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프랑스 방문의 목적이 관광이 아닌 휴식이었던 나에게 창밖의 빗줄기는 발목 잡는 자연 현상이기보다는 감상에 젖게 하는 배경 음악에 더 가까웠다.

늦잠을 자는 남편과 달리, 나와 아이는 시차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서 길고 긴 아침을 보내다가 6시가 되어 아침을 먹었다. 소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건강죽에 짭조름한 멸치볶음을 찬으로 내주니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외국에서 먹는 한식이 더 맛있다는 것을 너도 아는 거니. 나는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버터 바른 바게트와 상큼한 오렌지 주스를 먹었다.

빗방울로 얼룩진 창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 소리 감상중
소박한 우리의 조식



오늘은 세탁기 사용을 위해 부모님 댁에 가기로 했다. Gite의 리모델링 일정을 우리의 여행 일정에 맞추느라 숙소에 세탁기와 빨래 건조대를 갖출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빨래는 부모님 댁에서 하기로 했고, 건조대는 오후에 Gite 주인이 가지고 오기로 했다. 10분 정도의 여유 있는 걸음으로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부모님 댁에는 남편과 나, 아이의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그 마음이 짐작된다.

남편이 아버님께 기술 지원(PC와 TV의 인터넷 세팅 등)을 하는 동안, 어머님은 오래된 앨범을 들고 와서 어머님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여주셨다. 사진 속 어머니는 참 예쁘고 귀여워서, 유명 연예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어머님에게 미모가 뛰어나다는 피드백을 잊지 않고 해 드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특히 외모의 나이가 든다는 것이 반가운 여성은 없으리라. 어머님도 그 아쉬움을, 오래되어 꼬깃꼬깃하고 색이 바랜 사진을 펼쳐보이며 해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빨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Gite 바로 옆에 있는 아트숍에 들러서 아이와 함께 가지고 놀 재료와 도구들을 구입했다. 우리 프랑스 아이처럼 한 번 놀아보자꾸나. ㅎㅎ

어머님의 어린 시절 사진(왼쪽 아이) / 아트숍 내부




이층에서 아이의 응가 기저귀 업무를 보고 있는데, 아래층이 다소 시끄럽다. Gite 주인이 빨래 건조대를 가지고 온 모양이다. 내려가보니 남편은 현관문 입구에서 신발을 반만 신은 어정쩡한 자세로 Gite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주인이 금방 갈 예정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프랑스어라 못 알아 들음...) 나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잠시라도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만국 공통어 보디랭귀지를 구사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남편의 깊은 생각을... Gite 주인의 이름은 '딕시'라고 한다. '마담 딕시'라고 부른다. 뭔가 드라마 소재로 쓰일 법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대화 기술 또한 드라마 소재가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남편은 그녀에게 거의 한 시간 가량을 붙잡혀 있었다. 마담 딕시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Gite 사업에 쏟아부은 금액, 열정에 대해 끝도 없이 얘기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대화가 너무 길어져서 종이봉투에 담긴 빨래들이 곧 쉰 내가 날 것 같았다. 나는 건조대를 직접 설치해서 빨래를 널기로 했다. 건조대는 새것이라 플라스틱 끈으로 아주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Gite에 가위가 없어서 나는 부엌의 식칼을 사용했는데, 칼이 새것이어서 너무 잘 들었다. 칼은 플라스틱 끈을 가볍게 끊고서 나의 오른쪽 허벅지까지 날아왔다. 두꺼운 기모 바지를 뚫고 나의 허벅지를 베었다. 많이 아프지 않았는데 피가 많이 났다. 옷을 들쳐보니 상처가 꽤 길었다. 놀란 남편과 아이, 마담 딕시가 나에게 달려왔다. 아이는 "엄마 아파? 엄마 아파?"를 연발하며 자신의 장난감을 나에게 주겠다고 하고, 마담 딕시는 물과 수건을 가져와 (땀도 나지 않는) 내 이마를 훔치며 물을 마시라고 했다. 남편은 벨트를 풀어 지혈을 시도했다. 그런데 정작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말한 것은 바로 나였다. 치마로 갈아입은 나는 상처를 압박한 채 마담 딕시의 차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이렇게 프랑스 병원 응급실 시스템을 견학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관리를 못해 부끄러운) 치마 밑 맨 다리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부들부들 떨렸다.

프랑스의 응급실 분위기는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입구에 들어가면 널브러진 환자들과 분주한 의료 행위가 훤히 보이는 한국의 응급실 모습과 다르게, 프랑스 병원은 응급 치료를 독방에서 차분하게 받게 되어 있었다. 병 고치러 와서 병 얻어 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환자 상태의 경중에 따라 의료 순위가 결정되다 보니 나는 좀 많이 기다려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가 접수하기 한 시간 전에 나와 같은 상해 환자 18명이 갑자기 몰렸다고 한다. 뭔가... 칼부림의 신이 그 지역에 잠시 다녀갔다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략 한 시간을 대기한 후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소피 마르소의 피곤한 버전 같은, 다소 푸석한 얼굴이지만 미모가 살짝 도드라져 보이는 젊은 여의사였다. 의사는 내 살을 꿰매는 동안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의사의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로도 안심하기 어려운 미모여서, 나중에 남편을 살짝 떠보았다. "의사 참 예쁘더라, 그치." 거짓말 못하는 남편은 예쁘지 않다는 말 대신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뻔한 대꾸만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마담 딕시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었다. 모두 자기 탓이라며, 1초 간격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예술가여서 그런지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가 머물고 있는 '퐁타니르콩트'는 유명한 작가가 많이 배출된 예술가의 도시였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고, 마담 딕시는 그들 모두와 가까운 친구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만큼 발이 넓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동네에서 '허벅지에 칼을 꽂은 동양 여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루 만에 동네 모든 사람이 이 사건을 알게 되었고, 약을 사러 들린 약국에서도 내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렇게 가십의 중심에 서 보기는 태어나서 또 처음...

여행의 초반에 이렇게 다리를 베었으니... 이제 정말 휴식만 해야 할 것 같다.


청소, 요리, 설거지, 육아 모두 남편이 하기로.

의사가 직접 써준 상처 소독 프로세스.
나의 여행 메이트... 약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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