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프랑스 체류기
오늘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고 하여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여행지에서 하루를 온전히 숙소에서 보내기로 결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하는 엄마의 사랑이다. 모든 즐겁고 신나는 것에 우선하는 아이의 안전과 건강을 살피느라, 나는 이곳이 프랑스가 아니라 달나라였더라도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면 숙소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른 새벽에 눈을 뜬 아이는 아직 잠에 흥건히 취해 있는 엄마의 요구대로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며 한참을 놀며 기다려주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잠보다 더 달콤하고 사랑스럽다. 샷을 추가한 커피를 마시고 잠이 달아나는 기분이 들게 할 정도로.
여행지에서 아이의 유아식을 만들어 먹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식기소독기를 가져가지 못하므로 매번 펄펄 끓는 물에 소독을 해야 하고, 손에 익지 않은 도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요리 초보처럼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온 멸치볶음과 어제 끓여둔 미역국이 있어서 오늘 아침은 재빠르게 한 상 뚝딱 차려낼 수 있었다.
아이와 내가 아침을 다 먹어갈 무렵 남편이 일 층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숙소 일 층에는 손님을 위한 1평 정도 크기의 작은 화장실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물이 흘러서 거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시적인 것이겠지 했는데 물난리는 계속되었고, 이 층 화장실 물을 내리거나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 그 물이 일 층 바닥으로 고스란히 넘쳐흐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숨기고 싶은 내 몸의 일부를 꿀꺽 삼켰다가 다시 뱉어내어 모두에게 보여주는 그런 상황... 최악이었다. 숙소 주인에게 바로 연락을 했지만, 원인을 파악하는데 장장 사흘이 걸렸고 조치를 취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5일 동안이나 우리는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최대한 억눌렀고, 물을 펑펑 쓰며 샤워를 할 수도 없었다. 이 층에서 내가 배수구를 막고 샤워를 마치면 일 층에서 남편이 "자, 배수구를 열어봐. (10초 후에) 스탑 스탑 스탑!! (일 층 변기 속 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열어~ (5초 후에) 스탑 스탑!!" 하는 상황이 5일간 벌어졌다. 시부모님은 아예 2분 거리에 있는 교회 화장실을 이용하셨다. 정말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이 사태로 인해 3일분 가량의 숙박비를 할인받았으나, 정말 짜증 나는 사건이었다.
아이에겐 여기가 한국인지 프랑스인지 상관이 없을 거다. 아마 집과 집이 아닌 곳으로 구분되지 않을까. 집이 아닌 곳에서의 아이는 확실히 더 많은 생기와 에너지를 보여준다. 집이 아닌 곳이 실외가 아닌 실내일지라도. 다행히도 아이는 하루 종일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비가 살짝 그친 틈을 타서 아이와 함께 뒷마당에 나가서 미니 산책도 즐겼다.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순간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나에게도 '시간'이란 아이와 함께 하는 것과 아닌 것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지니야~ 엄마는 지니 없인 하루도 못 살아.
오늘 저녁 식사는 남편이 실력 발휘를 하기로 했다. 어제는 내가, 오늘은 남편이 요리를 한다. 다소 배틀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새인데, 아니나 다를까 시부모님은 남편의 요리에 감탄을 하며, 한 숟갈 한 숟갈 드실 때마다 쎄봉 쎄봉을 외치셨다. 어제 내 요리에 대한 피드백과 너무도 다른 반응에 소심 며느리는 괜히 심통이 났다. 상황 모면에 능한 남편은 부모님이 자신이 요리를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다, 맛있을 거라고 상상을 못했기 때문에 반응이 더 컸다며 나를 위로했다. 흥.
화장실 소동으로 아침을 보내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며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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