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한계'와 '나의 존재 가치'를 분리하는 것이 자기 이해의 핵심
어른이 된 당신은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모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고,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갑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어딘가 부족해." "사람들이 나의 진짜 모습을 알면 실망할 거야."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이 끈질긴 자기 의심과 공허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무의식 속에 자신을 바라보는 어두운 시선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면, 이제 우리는 당신의 잘못이 아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보며 따뜻하게 웃어주면, 아이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나는 소중하고 기쁨을 주는 존재구나"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부모가 무표정하거나, 반응이 없거나, 정서적으로 아이를 방임했다면 어떨까요? 아이는 "거울이 깨졌다"거나 "거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얼굴이 잘못되었구나." "내가 사랑스럽지 않아서 부모님이 웃지 않는구나."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의 '무능력'을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슬픈 선택이었습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공포(세상에 홀로 남겨짐)보다는, 차라리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 믿는 편(내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덜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무의식 깊이 새긴 채 어른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무의식의 그림자를 평생 대면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긍정 심리학의 대가들이 사람들의 강점을 찾는 VIA(Values in Action) 강점 분류에는 '사랑(Love)'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VIA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을 능력(Capacity to love and be loved)'으로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능력' 말입니다.
사랑은 저절로 솟아나는 샘물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기술'이자 '근력'입니다.
사랑할 능력: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헌신을 주는 능동적인 힘.
사랑받을 능력: 타인의 호의와 애정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누리는 수용의 힘.
이 관점에서 당신의 부모님을 다시 바라봅시다. 그분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마치 수영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해주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빵집에 가서 타이어를 달라고 울며 매달렸던 어린 시절의 당신을 떠올려보세요. 빵집 주인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곳엔 애초에 타이어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사랑받지 못한 건, 당신의 가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가진 '사랑의 자원'이 빈곤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 즉 '부모의 한계'와 '나의 존재 가치'를 분리하는 것이 자기 이해의 핵심입니다.
지금도 당신을 괴롭히는 내면의 비난 소리를 들어보세요. "넌 왜 이렇게 예민해?", "더 잘해야 사랑받지." 그 목소리는 진짜 당신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사랑할 능력이 없던 부모의 태도가 당신의 내면에 녹음된 '낡은 테이프'일 뿐입니다.
이제 그 테이프를 멈출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건 내 목소리가 아니야.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부모님이 변하기를, 뒤늦게라도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안타깝게도 그 기다림은 당신의 상처를 덧나게 할 뿐입니다. 치유는 부모가 아닌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이제 당신에게는 '스스로를 다시 양육(Reparenting)'할 힘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받고 싶었던 위로를 타인이 아닌 당신이 직접 자신에게 건네주세요.
"오늘 하루도 정말 애썼어." "실수해도 괜찮아, 널 비난하지 않아." "너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사랑스러워."
사랑할 줄 모르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해서, 당신이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결핍을 알기에, 당신은 누구보다 깊은 '사랑하고 사랑받을 능력'을 키워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 안의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세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당신이 되어주고 싶었던 그 따뜻한 부모가 되어주세요. 당신은 이제 그럴 능력이 있는 어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