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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샌코 Jan 12. 2021

나는 왜 쓰는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강조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는 투쟁의 도구로 글을 썼다. 그가 살던 시대는 분노가 분노를 덮는 사회였다. 전쟁이 끝나면서 또 다른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공산주의자는 전체주의자를 죽였고 전체주의자도 공산주의자를 죽였다. 적군의 죽음은 아군의 생존을 의미했다. 그래서 죽음은 비극에 앞서 때로는 위로와 안심이기도 했다. 누구의 편도 아닌 죽음은 그 의미도 양 극단을 달렸다. 그러니까 아주 숭고했거나 아주 하찮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인 글을 써야 했다. 암흑의 시대를 밝히기 위한 유일한 저항이 바로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염창동 사는 윤샌코(35세, 필자)는 한뚜르(34세, 배우자)에게 글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조지 오웰의 심정이었다. 이 어두운 세계를 밝히고 싶어서 정치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내 마음 한켠에 실체가 불분명한 어떤 억압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억압받고 있었다. 그러나 억압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그릴 수 없었고 머릿속에서만 한참 윙윙 댔을 뿐 분명히 모이질 않았다.


나는 이것을 '모든 것에 대한 억압'으로 퉁쳤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방을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머릿 속에 두둥실 떠있는 억압의 실체를 조금씩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허지웅 스타일로 글을 써라. 섹시하니까."


억압의 실체를 그리고 있던 와중에, 때마침 한뚜르가 나타났다. 


"허지웅 책은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실은 그의 글을 트위터에서 대충 훑어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너무 내면적이고 자기도취적이라서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다고 한번 질러보려고 했다. 그러나 한뚜르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한소릴 들을까봐 입을 잠갔다.


"그러니까 책 좀 읽어라. 제발."


한뚜르는 구한말 네덜란드 선교사가 조선인을 대하듯 다그쳤다. 맞다, 나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다. 일년에 다섯 권은 제대로 읽었나 싶을 정도로 일자무식하다. 그렇다고 억압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는 나를 그렇게 매몰차게 쏘아붙일 일은 아니었다. 특히, 말 끄트머리에 '제발'이라는 부사를 첨언한 것은 타박을 넘어서 경멸에 가까웠다. 아, 옳지. 이것은 한뚜르가 내게 자주 하는 '온화한 경멸'의 일종이다. 이 온화한 경멸이 나는 아주 친숙했다. 그러니까 내가 잘 적에 발바닥으로 이불을 비벼대는 버릇이 있는데다 코까지 심하게 골아서 자기와 아이가 잠을 이룰 수 없다고 거실에서 자기 시작했을 때도 이 온화한 경멸이 나를 억압의 세계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 온화한 경멸은 말보다 눈빛으로 완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1인 화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뚜르가 윤띠띠(3세, 아들)를 한참 임신하고 있었던 3년 전의 일이었다. 회사 복지 제도엔 아내한테 모조리 선물을 사주라고 나눠주는 복지포인트라는 것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그만 십만 원 짜리 1인 화로를 사버렸던 것이다. 30대 남성이 충분히 결정을 내리고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소비였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지 깊은 고민없이 샀다는 점, 그래서 다소 충동적이었음을 인정한다. 매일 매일 고기만 구워먹는 이 유튜버들의 농간에 나는 1인 화로를 살 수밖에 없었고 그 즉시 내린 결정이었다. 그날 괜히 날씨도 좋았던 것 같았다. 하여튼 그 모두 다 내가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택배 상자는 한뚜르 손아귀에서 마구 해체당했다. 1인 화로의 영롱한 자태가 드러났다. 여러번 살펴본 뒤에야 자기 물건이 아님을 알아 챈 한 씨가 날 다급하게 불렀다.


'여, 이건 뭐냐.'

한뚜르는 말 대신 눈빛으로 말했다.


"아! 여보. 이건 말이야, 자! 보세요. 먼저, 이 도기의 흐르는 윤기와 색감. 캬- 진짜 끝내 준다. 그치? 이건 최근 유튜브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인싸템'이야. 우리 가족은 이제 정말 맛있는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나는 가능한 모든 미사여구를 동원해 이 물건을 설명했다. 실은 이 화로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논리와 설득 전략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숯을 두 개 정도만 구워서 창문을 연 뒤 선풍기를 잘 맞춰 돌리면 냄새 하나도 안나고 불도 안나고 안전하게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는 뭐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연설이었다.


'너, 진짜 미쳤냐?'

한뚜르는 말 대신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화로 구이가 고기의 풍미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또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의 질이 얼마나 향상할 수 있을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각종 시각 자료를 십분 활용하여 설명했다. 주거면적 12평 남짓 좁은 방 안에서 그깟 잿가루나 화재 위험이 있다고 삶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으랴! 1인 화로는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뿌듯한 마음으로 홀로 발표를 바쳤다.


'꺼져. 갖다 버려.'

한뚜르는 말 대신 눈빛으로 말했다. 항소 불가한 단심제 행정 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나는 1인 화로를 써보지도 못한 채 언젠가 엄마한테 선물로 줬다.


한뚜르의 온화한 경멸은 집안 인테리어에 관한 부부 간의 시각 차에서도 나타났다.


25평 전셋집으로 이사했을 때 일이다. 갑자기 넓어진 집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우린 각자 신이 났었다. 하지만 서로의 미적 방향성은 질적으로 달랐다. 나는 고리타분했지만 클래식한 원목의 중후함을 테마로 한 가구와 소품을 선호했다. 그러나 한 씨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중무장한 극단적인 실용주의. 그러니까 '플라스틱 꽉떼기'같은 걸 선호했다.


"이 대나무 발을 사서 어디다 걸겠다는 거야?"

한 씨가 플라스틱 꽉떼기를 모아다가 무슨 서랍이랍시고 거실 한가운데 설치한 뒤,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원목 소품을 보고서 따져 물었다.


"베란다를 키치(kitsch)하게 꾸미고 싶어서 샀어. 복고 느낌을 살리려면 벽면을 약간 포레스트한 분위기로 꾸미고 싶은데 대나무 발을 걸어 놓으면 여러 소품도 걸 수 있고 하여튼 가성비 있는 적절한 대안이 될 것 같아."

아주 상식적이고 전문적인 내부 인테리어에 관한 식견을 나는 공유해 줬다.


"난 별로야."

한 씨는 즉시 반려했다. 나는 민주적인 토론을 바랐으나 한 씨는 그것을 행정의 절차로 이해한 듯 했다. 이유라도 듣고 싶었다.


"윤띠띠가 그걸 잡고 떨어질 수도 있어."

아들의 안전 문제는 모든 부부 간 대화의 필살기였다.


"그러면, 저, 저. 플라스틱 꽉떼기 타고 올라갔다가 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런 논리라면 저것도 안 되지."

아주 정확하고 합당한 지적이었다.


"저건 달라."


"뭐가 다른데?"


"가볍고 물러서 다치지 않을 거야."


이 대화는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합당한 근거로 서로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합리적인 토론이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결투장에 아무 무기나 골라 잡고 여기저기 찌르는 식이다. 다만, 한 씨는 십리 밖에서 스코프를 통해 나의 급소를 정확히 저격하고 있는 반면 나는 이성과 합리 따위의 가장 허약한 무기를 쥐고 허공을 휘두를 뿐이었다.


"난, 예술이야. 예술적이려면 이 대나무 발이 필요해."


"웃기지 마. 윤띠띠가 잡고 넘어져. 안 돼."

한뚜르는, 다시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는 김일성이었고 김정일이었고 김정은이었다.


윤띠띠의 음악적 교양을 늘려주기 위해 기독교인인 한뚜르 몰래 메탈을 가르쳐 줄 때도 마찬가지였다. 3세 정도면 Thrash Metal 정도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나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Metallica, Slayer, Slipknot, Megadeth, Rammstein, Pantera 등 자고로 남자라면 어떤 음악에 미쳐야 하는지 그 계보를 차근차근 또 엄마를 충분히 배려해서 절대 모르도록 가르쳐 줬다. 아, 물론! 뽀로로가 양파와 당근이 맛있다며 호들갑 떠는 노래도 좋았을 것이다. 로보캅 폴리가 누구를 구해줬고 사랑하고 행복하다는 노래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의 이치를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고통과 절규는 사랑과 행복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그 자연의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비밀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윤띠띠가 어느 날 쇳물이 들들 끓는 소리로 '크으으- 옴마-!" 하며 방안을 온종일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또 아기상어의 노래에 맞춰 내가 가르쳐준 헤드뱅잉도 하기 시작했다. 한뚜르는 즉시 나를 호출했다. 그리고 추궁했다.


메탈의 신 롭 핼포드 옹께서는 말씀하셨다. 'Never Surrender', 절대 항복하지 말라. 나는 당당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내가 윤띠띠에게 메탈을 가르쳤노라!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눈빛으로 온화한 경멸이 아닌, 온전히 경멸했다. 나는 그녀의 경멸에도 절대 항복하지 않았다. 다만, 메탈의 아버지 뻘이 되는 재즈나 블루스 따위, 대충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함께 들려줬다.


울분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억압의 실체였다.


1인 화로를 구매하고 아직까지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대나무 발을 활용한 산뜻하고 화사한 거실 인테리어를 못하는 이유, 윤띠띠의 사회성과 남성성 향상을 위해 헤비메탈을 들려주고 있는 아빠의 교육방침이 반려된 이유. 그것 모두가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울분의 실체였다. 따라서 억압에 따른 자유와 해방이란 한뚜르로 상징되는 가사 권력의 전부 또는 일부의 평화적인 이양. 또한, 평등과 평화란 내가 제안하는 제3의 육아 방침을 하나의 교육 안건으로써 인정 받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완전해졌다.


나는 대법원과 동사무소가 보증하고 있는 기록상 세대주다. 그러나 여태껏 그것은 허울 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유부남으로서 감내해야 할 억압들은 국가기관 그 어느 곳에서도 기록해주지 않았다. 따라서 그 억압의 증거들은 나의 숱한 경험에서 비롯해 나 스스로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이 기록들은 앞으로 유부남들이 주도하는 유부남혁명의 자양분으로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 그리고 평등과 평화를 찾게할 것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조지 오웰의 심정으로 기록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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