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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un 06. 2020

제주도 가이드의 시작

그래, 인생이 언제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있기나 했던가.


나는 여행 가이드다. 서울,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서 현재 제주도에 있다.

나름 미래에 대한 대비가 철저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3년 정도의 계획을 3개 정도 세워보았었다. 계획의 내용은 이러하다.


1. 스페인에서 가이드 후기 1000개 받기, 1억 모으기

2.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 배우며 양치기 다큐멘터리 찍기

3. 뉴욕 or 멕시코에 가서 가이드 회사 차리기


한 개의 계획이 무너지면 다른 계획을 먼저 실행해보려고 플랜 c까지 생각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전부 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래, 인생이 언제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있기나 했던가.


나는 회사에 소속되어있으면 이런 위급상황이 왔을 때 회사가 방파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인건비를 가장 먼저 줄였다. 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을까, 카톡 하나로 직장을 잃었다. 뭐 조금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실상 회사에서 버려졌다. 쳇


코로나로 인해 계획했던 삶의 많은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렸고, 나는 도망치듯이 제주도로 왔다. 왜 하필 제주도였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우두커니 바다를 보고 있으면 무언가라도 생각나겠지 싶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라면과 인스턴트 음식들을 먹다 보니 깨끗하다고 자부했던 피부도 망가졌고, 생활의 리듬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야말로 폐인이었다. 그렇게 갯강구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가 그리 보고 싶었던 바다를 보러 나갔다. 썰물 시기였는지 내가 보려고 했던 바다는 없고 사막과 같이 모래사장이 펼쳐져있었고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이 많이 보였다. 비록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나는 빛나는 것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아니 어쩌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빛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는 가이드 투어가 있을까?"


찾아보니 몇 개 있긴 했지만, 유럽에서 했던 것 같은 투어는 없었다. 나는 무언가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고, 제주도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주도에 아주 매력적인 가이드 투어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가이드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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