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J in Wonderland Jan 10. 2022

[생각] 그 시절, 그토록 눈부시던 세계

일본 버블 절정기, 코카콜라 CM 'I Feel Coke'


어젯밤 집에서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생각이 흘러가 보게 된 1987년부터 1989년 사이 일본의 코카콜라 CM 시리즈 'I Feel Coke'. 


버블 시대 최절정기 일본의 낙천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녹아 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가족과 연인, 업무와 여가, 일상과 축제. 생활의 조각들을 교차로 넘나들며 각 프레임의 공통분모인 코카콜라를 자연스럽게 부각한다. 누가 봐도 일본풍의 미장센부터 국적을 알 수 없는 외모의 모델까지, 이스턴과 웨스턴을 아우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뜨거운 여름의 햇살 아래서, 가을의 눈부신 석양 아래서 콜라 한 잔(또는 한 병)을 들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짓지 못할 것 같은 눈부시고 설레고 반짝반짝한 표정을 짓는다. 


그곳에는 기뻐해야 할 경사가 있고,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성취가 있고, 즐겨야 할 놀이가 있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감사를 표하고, 누군가는 환호성을 지르고, 누군가는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화면 속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이 퀼트처럼 이어지면서 그 한가운데서 이들을 이어주는 존재인 코카콜라도 자연스럽게 각인된다. 한 모금 남은 콜라가, 듬직한 곡선을 그리는 이 브랜드 특유의 투명한 병을 타고 입으로 들어갈 때, 시청자의 눈은 그 모습을 따라가지만 머리로는 칼칼한 목구멍의 느낌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 CM의 음악은 이노우에 다이스케가 작곡하고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사토 지쿠젠이 연주했는데, 사토는 이후 밴드 활동을 하면서 콘서트 분위기가 썰렁해질 때마다 '깜짝' 선곡으로 이 곡을 연주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음악은 물론 이 CM 자체가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한국에서도 아시아 프로모션의 형태로 리메이크됐는데, 여기서는 당시 신인 모델이던 심혜진과 이종원이 출연. 같은 음악을 가사만 우리말로 바꿔 사용했다. '난 느껴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그러나 한국 CM이 일본과 다른 점은 '발라내기'를 통한 '타게팅'인 듯. 일본 CM과 대비해 보면, 노인과 아이, 학생의 등장을 상당히 많이 줄여 주요 등장인물을 젊은 직장인 남녀로 채웠다. 마침 88년 서울올림픽 즈음이라 억지로 스포츠를 끼워 넣은 연출도 눈에 띈다.



다시 일본의 CM으로 돌아와, 워낙 커다란 히트를 치면서 등장인물에도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는데 서구적인 마스크와 호탕한 연기로 호평을 받은 모델 마쓰모토 다카미(松本孝美)와 켄 브래니스만 따로 뽑아내 '나이트라이프 편(編)'이라는 CM을 만들기도 했다. 이 CM이야말로 버블경제 절정기의 일본 소비사회의 단면을 예리한 칼로 잘라내 보여주는 수작.

(동영상 : 유튜브)


작가의 이전글 [발번역] 무라카미 하루키 유니클로 인터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