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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순림 Jul 03. 2021

회사를 떠나면서 느낀 점들

쿠팡 부검 메일.

 쿠팡에 입사한 지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신데 퇴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려니 놀라신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작년 6월 정도에 쿠팡에 입사해서 지난 4월 말 부로 쿠팡을 그만두고 현재는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워낙 조용하게 퇴사를 하다보니 퇴사한 지도 모르시는 분들도 많았던 것 같고, 이제 조금 하고 싶은 것들 다 하고 어느정도 생활 패턴도 안정을 찾고 해서 글을 조금씩 이라도 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는 퇴사를 할 때 부검메일이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같이 근무한 동료들에게 퇴사의 이유, 회사에서 배운 것, 회사에 아쉬운 점, 앞으로의 계획등과 같은 항목들을 정리해서 보낸다고 하는데요. 이직이든 퇴사든 해고든 관계없이 이메일을 남겨야 하며, 퇴사하는 직원과 같은 부서에서 일한 직원, 과거 함께 일한 직원에게만 이 메일을 발송한다고 합니다.  처음 이 메일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국내 사정에서 그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한 퇴사를 하는 마당에 저런 것들까지 하나하나 생각해서 적으려면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 직전, 직후에는 별로 욕심이랄까 할 생각이 많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퇴사한지도 2달 가까이 되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회사 생활에 대해서 돌아보고 나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넷플릭스의 부검 메일의 형식을 빌려서 퇴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풀어내려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쿠팡이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도 어느 정도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입사 전 후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들었던, 듣고 있는 질문이 “쿠팡은 어때요? 일하기 괜찮아요?” 라던가 “거기 대표님이 굉장히 유명하시던데 대표님이랑 일하는 건 어때요?” 라는 식의 문화나 조직에 대한 질문을 굉장히 많이 저에게 해주셔서, 쿠팡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고, 특히나 주변에 네이버에서 쿠팡을 가신 분들 중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따지고 보니 저도 그렇게 되었네요) 더더욱 쿠팡이라는 회사나 조직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 위에 있는 항목을 바탕으로 쿠팡에 대한 부검 메일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동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퇴사 이유


 사실 제 퇴사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공황 장애를 약 4-5년여 전 부터 앓고 있었고, 이에 따른 불안 장애 및 강박 장애도 같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계속 약을 먹고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나름 순조롭게 증상이 호전 되던 가운데, 거짓말처럼 갑자기 다시 공황이 찾아왔고 그 후로 일주일 정도 계속 불규칙하게 휴가를 사용하면서 몸의 밸런스나 이런 것들이 한번에 무너져 내렸던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휴가를 많이 쓰게 되서 고생했을 여러 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구습니다. 

 그 이후로 담당 선생님, 그리고 와이프랑 얘기해서 조금 더 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고 얘기를 했고, 4월말까지 회사를 다니고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3월에 공황이 재발한 이후로 전체적인 몸의 에너지 레벨이나 업무 퍼포먼스 등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채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에 대한 고민이랑 회의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기보다는 일단 독을 수리하고 다시 물을 부어보자라는 마음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열심히 수리중입니다.


쿠팡에서 배운 것


 1년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쿠팡이라는 조직에서 배운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 2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제가 일하면서 경험한 분들 대상이라서 어 내가 아는 쿠팡은 안 이런데?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 구성원 개개인이 엄청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점, 그리고 자신의 레벨에 맞는 책임감과 업무 능력을 위해서 노력하는 점. 

 이전에 경험했던 회사들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월급 루팡이나, 저 사람은 어떻게 저 위치 까지 올라가게 된거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업무적인 능력보다는 다른 이유들로 자리만 차지하고 이런저런 얘기만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물론 나 자신도 다른이들에게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쿠팡 내에서 제가 본 분들은 모두 각자의 포지션에서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 노력하고, 서비스를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리더쉽 원칙과 이를 실제적으로 업무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적용하는 점

 또 다른 배운 점은 조직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 어떻게 조직내의 사고 방식을 sync하고 맞춰갈 수 있는 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모든 회사들이 자신의 회사에 대한 리더쉽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14가지 리더십 원칙이라던지을 비롯해서 회사를 경영하거나 조직 내의 리더쉽 간의 sync를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원칙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쿠팡에서 느낀 점은 이 리더쉽 원칙을 실제적으로 업무에 굉장히 잘 적용해 나가면서 업무를 진행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프로젝트등에서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 리더쉽 원칙을 기준으로 의사 결정을 진행하고, 결정의 판단 기준을 리더쉽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점이 신선하고 새로웠습니다. 경험한 많은 회사들에서 리더십 원칙등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모습은 많이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쿠팡의 경우는 면접, 각 종 의사 결정등에서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따라서 더더욱 치열한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애매한 의견 봉합식 의사 결정등이 많이 없고 팀원들에게 어떠한 피드백을 주는 경우에도 훨씬 더 명확하게 줄 수 있어서 이러한 점들에서 매우 효율적이었고 명확해서 좋았습니다. 


회사에 아쉬운 점 


 넷플릭스에서는 ‘넷플릭스가 이랬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을 전제로 쓴다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퇴사 이유가 회사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제 자신의 문제이기 떄문에 약간의 가정을 추가해서 '이런 것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다면 나는 지금이 아니어도 언제가 쿠팡을 그만뒀을 것이다’로 조금 수정해서 작성해 보려고 합니다. 


 가장 크게 아쉬웠던 점은 프로젝트나 업무 배정등에 있어서 불안정한 부분이 많았던 점이었습니다. 회사 내에서 특정한 주기등을 목표로 각종 프로젝트들이 처음에 세팅되고 목표들이 생기지만, 이것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기 보다는,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우선순위들이 변경되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갑작스럽게 생겨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우선순위가 높았던 프로젝트가 어느 순간 중요도가 낮아지면서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회사나 조직들에서도 많이 있는 일이지만 프로젝트가 생기고 없어지면서 조직 구성원들이 맡게 되는 업무가 급변하고 프로젝트 간의 이동도 많았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런 다이나믹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양한 업무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활용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이 없어지고 팀이 변경되는 일들도 많아서 이를 좀 더 명확하게 컨트롤하고 팀원들에게 커뮤니케이션 하기가 힘들었던 점들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즐겁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줘서 고마웠습니다 ㅠㅠ) 처음에 계획했던 분기/반기별 목표나 OKR등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는 용병 같은 느낌으로 업무를 어싸인 받고 일하는 분위기가 많이 아쉬웠고, 이런 점들이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당분간은 푹 쉴 예정입니다. 쉬면서 그동안 못했던 취미생활들도 즐기고 운동하면서 에너지도 조금 채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온 몸에 에너지 레벨이 너무 떨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쉬기 때문에 더 바쁘기도 하지만 조금씩 몸의 원기를 채워가는 과정이라서 그런지 기분도 좋고 머리도 좀 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쉬는 동안 여러 가지 고민이 있는 분들의 상담이나 편하게 말을 들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경제 방송이나 주식 관련된 방송들을 많이 보는데, Guru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고 그를 따라가는 사람들도 엄청 많더라구요. 그런데 국내에서 디자인이나 PO/PM 부분에서 그렇게 멘토가 되고 힘들 때 편하게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 보여서 그런 점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 줄 수 있는 역할을 잠시나마 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고 나서 새로운 직장도 알아봐야 겠죠. 그래도 푹 쉬고 난 이후에 좀 알아보고 진행하고 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쿠팡을 퇴사하면서 느끼는 점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회사였고, 즐겁게 일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고 저로 인해서 누군가가 힘을 얻고 도움이 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업무하던 그 시기가 지금도 가끔 그립네요. (근데 지금 노는 게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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