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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 Lee Jan 25. 2017

바다가 출렁인다 삶이 지나간다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서평



인스타그램에서 태그를 걸듯 저번과 마찬가지로 미리 밝혀두고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좋은 기회에 얻은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입니다.  쓰고 싶은 글이 많은 요즘이라 생각만 많고 제대로 쓰는 건 없었는데 2017년 마수걸이가 의도치 않게 '써야하는' 서평이 되어 잘되었다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이 글을 빌어 다짐해봐야겠습니다. 써야지...열심히...그....ㄹ....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한 블럭에서 카페가 2개 이상 보일 경우 주저없이 프랜차이즈 카페 옆에 있는 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간다. 이런 것이 여러번 반복되자, 여기서 파생된 다른 버릇이 생겼다. 인테리어로 커피맛을 추측해보는 것이다. 추측과 실제로 느낀 맛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소소한 유희다. 책도 마찬가지다.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책이 아닌 경우, 첫장을 펼치기 전 나는 표지 앞뒷면을 찬찬히 살펴본다. 취향여부와는 관계없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제목도 당연히 그 요소에 포함된다. 물론 직관적으로 나는 이런 얘기를 할거라고 말하는 제목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또한 소소하지만 괜찮은 유희다.


이번 책의 표지도 꽤 즐거운 유희를 선사했다. 산뜻하고 밝은 톤의 표지와 주황빛 타이 맨 앞표지만 보면 수험생들이나 쓸데없이 공부를 오래하고 있는 장수생 또는 고시생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은 책처럼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길 할까. 나한테도 쓸데없이 공부 그만하고 정신좀 차려보라고 할까.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은 생각보다 친절해서 뒷면에 그 오해를 싹 풀어준다. 서점에서 제목에 끌려 집었다면 뒷면을 읽고 생각 좀 해봐. 응. 난 괜찮아.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상하게 배우 유해진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왤까.


이 책은 섬에서 태어나 다양한 직업, 많은 거주지를 거쳐 다시 섬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수렵및 채집 생활을 영위하고 계시는 한창훈님이 주간지 한겨레 21에 기고한 글을 엮어 만든 에세이다. 사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글이 어떤 내용과 느낌을 주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섬이야기가 있고, 수렵과 채집이야기,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속에서 만난 사람들, 작가로서의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어우러져 있다. 중간에 주간지에 기고했기에 이해할 수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들과 표현들은 갑자기 친구가 먹어보라 넣어준 달달한 사탕처럼 느껴진다. 좋아하는 사람은 충분히 즐기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줬으니 뱉기도 뭐하고 먹기에는 불편한 무엇인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일단 즐겁게 읽었다. 기고된 글들은 정치성향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작가의 지극히 솔직한 심경 그 자체였다. 좌우나 보수 진보냐와는 관계없이 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정치적인 사건또는 인물에 대해 소견을 솔직히 밝힌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 같이 젊은 사람은 더더욱이나.  


그럼 정치적인 이야기에 대한 소견은 여기까지.


이 책은 '산다이'를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산다이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끝난다. 또래끼리 즐겁게 노는 것을 뜻하는데, 이 노는 것에는 연대,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요즘은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학생들이 동아리 활동대신 취업준비에 적극적이고 직장이 생기면 결혼, 출산, 육아, 노후등을 벌써부터 걱정한다. 작가는 이러한 세태를 간단히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대사회 최고의 상품이다.'라고. 공무원학원, 자격증준비반,  결혼정보회사 등.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다. 인간에게 거북이 등껍질이 있다면 그게 바로 불안일지도 모른다. 왜 불안하지 않은지도 걱정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있다. 더 슬픈건, 이런 세상에 작가님 말씀대로 '덤비기엔' 청춘은 너무 고달프다.


이 책을 크게 아우르는 또다른 키워드는 '획일화에 대한 비판'이다. 거북손에게 사 하며 매체가 주는 쏠림현상을 이야기하고, 우리나라와 북한만 존재하는 표준어와 우측통행으로 통제하는 정책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 부분은 나 또한 어느정도 어릴적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있던 터라 책을 읽으며 어느정도 공 했다. 좋다고 하면 다 따가고, 좋다고 하니 일단 따라하고. 20대 여성들에게는 화장품부터 60대 어르신들에게는 건강보조식품에 이르기까지 일단 써보고 안맞는다고 'ㅠㅠ'댓글이 나타나는 데 참 오랜시간이 걸린다. 시스템이나 정책이 주는 획일화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획일화 시키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들 또한 흥미롭다. 많은 삶의 장면들을 간직한 채 작가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읽는 내내 궁금했기에 더욱더 그랬다. 쓸 것이 많아 손이 간지러운 느낌일까. 작가는 자신의 삶을 팔아 먹고산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다양한 경험과 직업을 가지셨기에 삶아먹고 볶아먹을 수 있는게 이렇게 많구나 싶다. 그런 삶의 중심에 이 책의 제목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라는 문장이 있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비록 시작은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대한 환멸이었으나, 결국 학습이 아닌 삶을 체득하는 것으로 작가는 공부를 대신했다. 고단했지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소름돋는 반전의 몽골방문기와(드라마보는 것 같았다) 알고보니 내가 꼭 봐야하는데 아직 보지못한 영화의 첫 시나리오를 집필한 이야기도 약간 예기치 못한 반전을 느꼈다. 그 영화를 보고서 책을 읽었어야 했다. 영화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기분이었을거다. 이래서 끼니와 영화는 제때 챙겨야 한다. 서평을 쓰고난 후 그 영화 꼭 봐야겠다. 두번봐야겠다. 물론 IPTV로 돈주고.


그런가 하면 바다와 섬을 소재로 한 부분들은 나의 어릴적 기억들을 꽤 많이 떠올리게 했다. 어릴적, 방학때면 1달씩 나와 동생은 외가댁에서 지내곤 했다. 말하자면 엄마아빠의 부모휴가였다. 비록 농촌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고추를 따는 할머니, 고구마를 캐는 막내이모를 졸졸 따라다니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외할아버지를 따라다니던 동생과는 달리 나는 밭일에 호기심이 있었는지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물어보며 이모를 참으로 귀찮게 했다. 솔직히 공통점은 아니지만 내내 떠올리며 즐거웠다. 게다가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나는 어류에 대해서는 새롭게 눈을 뜬 것 마냥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었다. 그래서 이후 작가의 다른 작품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를 통해 보충학습을 했다. 재밌다. 일부러 아까워서 아껴읽으려고 예능을 틀어놓고 보다가 집중안되서 끄고 다시 읽을정도였다.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왜 삼시세끼 어촌편을 2방 3방할때도 틀어놓고 멍때리고 봤는지. 때로는 먹는것보다 잡는게 더 재밌었는지. 뜻밖의 내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바다낚시만 가면 될 것 같다.


읽는 내내 작가님과 소주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물론 안주는 회가 좋을 것 같다. 소주를 기울이며 밤새 나누는 이야기들을 텍스트의 형태로 읽고 있다는 생각을 짐짓했기 때문이다. 요런 주제 저런 주제에 이리 튀었다 저리 튀는 맥락이 술기운에 섞여 머리가 어지러울지언정  그 술자리는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쉽지 않겠지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아. 거문도로 바다낚시 데뷔전을 치르면 가능하려나. 아빠한테 허락부터 받아야겠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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