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워킹 투어
이탈리아 마지막 날. 이 날은 로마의 주요 유적지와 관광지를 한꺼번에 돌아보는 워킹투어가 있는 날.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하는 투어였다. 이제 시내의 주요 거리들은 몇 번 가봐서 그런지 익숙했다.
오늘의 집합지는 스페인 광장.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걸어 다님.
스페인 광장의 계단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소로 유명하다. 그런데 하도 관광객들이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흘려대는 바람에 이 대리석이 전부 시커멓게 더러워져서, 이걸 깨끗하게 청소하는데만 돈이 엄청 들었다고. 그래서 이 계단 위에서 음식물 섭취는 금지되어있다. 뭘 먹으면 경찰 아저씨가 와서 못 먹게 제지함. 사진에 찍힌 시점에는 계단을 깨끗하게 청소한 상태라고... 대학생 때 여행 왔던 남편 말로는 본인이 예전에 왔을 때는 계단이 엄청 새까맸다며 깨끗해져서 놀라워하더라 ㅋㅋ
집합시간보다 좀 많이 일찍 도착한 편이어서, 근처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싶었는데 스페인 광장 주변에는 마땅히 아침으로 간단히 뭔가를 먹을만한 곳이 잘 없더라. 그래서 전 세계인의 친구 맥도널드에 들어가서 요깃거리를 사서 아침으로 떄웠다.
스페인 광장을 기점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스페인 광장 앞에는 조각배 분수가 있다. 이 조각배 분수에 흐르는 물이랑 트레비 분수에 흐르는 물이랑 같은 물이라고... 여하튼, 로마 투어를 하면서 정말 지겹도록 들은 그 이름 '베르니니' 이 조각배 분수는 그 유명한 베르니니의 아빠,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조각한 작품이란다. ㅎㅎ
스페인 광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트레비 분수 쪽으로 이동할 수 있어서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트레비 분수로 이동.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가이드분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수로를 활용한 수돗가, 그리고 이탈리아의 주차문화 ㅋㅋ 같은 소소한 썰들을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투어 하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돌아다녔다. 이 말은 내가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는 의미.
낮에 보는 트레비 분수는 밤에 보는 트레비 분수랑 느낌이 많이 달랐다. 개인적으로는 밤에 보는 트레비 분수가 훨씬 멋있었다는!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이니만큼 사람이 많은데, 가이드 언니가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셨다. 또 갑자기 다가와서 사진 찍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오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사진을 찍어주고는 돈을 받는다고 하더라. 가이드 언니 왈, 사진은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잘 찍어주니까 정 사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하면 한국인 같은 사람에게 부탁하면 가장 안전하다고. ㅋㅋ
판테온, 트레비 분수, 나보나 광장, 스페인 광장 등 로마 시내의 주요 관광지들은 대부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덕분에 로마 시내 구석구석의 골목들을 많이 걸어 다녔는데, 뭔가 모나코, 남프랑스의 건물들이랑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트레비 분수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판테온. 이 판테온은 정말 로마 시내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이 건물의 역사가 이천 년 가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당황스럽다.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한 유물일 텐데 이렇게 시내애 떡하니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존재하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 혼자 판테온이 뭔가 엄청나게 큰 건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실물로 보면 크기가 어마어마하진 않다.
이 건물이 대단한 이유는 크기가 아니라 그 구조의 특이함과 완성도 때문. 판테온의 지붕은 돔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데, 콘크리트를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천년도 더 전에 이런 구조의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니... 엄청나다.
판테온을 중심으로 주변에 유명한 젤라토 가게와 카페들이 모여있다. 우리는 가이드 언니가 소개해준 젤라토 가게에서 쌀맛 젤라토를 사 먹었다. ㅋ
그리고 근방에 로마 3대 카페 중 한 곳이라는 타짜도르가 있다고 해서 남편이랑 커피맛을 보기 위해 찾아갔다.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나인데, 개인적으로 신맛 나는 커피를 안 좋아해서 그런지 이탈리아에서 먹는 에스프레소가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특히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타서 먹는 게 꽤나 내 취향이었는데 여기 커피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타짜도르 가게 내부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엔 스탠드 바에서 마시는 자리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은 이 날 타짜도르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갑자기 원두에 꽂히더니 원두를 충동구매했음. 문제는 원두를 샀으니 커피를 추출해서 먹을 수 있는 기구도 필요해졌다는 거! 결국 이날 저녁에 비알레띠 매장에 찾아가서 모카포트를 충동구매하셨다....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사 먹을 시간이 끝나서 집합장소에 모여서 다시 이동했다. 그다음 코스는 산루이 지데이 프란체시 성당(?) 이름이 맞나? 여하튼, 아마 유럽여행을 하면서 성당이나 교회는 좀 질리도록 볼 텐데 굳이 이 성당이 투어 코스에 들어가는 이유는 바로 카라바조의 그림 때문이라고.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데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개성 있는 화풍으로 유명한 화가라고 한다.
명암의 대비가 극명한 것이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인데, 나는 이렇게 빛을 강하게 쓴 그림이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성당에는 카라바조의 유명한 그림인 성 마태오 3부작이 전시되어있다. 그림을 사진으로 남기는 건 유럽여행 동안 잘 안 했는데, 이 그림들은 되게 강렬하게 인상 깊어서 사진으로 찍어둠.
카라바조의 그림이 있는 성당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나보나 광장이 나온다. 나보나 광장은 야경투어 할 때 밤 풍경만 봤었는데 낮에 보니 또 느낌이 새로웠다.
나보나 광장에서 오전 투어를 마무리하고 점심시간을 가졌음. 우리는 가이드 언니가 추천해준 레스토랑 중 한 곳으로 찾아갔는데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식사에 가장 비싼 돈을 준 레스토랑이었다. 딱히 대단히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은 아니었으나 전식-본식-후식과 와인까지 나오는 구성이어서 나름 만족스럽게 식사헀다.
점심식사 이후에는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까지 이동하는 루트. 포로로마노는 아직도 유물이 발굴 중인 로마 시대에 지어진 각종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일종의 '유적지 동네'이다. 고대 로마시대 때 지어진 신전, 주거용 건물, 광장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관광지. 로마에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이 그렇지만.. 진짜 스케일이 남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적들인데 그 속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상황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천년도 더 전에 지어진 건물들과 유적들 사이를 걸어 다니다니.. 역사책에서만 보던 것들의 실물을 봐서 좋았다.
사진으로만 보는 거랑, 눈으로 직접 보고 체감하는 건 확실히 전혀 다른 경험!
포로 로마노를 쭉 돌아보고 나서 투어의 마지막 장소인 콜로세움 앞에 도착!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 사전에 미리 예약하면 콜로세움 내부를 투어 할 수 있다. 다만 워낙 오래된 유적이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하루에 방문할 수 있는 방문객의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당일에는 예약이 어렵다고... 당일에 입장권 구매가 안 되는 줄 몰라서 ㅠ 미리 예매를 못한 탓에 콜로세움 내부는 투어를 못했다.ㅠ
내부 투어를 못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콜로세움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있었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어서 그런지 운치도 있고 멋있었음. 콜로세움 맞은편에는 개선문이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승리하고 돌아온 걸 기념하기 위한 개선문이라고 한다. 콜로세움 앞에서 투어가 종료되고 벤치에 앉아서 한 숨 돌리면서 쉬었는데 동네 전체가 유적지로 둘러싸여져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멋있었다. ㅋㅋ
콜로세움 맞은편에 바로 지하철 역이 있기도 하고, 조금 걸어 나가면 버스 정류장도 있어서 근처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음 날은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유럽여행 마지막 나라인 스위스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이날도 엄청 일찍 숙소로 복귀해서 잠들었다. 정말 힘든 일정이었던 이탈리아 여행... 덕분에 정말 원 없이 걸어 다녔어 남편... 이렇게 하루 종일 진행된 로마 워킹투어를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일정이 알차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