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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구거투스 Sep 21. 2017

'나다움'을 찾는 여정

영일고에서 내가 배운 것 #15

글, 김란경(35회. 2016년 졸업)



2016년 3월 2일, 대학교 입학식


이 날 이후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에는 자기만의 색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여러 단체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유대감을 나누면서 ‘아, 나도 나만의 색깔이 있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고등학생’ 때도 무엇이 나다운 것인지 알았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건 나답지 않아!’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은 ‘나다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시간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대학생이 되어 알게 된 나만의 색깔, ‘란경다움’은 대부분 학창 시절에 형성되었고, 그중에서도 ‘영일고등학교’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확신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영일고등학교에서의 추억을 공유하고, 가장 란경다운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제 모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졸업식과 입학식의 노란 머리 란경입니다.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는 곳


대학교에 들어오면 다양한 수업들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졸업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말이죠…! 하하) 고등학교 때처럼 시험을 쳐서 학점을 매기는 수업도 있지만, 리포트를 쓰거나 발표를 하거나 조별 활동을 해서 학점을 매기는 수업도 무척 많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여태까지 들었던 수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대중예술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입니다.


‘대중예술의 이해’는 제가 새내기 첫 학기 때 들었던 수업입니다. 수업의 큰 틀은 ‘다원주의’입니다. 다원주의란 개인이나 여러 집단이 기본으로 삼는 원칙이나 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단순히 ‘대중과 그 예술을 이해하는 수업’일 줄 알았는데, ‘대중 속에 숨어있는, 대중에조차 포함될 수 없는 사람들을 인식하고 그 예술을 이해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과학을 사랑하던 이과생에게 다원주의란 정말 어려운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스스로 세 가지의 규칙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손들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
두 번째,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
세 번째,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


저는 이 세 가지의 규칙을 지켜가면서 매주 수업에 임했습니다. ‘블랙 미러’라는 드라마를 보고 토론을 하는 시간에는 엉뚱한 생각일지라도 손을 들어 발표했고, 기말 리포트를 쓸 때는 ‘게릴라 걸즈’와 관련된 저의 생각과 경험을 솔직히 드러내어 글을 썼습니다.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기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토록 어려웠던 ‘다원주의’에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한 학기의 짧은 수업이었지만 깨달은 것이 정말 많았고, 수업을 통해 저는 진심으로 ‘다원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 다양한 세상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도 생겼습니다.


[왼쪽]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1. 새내기 시절 같은 반이었던 파란교육반 '16 동기들이에요.

[가운데]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2. 보컬힙합동아리 Triple-H에서 한, 첫 공연 날 13기와 함께!

[오른쪽]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3. 새내기 때 ‘과대학교’에서 만나 아직까지 친한 친구들과 함께 속초 여행을 갔어요.



제가 말했던 세 가지 규칙은 영일고등학교 학생에게는 무척 익숙한 것들일 것입니다. 영일고등학교에서는 수업을 질문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영일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는 질문하고 토론해야 한다.’라는 것은 무척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도 그것을 전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는 손을 들고 말하는 학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큰 경쟁력이 됩니다. 게다가 영일고에서는 행사를 다녀올 때마다 ‘소감문’을 작성하고, 정기적인 봉사활동 후에도 ‘봉사 소감문’을 씁니다. 단지 ‘글을 쓸 기회가 많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학교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해를 잘한다’, ‘암기를 잘한다’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리포트를 쓰고, 서평을 쓰고, 발표문을 작성해 발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학교는 영일고등학교에서의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는 곳입니다. 지난 2학년 1학기는 다른 학기보다도 유달리 팀 발표, 조별 토론, 리포트 작성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4.3 만점에 4.19라는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일고등학교에서의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아마 높은 학점을 받으면서도 즐겁게 공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레이삼형제! 공부하러 모였는데 옷 색깔이 똑같아서 기념으로ㅎㅎ



수기위인의 나비효과


영일고등학교는 ‘스스로를 닦아 타인을 이롭게 한다.’라는 건학이념처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정기 봉사나 교내 동급생 멘토링 프로그램처럼 직접적으로 남을 돕는 활동을 하면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아너스 수업(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과목별 심화 방과후수업 ― 편집자 주)이나 하브루타식 수업과 같이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고 모르는 것을 서로 알려주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이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기위인’이라는 건학 이념에 따라 운영되는 학교에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차가운 세상의 따뜻함이 되자.’라는 좌우명도 가지게 되었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제 인생의 목표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수기위인’의 나비효과를 몸소 느끼는 중입니다. 저는 현재 농업생명과학대학교의 학생회 집행부에서 집단의 리더인 ‘집행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집행부에서는 시험기간에 공부로 지친 학우들에게 간식을 제공해주거나,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는 농생대 학우들을 위해 학생회실에서 우산을 빌려주기도 하며 농생대 학우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합니다.


집행부 친구들은 희생정신, 봉사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입니다. 친구들은 간식 사업 때 학우들을 인솔하느라 나누어주는 간식을 먹지 못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쓸 우산이 부족해서 비를 맞고 집에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두가 농생대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낀다 말합니다. 저에게 이런 농생대 집행부는 대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곳입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집단이고, 가장 큰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영일고등학교에서 남에게 베풀고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 배웠기 때문에 농생대 집행부에 지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일고등학교의 여러분들도 아무리 사소한 활동이라 할지라도 온 진심을 다해 열심히!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그 당시에는 사소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 경험이 대학생활, 더 나아가 인생 전체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영향일 것입니다. 


[왼쪽] 시험 전 날 과방에서 밤새기! 너무 힘들어요ㅠㅠ

[가운데] 농생대 집행부의 큰 행사, 농축!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33대 농집~

[오른쪽] 새내기 때는 과대학교에 참여하고, 2학년이 되어서는 팀장이 되었어요.




꿈이 많거나 꿈이 없어서 고민인 여러분에게,


저의 꿈은 ‘세계 평화’입니다. 만화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이 말할 법한 이 거창한 꿈은 제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제가 갖고 있는 인생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꼭 한 명은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가 꿈인데 왜 식물생산과학부에 지원하셨나요?’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래에 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영일고를 다닐 때 과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과로 진학하기로 결정했고, 그때부터는 과학도로서 어떻게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습니다.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영상을 시청하면서 ‘국제 기아 타파’에 관심을 가졌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식량 자원 연구를 한다면 세계 평화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자는 ‘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또는 ‘꿈은 실현 가능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아주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구체화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목표는 ‘세계 평화’였고, 세부적인 목표들을 정할 때 제가 처한 환경이나 해야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등과 관련 지어 구체화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하고자 하는 직업, 장래희망도 자주 바뀌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외교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치과의사, 또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농업과학자, 대학교 1학년 때는 국제공무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제가 이공계 학부인 ‘식물생산과학부’에 재학 중이라 말했지만, 학부의 사회과학계 전공인 ‘산업인력개발학’을 전공하며 지금은 CEO를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장래희망이 바뀌는 것에 대해 두려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꿈이 ‘세계 평화’라는 하나의 실로 꿰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특정한 직업적인 꿈을 가지는 데에 조바심 내지 않고, 목표를 생각하면서 해야 하거나 좋아하거나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어떤 장래희망을 갖든 삶을 관통하는 비전이 있다면, 분명 과거에 했던 일이 현재에 도움이 되고, 또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길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왼쪽] 제32대 농생대 집행부의 대표 포즈, ‘이거 실화냐?’

[오른쪽] 시흥캠퍼스 투쟁 기조를 정했던 첫 학생총회.



저처럼 꿈이 너무 많은 분들도 있지만, 꿈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등학생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꿈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하고,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를 해야 하고, 꿈을 찾을 시간이 없는데 어느새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을 기재해야 할 시간이 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꿈을 찾는 것’보다는 오히려 ‘꿈을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꿈을 찾지 못했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꿈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면, 그건 여러분의 탓이 아닙니다. 그리고 꿈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꿈이 없다는 건 가능성과 잠재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수많은 아름다운 날들 속에서, 여러분의 가능성을 꽃피우고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꿈이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대신 더 적극적인 자세로 여러분 자신에게 귀 기울이도록 합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잘하지?’라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소한 대답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좋아하는 것이 아이돌이어도 상관없고, 잘하는 것이 종이 접기여도 상관없습니다. 가끔은 책을 덮고 작은 시간이나마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에 대해 잘 알 수 있고, 이러한 노력이 쌓이다 보면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여러분의 꿈을 찾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왼쪽] 서영여고에서 아이들의 꿈을 찾아주는 드림캠프에 멘토로 참여했어요.

[가운데] 귀여운 멘티 아이들이랑 짝 멘토 오빠들이랑~ 

[오른쪽] 2학년 2학기에는 취약계층 아이들의 꿈을 찾아주는 드림 멘토링을 시작했어요. 




글, 김란경(35회. 2016년 졸업)

"어떤 위치에서나 따뜻함을 잃지 않으며 세상의 평화로움에 기여하는 사람", 김란경입니다. 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산업인력개발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차가운 세상의 따뜻함이 되자'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고, 현재는 전공에 영향을 받아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CEO'라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졸업이 싫었어> 프로젝트는 영일고 졸업생들이 재학 중 미래의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고, 더 넓고 따뜻한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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