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미르 Mar 24. 2020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날, 나를 대변해주는 노래

<3번째 사운드트랙>

※ <별별 선곡표 : 별난 상황, 별난 선곡표>는 '일상의 BGM'이라는 취지로 다양한 상황에 맞는 음악을 추천합니다. 필자가 팝 칼럼니스트인 관계로 본 연재물에 소개되는 모든 음악은 팝 음악임을 밝혀둡니다. 또한, 곡 앞에 붙어있는 숫자들은 각각의 곡을 지칭하기 위함일 뿐, 순위를 메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얼핏 보기에는 여느 직장인의 퇴근길과 다름없지만, 오늘은 왠지 가벼운 발걸음과 홀가분한 어굴을 감출 수가 없다.

힘들고 불편한 기억밖에 없을 것 같았지만, 환하게 빛을 내고 있는 거리의 사무실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섭섭함도 가슴 한편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쁜 기억들만 있던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뒤로, 앞으로의 길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이런 감정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직서를 내고 온 오늘 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역시 음악밖에 없다.




1. Plastic Love -  竹内 まりや(Mariya Takeuchi)


Plastic Love - Mariya Takeuchi

오늘 처음으로 소개할 곡은 7,80년대 일본을 주름잡았던 타케우치 마리야(Mariya Takeuchi)의 대표곡 'Plastic Love'이다.

*시티팝이라는 장르를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이 곡은 독특한 이력을 가진 곡이다.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 [Variety]이 발매된 84년 큰 인기를 끌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 유튜브에 이 곡이 업로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무려 30년 가까이가 지나 재조명을 받은 것이다.

경쾌한 발걸음을 나타내는 듯 한 비트와 함께 시작되는 이 곡은 몽환적인 멜로디가 합쳐지면서 홀가분함과 서운함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타케우치의 보컬이 이러한 분위기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벌스에서는 경쾌한 비트처럼 하늘하늘한 보컬을 보여주지만, *브릿지로 넘어오면서 뭔가 걱정거리가 떠오른 듯한 느낌을, 마지막으로 *훅이 끝날 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서글픔까지 보여준다.

곡 전체적인 몽환적인 느낌은 도시의 밤을 걸어가는 우리네 직장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진다.

사직서를 내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누군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곡이 아닐까.


*시티팝(City Pop) : 70~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낭만적인 분위기의 장르

*벌스(Verse) : 운문 또는 노래의 절

*브릿지(Bridge) : 과 벌스를 이어주는 구간

*훅(Hook) : 노래의 끝이나 중간 부분에 같은 멜로디를 반복해서 부르는 부분 (=코러스, Chorus)



2. Pass by - Cardboard Box (feat. Big Hee)


Pass by - Cardboard Box (feat. Big Hee)

오늘의 두 번째 곡은 2018년 발매된 카드보드 박스(Cardboard Box)의 앨범 [Tape 2]에 수록된 곡, 'Pass by'이다.

공식 석상에서는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아티스트인 카드보드 박스의 음악들은 유튜브, *사운드 클라우드 등 한정적으로만 감상할 수 있지만, 그만의 스타일은 앞으로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재즈가 떠오르는 멜로디와, 변주 없이 차분한 비트,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듯한 보컬.

*마이너 코드의 우울한 분위기의 곡이지만, 이상하게도 우울한 감정만 드는 것이 아닌 뒤편 어느 곳에서 자신도 모르는 희망과 약간의 해방감이 함께 느껴진다.

곡 자체의 어두운 감성은 나 홀로 걸어가며 바라보는 밤하늘이 생각나며, 담담한 어조의 보컬은 약간의 신세 한탄과 함께 먼 미래를 바라보는 나의 막연한 희망이라 하고 싶다.

특히 멜로디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스탠더드 재즈의 명곡 '*Autumn Leaves'가 떠오르기도 한다.

'Autumn Leaves'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거리 위 가로등이 비춰주는 한산함을 그려주는 그런 곡이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사운드이지만, 그 짧은 순간 동안 생각이 많이 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운드 클라우드(Soundcloud) : 2008년 설립된 독일의 글로벌 온라인 음악 유통 플랫폼

*마이너 코드 : 단조 

*스탠더드 재즈 (Standard Jazz) :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레퍼토리로 자주 사용되는 재즈곡

*Autumn Leaves : 미국의 대표 재즈 스탠더드 곡



3. Fallen - Gert Taberner


Fallen - Gert Taberner (Official Video)

잔잔한 기타 사운드와 쓸쓸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공허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거트 타베르네르(Gert Taberner)의 곡 Fallen을 세 번째 소개하고자 한다.

텅 빈 공간에 혼자 쓸쓸하게 존재하지만, 이러한 쓸쓸함 또는 외로움이 부정적이게 만은 다가오지는 않는 느낌이다.

쓸쓸함 속에서 왠지 모를 따스함이 잔잔하게 나의 뒤를 받쳐주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하고 싶다.

찬 바람이 부는 거리에 손에 쥐어진 조금은 식어버렸지만 온기는 남아있는 손난로 같다고 표현하면 어떨까.

2016년 해당 곡을 *EP로 발매하며 활동을 시작한 독일의 아티스트이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홍보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그의 정보조차 찾아보기 힘든 신인 아티스트이지만, 해당 곡을 통해 그의 아티스트로서의 잠재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벌스에서는 기타의 사운드와 보컬로만 분위기를 이어가며, 두 번째 벌스로 넘어가면서 드럼과 *세컨드 기타가 들어오면서 조금 더 풍성한 사운드를 보여준다.

또한, *더블링을 중간중간 사용하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구성에 너무 튀지 않는 방식으로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마지막으로, 하이라이트에서 나오는 기타 *리프*콜드플레이(Coldplay)의 'Fix You'를 연상시킨다.

퇴사 후 쓸쓸해진 마음을 잔잔하게 달래줄 수 있는 곡으로 적격일 것이다.


*EP : '싱글판'이라고 불리는 한 면에 한곡만이 녹음 가능한 레코드, 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음반을 가리킨다.

*벌스(Verse) : 운문 또는 노래의 절

*세컨드 기타(Second Guitar) : 주가 되는 멜로디 이외의 멜로디를 담당하는 기타

*더블링(Doubling) : 동일한 부분을 두 개의 다른 트랙에 녹음하는 방식

*리프(Rift) : 반복되는 짧고 간단한 멜로디

*콜드플레이(Coldplay) : 2000년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영국의 대표 얼터너티브 록밴드



4. Teenage Fantasy - Jorja Smith


Jorja Smith - Teenage Fantasy (Official Video)

더 이상 늦기 전에 어릴 적 꿈꿔왔던 것을 해보기 위해 안정적인 집업을 포기하고 도전하려는 이들을 위한 네 번째 추천곡이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밝고 희망찬 분위기를 전해줄 것을 기대했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어릴 적 꿈을 좇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모두 알고 있다.

꿈을 좇는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아픔이 가득한지를 가슴 아프지만 솔직하게 전해주는 그런 곡이라 생각한다.

2018년 정식 데뷔부터 대중과 평론가 양쪽의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진 아티스트 조자 스미스(Jorja Smith)의 데뷔 앨범 수록곡이다.

느리게 이어지는 곡의 분위기에 타이트한 가사를 채움으로써 느린 듯 하지만 박자감이 살아있는 곡이 탄생했다.

이러한 박자감을 *셰이커 혹시 *하이햇의 사운드가 한층 더 살려주고 있다.

순간순간 들려오는 감미로운 피아노 사운드는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추가해준다.

다른 악기의 사운드들은 *페이드 아웃되면 보컬로만 마무리되는 *아웃트로는 마치 이 이야기가 열린 결말인 듯 어떤 긍정도 부정도 알려주지 않는 오묘한 느낌이다.

꽉 찬 사운드로 시작하는 *인트로와 사뭇 다른 아웃트로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힘들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시작하려는 누군가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을 곡이라 생각한다.


*셰이커(Shaker) : 흔들어서 소리 내는 타악 기류

*하이햇(Hi-Hat Cymbals) : 페달 조작으로 열고 닫는 두 개 한 세트의 심벌즈

*페이드아웃(Fade Out) : 점차 어두워지다가 완전히 검은색으로 사라지는 장면 전환 효과, 음악에서는 서서히 소리가 작아지는 효과를 나타낸다.

*아웃트로(Outtro) : 곡의 마지막을 이르는 말

*인트로(Intro) : 곡의 시작을 이르는 말



5. Easy - Mac Ayres


Mac Ayres - Easy (Official Channel)

마지막으로 소개할 곡은 맥 에이레스(Mac Ayres)의 대표곡 'Easy'이다.

부드러운 *알앤비(R&B)스타일을 보여주는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인 그는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2개의 정규앨범을 발매했고,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아티스트이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그의 보컬은 감미롭다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

일반적으로 뒤에서 곡을 받쳐주는 드럼의 사운드가 앞으로 치고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튀지 않게 느껴진다.

*인트로에서 시작하여 곡의 끝까지 이어지는 건반의 사운드는 마치 동화책 속 행복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러한 건반 사운드 밑으로 흐르는 한음씩 길게 눌러주는 다른 멜로디는 분위기를 조금은 억눌러주면서 한없이 밝아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잔잔하면서도 부드럽게 유지시켜준다.

이런 사운드 위에 펼쳐지는 보컬은 마치 "앞으로 잘 될 거야"라고 위로해주는 달콤함 그 자체이다.

퇴사 후 어떻게 지낼지 조금은 걱정되지만, 지금 당장은 해방감과 기쁨이 살짝 더 느껴지는 그런 순간을 표현해주는 곡이 아닐까.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밤, 하늘을 바라보니 그날따라 반짝이는 별들 같은 곡이다.


*알앤비(R&B):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의 약칭, 기존의 블루스에 통속적인 가사가 담긴 것이 특징이다.

*인트로(Intro) : 곡의 시작을 이르는 말

매거진의 이전글 가슴 설레는 날,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를 대변하는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