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장을 입은 어른에게 각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받아 부착하고 배정된 버스에 하나둘 올라탔다. 차가운 밤공기와 동이 트기 전 어둠을 헤쳐가며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지방의 어느 연수소에서 수백 명은 함께 한 달간의 합숙교육을 받았다. 그때의 나와 동기들은 한창 파릇파릇했고 무엇보다 회사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정이 넘쳤다. 다들 수십 개, 수백 개의 자소서와 면접. 힘든 취업난을 뚫고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부모님께서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려 자랑할만한 소중한 회사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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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한두 달 정도의 다이내믹했던교육 끝에 배정받은 팀은 담배 쩌든 내 나는 아저씨들만 그득한 그런 팀이었다. 부서에 여자는 나 혼자였고, 약 100명이 있는 팀에 대졸 공채 출신 여자직원은 나뿐이었다. 그때 아저씨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전설적인 대졸 공채 출신 여자 선배의 이야기다. 나보다 10년~12년 정도 선배인 그녀가 남자들이 가득한 이 조직에서 성공한 스토리 말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달랐다.누구보다 야망 있고 열정이 넘치던 신입사원이었다.
Edward hopper, 《Conference at night》
그녀의 성공스토리가 나에게 귀감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나에게 그런 선배가 있으니 너도 잘할 수 있어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었다. 심지어 그 선배와의 식사자리까지 마련해주는 배려심 깊은 차장님도 있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고, 그때의 나는 그녀에게 호기롭게 물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녀는 처세술 책과 여성잡지에 있음 직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자와 똑같이 일해라. 여자라고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항상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라.
선배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라라는 말에 더해 주석까지 친절하게 달아주었다.
회사에서 울지 말아라.
내가 회사에 첫 출근을 할때 엄마는 내게 아침마다 "회사에서 울지 말고자신 있게!"라고말씀해주셨다.
그렇다. 어려서부터 나는 울보였다. 울보인 데다가 내 감정을 얼굴에 다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항상 뜻대로 잘 안 되는 일이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눈물부터 왈칵 쏟았고 입이 앞으로 나와있었다. 오죽하면 평강공주라는 별명이 따라붙을 정도였다. (어릴 적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라는 동화책에 깊게 감정 이입했던 적도 있다.)
울보이고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나에게 회사에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울지 않는 것은 크나큰 과제였다.
Rene magritte, 《The son of man》
역시나 며칠이 가지 않아서 보고자료를 만드는 와중에 부장님의 "이 것도 제대로 못하나?"라는 말로 당시 누구보다 난 잘 해낼 거야 라고 외치고 있던 내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나 버렸다. 부장님 앞에서 꾹 눌러서 참고 있던 울음보가 몇 초 지나지 않아 내 자리에 앉자마자 터져버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화장실에 달려가서 그치지 않는 울음을 혼자 달랬고,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다른 일들로 눈물을 흘렸다. 7년이나 지난 지금 아직도 그 날의 나를 아는 회사 선배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만 울어라 라고 말하곤 한다.
Edward hopper, 《Hotel room》
그때의 나는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 큰 고민이자 숙제였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고 여겨졌고, 이런 나이기에 누구보다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나에게 감정을 표현하세요,털어내세요 라고 이야기해준 것이다.
나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것을 나를 채 며칠, 아니 몇 시간도 보지 않은 다른 이가 알고 있다. 이제야 알 것도 같다. 나는 그동안 다른 이들에게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는 데 훈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직장에서 그리고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프로페셔널한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울지 않으려 애썼고,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근 3년 정도 회사에서 운 적이 없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감정 절제훈련이 된 것일까?
Edward hopper, 《Soir bleu》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 모습, 내 안으로 새로운 물음을 던져보았다. 그런데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대답이 '예스'라면 20대 중반 패기 넘치던 내가 바라던 모습에 가까워진 것인가라는 물음이 또하나 생긴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내가 바라는 나의 미래인가 라고도 묻는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런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그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전설적인 여자 선배의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