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르달 겨울 컬렉션 가운데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를 읽고
안녕하세요 슬님,
겨울이면 엄마에게 '멋부리다가 얼어죽는다'라는 말과 함께 등짝을 맞던 청소년이었던 저는 집밖을 나서는 가족들에게 "점퍼를 단단히 여며라" "손이 시린데 왜 장갑을 끼지 않느냐" "목이 너무 훤히 드러나면 추우니 목도리를 꼭 해라"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추위에 약해진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언제부턴가 '겨울'이란 단어만으로 긴장하고 움츠러드는 기분이 듭니다. 특히 올해 겨울은 비바람이 부는 스산한 날이 많아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따뜻한 커피로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녹여가며 이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우리집의 꼬마 철학자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슬님의 집에도 철학자 한명이 있다는 걸 저는 알고 있지요.) 잠자리에 누워 제가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뭔가를 시작하는게 두려울 때가 있어" 그러면 꼬마가 답을 해줘요. "미리 걱정은 하지마세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해야할 일을 적당히 잘 해내면 됩니다." 어느날은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말아요. 자기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면 되요" 라는 말을 해주었지요. 그럴때면 아이들은 그 작은 몸안에 모든 답을 가진 존재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큰 어른들은 답은 없고 질문만 가득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에요.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가득차 터져버리기 직전이던 오래전 어느날 상담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내 마음대로 뭘 하고 살았던 기억이 없어요. 그냥 사회가 바라는대로, 부모가 원하는대로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나만 이런가요?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라는 두서없는 말에 상담선생님이 이렇게 답했어요. "흠... 이런 말을 하면 미나씨가 굉장히 충격받으실 것 같긴한데요... 그래도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다른 사람들은 다 제 멋대로 하고 삽니다." 그 말이 너무 놀라워 한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봤었어요. 정말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거냐고. 물론 슬님에게도 물었었고 그 대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지요. "선배의 질문에 저도 곰곰히 고민을 해봤는데요. 생각해보니 대체로 저도 제가 하고싶은건 다 하고 산 것 같아요"
슬님은 그 대화가 기억나나요? 우리가 결혼도 하기 전이었으니 10년도 더 된 일이긴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와 다시 스스로 질문해보니 저도 그때와는 다른 대답을 하게되네요. 수없이 맞닥뜨리는 인생의 선택에서 내 의지가 들어가지 않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걸 이제와 깨닫습니다. 돌아보니 학업, 취업, 결혼과 출산, 육아, 커리어의 모든 여정마다 내 의지가 아닌 선택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내 멋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인정합니다. 다만 그 선택의 결과가 내 바램과 달리 모두 좋지만은 않을 수 있지요. 그 선택의 책임을 내가 아닌 다른데로 돌리고 싶은 마음에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못했어' 라고 비겁하게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결과가 어찌되었든 내가 선택한 인생에 담담히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 순간의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임을 믿으니까요.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 p109, 눈부신 안부(백수린)
새해가 되고 아이들의 방학을 맞아 제주집에 3주간 다녀왔어요. 궂은 날씨 덕분에 부지런히 도서관을 오가며 읽고 싶었던 책들을 찾아 읽는 느린 겨울의 시간을 누리다 왔지요.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깔아둔 이불 밑에 몸을 반쯤 넣고 엎드려 귤을 까먹으며, 쌔근대며 잠든 두 아이를 양옆에 끼고 누워 약한 독서등을 켠채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를 읽었던 순간들을 올 겨울의 장면으로 모을 수 있었어요.
이 책에는 각자의 이유를 품고 독일로 간 파독 간호사들이 등장합니다. 가난해서, 동생 혹은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서 등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그 먼 곳까지 가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돌아보면 결국 각자의 선택이 그녀들을 독일로 가게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냅니다. 경험하지 않은 삶을 동경하고 과거를 후회하기보단 그 자리에서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비겁한 과거의 저를 떠올리게 했을지 모를 일이지요.
이모는 다시 <생의 한가운데>의 그 구절을 적었다.“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있어.”
- p196, 눈부신 안부 (백수린)
더 이상 도망치기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p264, 눈부신 안부 (백수린)
언니를 사고로 잃고 독일로 떠나게 된 소녀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파독간호사였던 이모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선자이모'의 첫사랑을 찾아가며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슬님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찾았습니다.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서로를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현생에서는 내 삶을 살아내기 너무 바빠 평소에는 잘 발견하지 못하던 사람들의 다정함, 친절, 따뜻함을 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슬님이 소개한 '밝은밤'을 읽으면서도 역시 그랬구요. 이 책에서도 많은 다정함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이 서로를 일으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음을 목격합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사람은 희망을 보지. 그리고 희망이 있는 자리엔 뜻밖의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하잖니. 그래서 나는 유리병에 담아 대서양에 띄우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네게 보낸다.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 p 304, 눈부신 안부 (백수린)
우리집 꼬마 철학자가 저의 고민에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를 잘 하라'는 조언을 했다는 것 기억하시죠. 타인에게 친절하라는 말로 받아들였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성공과 대단한 부를 쌓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나마 다정함이 서로를 구원하는 장면을 만나고 나면 나도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고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고나면 추위를 녹이는 다정함이야말로 나와 타인을 살게하는 가장 위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이모는 네가 찬란히 살았으면 좋겠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아까운 거니까
- p 227, 눈부신 안부 (백수린)
슬님의 겨울은 어떠한지, 다정한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