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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Jan 18. 2016

신영복 선생 별세

거목의 사라짐은 숲이라는 공동체에게 치명적인 아픔이다




사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내가 그를 목격한 것이라곤 작년 초여름 어느 책 행사에 귀빈으로 온 그의 뒷모습을 얼핏 본 것뿐이다. 날씨가 꽤 더웠는데 마후라(?) 같은 것을 목에 두르고 있어서 속으로 ‘멋을 강조하시는 분이구나, 대단하시다!’ 하고 감탄한 것이 전부였다. 알고 보니 오랜 지병 때문에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두르신 것 같았다. 그 후 얼마 전 출간된 <대담>의 소식을 듣고는 그를 잊고 지냈다. 유명한 작가, 지성계의 큰 스승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마치 내가 접해보지 않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신화 같은 존재였달까? 


악의 무리가 오언을 함부로 지껄일 때 저 멀리서 인자하게 웃으며 촌철살인 같은  바른말을 쏘아붙여주는, 뭐 그런 정의의 사도 같은 존재. 악으로 가득 찬 이 세계 어딘가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선악의 균형추를 맞춰주는 큰 스승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인기가 많은 중견 지식인들, 거침없이 사회를 비판하고 정부를 조롱하는 젊은 논객들은 늘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생의 책으로 꼭 신영복 선생의 책을 언급했고, 그의 가르침을 자신이 해당 분야를 연구하게 된 계기로 꼽았으며, 이 땅에 얼마 남지 않은 스승으로 그를 추켜세웠다. 마치 그는 제국의 폭력이 창궐한 우주 한 귀퉁이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요다 같았다. 모든 착한 전사들의 스승 같이 말이다. 


내게 신영복 선생은 선악의 균형추를 맞춰주는, 전설 속의 영웅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집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그의 부고를, 그것도 하루 늦게 듣고 말았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니 그의 사망 일자가 떴다. 책으로나마 그의 생전에 그와 인연을 맺었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들어와,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를 넘겨봤다. 문장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영화는 결국 우주의 유일한 구원자 스카이워커를 찾아낸다. 그는 비록 30년 전의 파릇파릇한 청년은 아니었지만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채 여전히 강력한 포스를 온몸으로 발산하며 주인공을 맞이한다. 아마 다음 시리즈에서 그는 멋지게 부활해 악한 무리를 소탕할 것이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여전히 배우는 바뀌겠지만 스카이워커는 영화 속 현실 세계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 정의의 사도는 시간의 힘을 견딜 수 없다. 그가 자연의 법칙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인간이었기에 그의 가는 길이 마냥 슬프고 서럽지도 않다. 나란 놈이 정말 이기적인 것이, 정작 그의 죽음에 애도하기 앞서, 이제 내가 ‘거하고 있는’ 이 현실에 더 이상 그와 같은 선인이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고 있다. 영화처럼 악인의 악행이 극에 치달을 때 누군가 뻥, 하고 나타날 수 없음이, 그럴 확률이 대폭 줄어든 느낌이 드는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다. 



숲에서 오래된 거목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거대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울창한 숲의 작동 원리를 그만큼 아는 자가 없기에, 알게 모르게 숱한 생물들이 그 거목에 의지하고 있었기에, 거목의 사라짐은 숲이라는 공동체에게 치명적인 아픔이다. 




거묵의 사라짐은 숲이라는 공동체에게 치명적인 아픔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영면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맨 꼴찌는 마음 편한 자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아마 가장 철학적인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기를 쓰고 달려가야 할 곳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신영복, <강의>




<사진 출처>

메인타이틀. http://blog.daum.net/labourerkim 

1. http://www.huffingtonpost.kr/2015/04/27/story_n_7151216.html

2. http://egloos.zum.com/iso7107/v/66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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