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매주 일요일(혹자에게는 주일) 엄니가 교회에 가면서부터 내 일요일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물론 언뜻 보기엔 큰 변화는 없다. 8시쯤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글을 쓰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보다 엄니가 오면 함께 아점을 먹고 또 같은 일들을 반복한다. 이것이 내 일요일이었고 지금도 비슷하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엄니라는 관찰자가, 그러니까 TV를 보시면서도 내가 하는 일을 관찰하고, 그러다가 종종 참견도 하고, 종종 잔소리도 하던 엄니가 집에 없음으로 인해, 뭐랄까, 마음이 좀 더 편해지고 좀 더 다양하고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엄니가 없는 오전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내가 집에서 나 혼자 오롯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건 분명 좋은 일이다.
오늘은 9시에 눈을 떴다. 8시 45분쯤 엄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부스스 일어나 내 방 창문을 열었다. 방문을 닫고 자면 그렇잖아도 구리구리한 남자냄새(라고 적고 홀아비냄새라고 읽는다)가 방 안에 진동한다. 내친김에 베란다 문도 활짝 열고 대문도 활짝 연다. 우리 집은 베란다와 현관이 마주보고 있는데, 이렇게 두 문을 열면 바람이 오가며 안에 있던 공기를 싹 몰아낸다. 엄니 몰래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도 이렇게 문을 활짝 열면 냄새가 싹 사라진다. 대신 손과 발이 꽁꽁 언다.
한 번 켜고 빨래할 것들을 빨래통에 집어넣는다. 일주일 내내 입었던 후드티, 화장실에 걸려 있던 수건, 한 번 더 신으려고 짱박아뒀던 양말. 찾다보면 끝도 없다. 일주일 동안 내가 이렇게나 많은 옷에 내 체취를 묻혔다니. 방문에 아무렇게 걸어놓은 외투들도 정리한다. 식탁 의자에는 어제 과감하게 구입한 패딩과 이번 겨울 내내 입던 패딩이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다. 탁탁 털어 장에 넣는다. 식탁을 서성거리니 시야에 먹다 남은 온갖 주전부리가 눈에 들어온다. 먹던 건 입에 넣고 그나마 포장해 보관할 수 있는 건 따로 덜어내 냉장고에 넣는다. 냉장고에 먹나 남은 배가 있다. 세 조각. 입에 물고 역시 통은 설거지통으로.
식탁 위에 쓸데없는 것이 사라지자 이번엔 꾀죄죄한 유리의 몰골이 들러난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행주를 예쁘게 접어 싹싹 문지른다. 윤기 없던 유리가 쨍 하고 밝아진다. 기분이 좋다. 다시 장을 연다. 걸려 있던 겨울옷들을 꺼내 다시 옷걸이에 걸어둔다. 옷걸이 틀과 옷의 어깨선이 정확히 일치하도록. 세상에, 올 겨울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이렇게 많았다니. 이걸 다 정리하려면 한 세월이다. 몇 년 전 첫 회사 면접 때 입으려고 구입한 양복도 걸려 있다. 저걸 입은 게 언제였더라. 괜히 심술이 나 츄리닝 잠옷바람에 정장을 걸쳐 거울 앞에 선다. 그때보단 살이 조금 빠져 옷이 살짝 크지만 그래도 운신이 편해 다행이다. 검정색 양복이니 저거 하나면 어디서든 소화 가능하다.
대문도 연 김에 내 방 침대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이불을 가져 나와 아파트 복도에서 탈탈 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묵은 먼지가 찬 공기에 다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 베개에 깔아둔 수건도 빨래통에 던진다. 작년에 그렇게 뻔질나게 들고다녔으나 올해 한 번도 매지 않은 가방에도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어 역시 털어준다. 집안일을 하다보면 좁아터진 집구석에 쌓여 있는 수많은 잡동사니와 불편한 대면을 하게 된다. 고역이다. 내 돈 주고 산 것들인데 왜 이렇게 미워 보일까. 빨빨거리며 움직였더니 배에서 신호가 온다. 장 운동에 도움이 되었나. 기분 좋은 신호다. 이런 배변은 금방 끝난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뒤 빨래통에 있던 빨래감을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티슈로 된 세재를 쓰는데, 지난번 세탁 때 한 장만 넣으니 깨끗한 냄새가 나지 않아 이번엔 과감하게 두 장을 넣는다.
이제 다 했나? 아니다. 설거지도 해야지. 안 신는 신발도 신발장에 넣자. 달력은 왜 아직도 1월인가. 쫙, 기분 좋은 소리가 정신을 깨운다. 찢은 종이는 접어 신발장 위에 올려둔다. 이따 나갈 때 버려야 할 재활용 쓰레기가 제법 모였다. 분명 어제 분리수거 했는데.
이제 베란다 문과 현관문을 닫고 거실에 서서 스트레칭을 한다.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허리를 굽혀 손끝을 발 끝에 갖다 댄다. 물론 무리다. 손 끝에 발목 부근에 이르자 입에서 곡소리가 나온다. 몸이 왜 이렇게 뻣뻣할까. 내 건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직감할 때가 몇 있는데, 바로 이렇게 스트레칭을 하며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안 굽히던 곳을 굽히고 안 피던 곳을 필 때가 바로 그때다. 고작 이까짓 동작에 몸이 고통스러워 몸부림친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이럴 때면 내가 목각 인형 같고 이대로 몸을 방치했다간 언젠가 몸이 송장처럼 굳어질까봐 두렵다. 어서 여름이 와서 뙤양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고 싶다.
대충 스트레칭을 마치고 집 안을 둘러본다. 약 1시간 전 침대에서 나와 바라본 풍경과 그리 달라진 것은 없다. 식탁 유리가 좀 더 반짝일 뿐이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공기의 파장을 규칙적으로 흔들고 있을 뿐이다. 집안일이란 이런 것인가.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잘 안 보이지만, 굳이 찾아내 끄집어내면 끝도 없는 것들. 나는 일요일 아침에 그중 아주 일부를 해치웠을 뿐이다. 엄니가 돌아와 내가 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녀는 평생 이런 일을 해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