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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Apr 30. 2017

내 삶 = 내 월급 + 엄마 월급(上)

어느 큐브세대의 미래 02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제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비행운, 315쪽

     

0.


2007년, 2012년, 2017년.


역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연도들이다. 마지막 연도는 대선이 ‘있을’ 연도이다. 이 연도들은 중요하다. 선거 연도의 바로 다음 해 당선자들은 모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정식으로 임명되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집권 초기 동일한 정책을 폈다. 바로 경기 부양책이다. (그 경기 부양책들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정부 홈페이지나 고용경제부 홈페이지를 뒤져보기 바란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경기 부양책의 주요 골자가 금리를 내려 더 많은 이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매매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돈이 없는 서민들이 저금리의 은행 돈을 무진장 대출을 받아서 그 돈으로 주택을 매매하고, 은행은 그 주택을 다시 담보로 설정해 위험부담을 줄이고, 정부는 이런 기형적인 거래 관계를 묵인해주는 대가로 지지율을 얻게 되는, 말하자면 삼자 공조의 형국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새 대통령이 집권할 2018년 역시 지금까지 펼쳐진 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합작이 일어날 텐데, 바로 그때가 가난한 서민이 집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몇 달 전 우리 집에 방문한 셋째 이모(나를 교회로 보낸 바로 그 이모)가 열변을 토하며 말해줬다(물론 이때는 2017년에 조기대선이 치뤄질 것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1.


이 놀랍도록 명쾌하고 상식적인 현상을 나는 나이 서른이 되어 처음 들었으며, 이모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러니 너네(나와 엄마)는 지금부터 열심히 돈을 모아서 2018년도 집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가 아니면 영영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충고와 함께. 조금이라도 값이 쌀 때 최대한 빨리 집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부동산의 상식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내게 부동산은, 시간과 체력은 넉넉히 있지만 도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지럽혀져 있는 방 같다고나 할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는 납득했지만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곧잘 그 이유를 잊거나 무시한다. 내게 주택 마련은 그런 것이었다. 도무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였기에,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를 갖는 일은 공상과도 같은 일이라고 여겼기에 나는 종종 주택 매매라는 길을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런데 그날 이모의 그 단순 명쾌한 논리를 듣는 순간, 이 지상 최대의 과업을 수행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간단할 수도 있겠다, 내 삶에서도 가능한 일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가 돌아간 뒤 나는 또 다른 이유로 엄마와 꽤 무거운 말다툼을 벌였고 이내 집에 대한 고민은 잊혔다. 


2.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주택 매매와는 전혀 무관한 일상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무실에서 나는 충동적으로 이면지를 꺼내 그 위에 주택 매매에 대한 나의 플랜을 휘갈겼다. 내가 휘갈긴 숫자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2018년에 주택을 매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때 필요한 현금의 규모

2) 그 현금을 맞추기 위해 지금부터 모아야 할 돈의 규모

3) 그렇게 모은 돈을 제외한 대출금의 규모


자, 이 세 개의 숫자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아무튼 나이가 서른쯤 되었다면 한 번쯤 장난삼아 서라도 계산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에서 주거를 해야 할 것이고, 안타깝게도 별도의 계약 갱신이나 이사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다음 주거지를 탐색하고 이사 준비를 하고 새 집주인과 계약을 맺고 다달이 월세를 내는 등의 과업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에, 언젠가는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여러모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업무를 중단하고 연필을 들게 되었다. 


1)번은 가볍게 생각했다. 미래의 내 집에 대한 내 조건은 두 가지였다. 아파트일 것. 일산일 것. 3~4인의 구성원이 거주한다고 생각하고 20평대 아파트 한 채를 산다고 가정했다. 1)번에다 ‘3억 5000’이라는 숫자를 적었다.

2)번에 적을 숫자를 구하기 전에 3)번에 적을 숫자를 정했다. 역시 간단하게 생각했다. 2억. 아니 1억. 1억만 빌리자(내 신용이나 내 소득으로는 1억 원을 대출받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2)번에 적을 숫자는 자동으로 나온다. 2억 5000. 하지만 2년 동안 나 혼자 그 돈을 모을 수는 없다. 여기에서 이모의 팁을 참고한다. 채워야 할 2억 5000만 원 중 1억 5000만 원을 구할 방법이 있다. 내가 2년 뒤 살 집을 전세로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올 세입자로부터 전세금 1억 5000만 원을 받는 것이다. 3억 5000만 원짜리 집을 1억 5000만 원이라는 엄청나게 낮은 전세로 주는 것이니 반월세를 받는다. 그럼 그 월세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리고 2년 뒤에도 계속해서 살) 임대 아파트 월세를 충당한다.


그럼 2)번에 적을 금액이 달라진다. 1억. 그렇다. 이 시나리오가 2년 후에도 유효하다면 지금부터 2년 동안 딱 1억 원을 모으면 된다. 심플하다. 절반 정도의 현금이 있으니 절반만 모으면 된다. 그 돈을 24로 나누니 한 달에 약 200만 원을 저금해야 한다. 내 월급으론 불가능한 숫자다. 


(下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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